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고려아연이 미국 전쟁부(前 국방부)·상무부(Department) 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제련소를 짓기로 했다. 고려아연과 미국 정부가 함께 합작법인(JV)을 세워 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자금 및 금융비용을 포함한 총 10조9000억원(약 74억 달러) 규모의 공동 투자가 이뤄진다.
이번 결정으로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가 지정한 핵심광물 11개를 생산하게 되면서 '탈중국 공급망'의 최전선에 서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의 간접 주주가 되면서 최윤범 회장이 경영권 승계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美핵심광물 11개 생산…내년 착공
고려아연은 15일 "약 65만㎡(20만평) 규모의 통합제련소를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조성한다"며 "아연과 연, 동 공정 순으로 단계적 가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2027년 착공, 2029년 완공을 목표로, 연간 54만톤 규모의 최종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아연, 연, 구리(동) 등 기초금속과 안티모니, 인듐, 갈륨, 게르마늄 등 총 13종의 금속과 반도체용 황산도 함께 생산할 예정이다. 이 중 11개 품목은 미국 정부가 지정한 핵심 광물이다. 중국에 의존하는 핵심 소재 공급망의 취약성을 해소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테네시주 클락스빌 부지는 지반 및 배수, 지하수 등 제련소 운영을 위한 제반 조건이 우수하고 물류 접근성 역시 양호하다.
또 미국 내 유일한 아연 제련소 니어스타 제련소가 50년 가까이 운영됐던 만큼 전문 인력 수백여 명의 고용 승계도 가능하다.
제련소 원가 경쟁력의 주요 요소인 전력 공급가가 타 지역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 역시 장점이다.
유상증자에 美 보조금까지…최대 주주는 美전쟁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연합뉴스대규모 재원은 고려아연 측의 출자 및 유상증자와 미국 정부의 보조금 및 투자금으로 마련됐다.
고려아연은 이날 임시이사회를 열고 2조8500여억 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하기로 결정했다. 신주 220만9716주를 고려아연과 미국 측의 합작법인(JV)인 크루시블(Crucible) JV LLC에 전량 배정하기로 했다. 고려아연은 또 크루서블에 약 1천323억원을 출자한다고 공시했다. 출자 후 지분율은 10%가 된다.
미국 전쟁부와 투자자들이 약 3조2000억 원(21억5000만 달러), 미 상무부는 CHIPS법(Chips Act)에 따라 미국 장비 조달 및 그 밖의 목적을 위해 자금 2억1000만 달러(약 3100억 원)를 지원한다. 나머지 자금은 미국 정부와 JP모건이 차입해 조달하고 고려아연이 연대 보증한다. 크루시블 최대주주는 미국 전쟁부로 지분 40.1%를 보유한다.
탈중국 전선 최전방에…경영권 분쟁에도 영향
이번 협의는 중국이 지난 10월 희토류 등 전략광물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화한 데 따라 미국 측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성사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에서 체굴한 뒤 제련, 공급까지 탈중국 공급망을 확대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중국의 희토류 등 핵심 광물 패권에 대응하는 광물 동맹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미국은 인듐, 갈륨 등 일부 핵심광물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고려아연이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확대와 미국 내 비철금속 및 전략광물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북미 시장의 중장기 성장성을 선점해 안정적·지속적인 수익 창출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추가 생산 거점 마련을 위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transformational deal)"이라고 평가했다. 스티브 파인버그 미 전쟁부 부장관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핵심 광물을 미국의 국방 및 경제 안보에 필수적인 전략 자산으로 보고, 행정부 차원의 최우선 과제로 삼도록 지시한 바 있다"고 전했다.
반면 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MBK 측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고려아연이 사업 리스크(위험)를 부담하며 미국 측에 '알짜 지분'을 넘기는 기형적인 사업구조"라며 "자금 조달 목적이 아니라 의결권을 확보해 최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해줄 백기사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배임은 물론 개정 상법상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에 반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영풍·MBK는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