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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감정 지연 하세월…재판 멈췄다" 소송 당사자 '눈물' ②재판의 '병목'된 감정 지연…왜 반복되나 (계속) |
법원 감정 절차는 재판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장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감정인 부족과 감정 결과의 품질 문제, 불신으로 인한 재감정 요청 등이 겹치며 '병목 구간'으로 고착화되는 모양새다.
사법정책연구원 '감정관리센터 설치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 1심 합의부의 민사본안 전체 평균 처리기간은 2019년 298.3일, 2020년 309.6일, 2021년 364.1일, 2022년 420.1, 2023년 473.4일로 매년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감정이 필수적인 의료·건설사건은 다른 사건보다 평균 처리기간이 현저히 길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의료 사건의 평균 처리기간은 같은 기간 591.5일, 672.4일, 664.2일, 654.1일, 748.5일로 2년 넘게 걸리는 해도 있었다.
장기 미제의 상당 부분도 감정 지연과 관련돼있다. 지난해 8월 기준 민사사건 장기미제 사유의 약 30.63%가 증거조사 지연 때문이었다. 그 중 상당수는 감정절차에서 지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민사사건 3건 중 1건이 감정 지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시간'뿐만이 아니다. 감정 결과를 둘러싼 불신도 깊다. 법원 감정서가 제출된 뒤 원고와 피고 모두 결과를 신뢰하지 못해 재감정을 요청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재감정이 받아들여질 경우, 재판은 또다시 미뤄질 수밖에 없다.
유앤아이 이용숙 변호사는 "재감정은 많이 신청하지만, 잘 안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며 "감정에서 제일 불만족스러운 건 감정인의 전문 지식이라든지 수준을 믿기 어려운 적이 있을 때"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이 사람이 이거 제대로 본 거 맞나? 이런 느낌도 많이 든다"며 "시가 감정을 신청했는데 그냥 KB부동산 시세랑 몇 가지 써놓고 감정가라고 내놓는 경우도 있어서 감정인의 수준을 예측하고 담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민사 건설 재판 지연 이유를 묻는 조사에서 법관 68.1%와 변호사 51%가 '감정 결과의 흠으로 인한 감정 보완'을 꼽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감정 결과가 재판의 승패를 좌우하다 보니, 감정서를 두고 '감정이 곧 판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당사자들의 불신이 커질수록 감정인에 대한 압박도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감정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부족한 점도 구조적 원인으로 꼽힌다.
법원 관계자는 "개별 재판부에서 사건 처리에 적합한 감정인을 선정하는데 필요한 전문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감정의 준비와 진행 단계에서 당사자와 감정인 사이 의견을 조율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또 "특히 의료계의 분쟁과 갈등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전문의 인력이 부족하게되자 신체감정을 촉탁 받은 의료기관에서 전문의 부족으로 회신불가 답변을 하면서 신체 감정을 위해 1년 이상이 소요돼 장기 미제가 되는 사건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