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위키드: 포 굿'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스포일러 주의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 그리고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그려냈던 '위키드'가 2막 '위키드: 포 굿'으로 돌아왔다. '사악한 마녀'와 '착한 마녀'의 초록빛 저항과 분홍빛 우정이 빚어낸 '포 굿'이란 넘버는 끝내 혐오와 차별을 넘어 '함께'를 이뤄낸다.
전혀 다르지만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된 엘파바(신시아 에리보)와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의 마법 같았던 우정은 오즈의 마법사와 그를 둘러싼 비밀들을 알게 되면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내몰린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된 사악한 마녀 엘파바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모든 걸 잃을까 두려운 착한 마녀 글린다는 서로 대척점에 서게 되지만, 거대한 여정의 끝에서 운명을 영원히 바꿀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외화 '위키드: 포 굿'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라는, 1막과 2막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넘버를 향해 달렸던 '위키드'는 밝고 화려한 에너지가 강했다면, 2막으로 넘어온 '위키드: 포 굿'(감독 존 추)은 보다 감정적으로 들어가는 만큼 어둡지만 깊이감을 더했다.
기본적으로 '위키드'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이 중심에 있고, 그로부터 여러 가지의 서브 텍스트가 뻗어 나와 다양한 메시지를 전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서로 반대편에 서게 됐지만, 그들에게 우정은 그리 간단하게 끊어질 단어가 아니다. 그들의 우정은 오즈라는 세계가 혐오와 차별, 편견으로 낙인찍은 '다름'을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둘의 우정은 서로에게 없는 것을 채워주고, 서로의 단점이 새로운 가능성임을 일깨우는 과정에서 쌓아 올린 견고한 연대다. 옷차림, 피부색, 성격 등 개인적인 다름들이 부딪히고 한 남자를 두고 갈등하면서도 그들의 중심에 있던 것은 엘파바와 글린다라는 각자의 존재였다.
외화 '위키드: 포 굿'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부딪히면서도 멀어진 적 없는 엘파바와 글린다가 서로의 마음과 우정을 확인하는 모습은 '위키드: 포 굿'의 부제이자 2막의 대표 넘버 '포 굿'(For Good)을 통해 강렬하게 다가온다. '포 굿'으로 하나가 된 엘파바와 글린다의 사이는 우정이라는 말로 담아내기엔 보다 복잡하고 깊다.
'포 굿'이라는 넘버와 함께 두 사람이 우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사악한 마녀'와 '착한 마녀'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던 엘파바와 글린다가 이분법적인 수식어가 만들어낸 '가짜'가 아닌 '진짜'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이다.
특히 늘 '착한'이라는 수식어에 갇혀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춰야 했던 글린다는 엘파바와의 만남 이후 자신을 감싼 거품과도 같은 거짓 행복을 터트릴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글린다는 마담 모리블을 통해 '착한 마녀'의 위치에 올랐고, 타인이 규정한 착한 마녀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엘파바와의 시간은 자신이 정말 행복한 것인지 묻게 만든다.
외화 '위키드: 포 굿'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진짜 세상 그리고 진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거짓의 거품들을 터트리고 진정한 '착한 마녀'이자 '글린다'가 된 글린다의 홀로서기가 감동적인 것은, 홀로지만 엘파바와 '함께' 이뤄낸 것이기 때문이다.
'위키드'를 이루는 또 다른 메시지인 혐오와 차별, 그리고 저항 역시 빠질 수 없다. 서로의 다름을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정하고, 단점을 개성이자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게 된 엘파바와 글린다의 여정처럼 서로 반목하고 비틀렸던 오즈의 세계도 하나가 된다.
가짜 선지자인 오즈의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은 거짓으로 쌓아 올린 그들만의 오즈를 지키기 위해 흑색선전으로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고, 동물들과 사악한 마녀를 배척한다. 진실이 아닌 믿고 싶은 것이 진실이라 믿는 오즈민들, 오즈에서 쫓겨난 동물들, 그리고 글린다를 위해 엘파바는 '사악한 마녀'라는 이름을 품게 된다.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길을 잃은 분노를 오롯이 떠안은 엘파바는 스스로 공공의 적이 되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그 희생과 함께 모든 거짓과 진실을 떠안은 글린다는 배척하거나 배척당한 모든 오즈민을 품으며 진짜 '착한 마녀'가 된다.
외화 '위키드: 포 굿' 스틸컷.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결국 혐오와 차별에 맞설 수 있는 건 파랑과 노랑의 중간 빛인 '초록', 빨강과 하양의 중간 빛인 '분홍'과 같은 마음이다. 사악한 것과 착한 것을 나누는 견고했던 믿음에 의문을 가지고, 진짜를 둘러싼 거품 같은 가짜를 터트리고,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하고자 한 모든 것이 엘파바와 글린다의 여정이었다. 두 사람의 우정과 저항 파랑이나 노랑, 빨강이나 하양 어느 것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초록빛이자 분홍빛이고, 바로 모든 것을 이겨낸 힘이다.
더욱 깊어진 이야기 속에서 엘파바 역의 신시아 에리보와 글린다 역의 아리아나 그란데의 케미스트리 역시 1막보다 깊어졌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포 굿'의 하모니는 1년의 인터미션을 보상해 준다. '디파잉 그래비티'의 강렬함 대신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과 여정, 저항을 모두 담아낸 '포 굿'의 여운은 '디파잉 그래비티' 못지않다.
1막 '위키드'에 이어 2막 '위키드: 포 굿'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자신의 필모그래피의 새로운 막을 연 존 추 감독이 또 다른 뮤지컬 영화도 연출해 주길 기대해 본다.
137분 상영, 11월 19일 개봉, 전체 관람가.
외화 '위키드: 포 굿'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