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종민 기자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한·미 관세 협상의 타결 직후 제기된 '국회 비준' 논란에 대해 비준은 법적으로 따지면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라며 "굳이 비준을 하면 전략적으로 우리가 손발을 묶는 것과 똑같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1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비준한다는 소리는 제 생각에는 권투선수가 링에 올라가는데 저쪽은 자유롭게 하는데 우리는 손발을 묶는 것과 똑같다"며 "예를 들면 (수익 배분을) 5:5로 한다, 이런 부분이 앞으로 협상하면서 논의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법으로 비준한다는 소리는 5:5를 딱 지키라는 것과 똑같은 못 박는 꼴"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재정적 부담 같은 건 특별법 만들어서 국회 동의를 충분히 거칠 거라고 생각한다"며 "때문에 일본도 비준 안 받았고, 상대방인 미국도 비준 안 받았다는 점을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의 이날 발언은 '국회 비준 필요성'을 두고 여야가 강하게 대립하는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정쟁이 격화하면서 후속 절차 지연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협상 타결의 순간…정상회담 오전, 美이 '최후 통첩'으로 받아들인 그 문자
기획재정부 제공이날 인터뷰에서 김 장관은 협상 타결 직전의 상황과 미국 측 반응 등 막전막후 핵심 장면들을 상세히 공개했다. 김 장관은 협상 타결의 결정적 순간으로 한미정상회의 당일인 지난 달 29일 오전 7시 40분, 러트닉 미 상무장관에게 보낸 문자를 꼽았다.
당시 한국은 대미 투자금 3500억달러 납부 방식 등을 두고 미국과 정상회담 당일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러트닉 장관에 "지금까지 잘 해왔고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APEC이고 협상을 계속 이어가자. 그러니까 우리가 메시지를 '한국과 협상 잘 됐고 진행하면서 결론 내겠다'는 정도로 해가자"라는 취지로 문자를 보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장관 설명에 따르면 미국 측은 이 메시지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 장관은 "우리는 동맹으로서 계속 잘 이어가자는 의도였는데, 미국은 '이제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최후 통첩'으로 읽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 마무리 못지으면 협상이 깨질 수도 있다"는 시그널로 해석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자 발신 약 한 시간 뒤 러트닉 장관은 한국의 최종 제안을 전격 수용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김 장관은 "환영(幻想)을 본 줄 알았다. 몇 번이나 '네 말이 맞느냐'고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온 국민의 기도와 성원이 마음을 움직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고 밝혔다.
협상 첫 분기점은 '9·11 추도식'…직후 "내일 시간 있느냐"
김 장관은 협상 흐름이 처음으로 바뀐 분기점으로 지난 9·11 추모식을 꼽았다. 당시 미국은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펀드에 대해 '전액 현금 선불'을 요구하며 판이 거의 움직이지 않던 시기였다. 그는 "협상이 가장 어려웠을 때가 9월"이라며 "(러트닉 장관에게) 문자를 보내면 답이 오던 사람인데 그땐 답도 안 오더라"고 말했다.
그 무렵 김 장관은 러트닉 장관에게 "협상은 협상인데, 9·11 추모식만 참석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러트닉 장관은 2001년 9·11 테러로 동생과 직장 동료들을 잃은 인물이다.
김 장관은 "이 메시지에는 즉시 "Yes, thank you"라는 답이 돌아왔다"며 "일종의 큰 어떤 터닝 포인트 중에 하나"라고 전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러트닉 장관으로부터 "내일 오후에 시간이 있느냐"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김 장관은 다음 날 뉴욕에서 그를 다시 만나 "거기서 분납(투자) 이야기를 하고, 그때부터 지난한 협상이 다시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투자위 트럼프 결정권에 "어떻게 하지 못했다"…LMO 우려에 "절차 효율화"
김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대미 투자위원회 구조와 관련한 우려도 언급했다. 최종 승인권이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이 부담 요인으로 지적된 데 대해 김 장관은 "관련해서는 저희들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하는 걸로 돼 있는데 그건 저희가 어떻게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투자위원회 위원장은 러트닉 장관이며, 한국 산업부 장관이 포함된 협의위원회가 안건을 검토해 투자위에 넘기고,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구조"라고 밝혔다. 그는 또 "구체적인 프로젝트 운영은 한국 측 매니저사가 맡도록 하고, 참여 기업도 한국 기업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대만 수준의 관세 혜택을 적용받는 조건에 '미국이 판단(determined by U.S.)'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것을 두고 일각에서 미국의 자의적 해석 가능성을 우려하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부 간 문서에 특정 국가명을 넣는 건 적절치 않다는 미국 내 사정이 있었다"며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라는 일반적 표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미국의 판단 문구가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만 수준 적용에는 문제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나 이면합의 의혹에 대해서도 김 장관은 "쌀·소고기·월령제한 등과 관련해 이면합의는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LMO(유전자변형생물체) 관련 협의에 대해서는 "간소화가 아니라 국내 절차의 효율화"라며, "국내 제도가 지나치게 복잡해 산업부조차 판단이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를 개선하는 차원의 협의였다"고 설명했다.
또 "농산물이 대량으로 들어오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국내 절차 효율화인지 시장 개방인지 앞으로 진행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