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연합뉴스국세청이 서민 생활비 부담을 가중하는 시장 교란행위에 칼을 빼들었다.
국세청은 23일 불공정 행위로 물가불안을 부추긴 탈세혐의를 4가지로 분류하고, 이 같은 행위로 물가상승을 야기한 총 31개 업체에 대해 세무조사를 전격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 대상이 된 탈세혐의는 △표시가격은 유지하되 음식중량(패키지 다운사이징)을 줄여 사실상 가격을 인상한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 △독·과점 기업의 가격담합 △할당관세 편법이용 수입기업 △외환 부당유출 4가지다.
이들 대상 업체 31곳의 전체 탈루혐의 금액은 약 1조 원에 이른다는 게 국세청 설명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슈링크플레이션으로 교묘하게 가격을 올린 프랜차이즈 업체 다수는 원재료·부재료 판매업체와 직거래가 가능함에도 계열법인을 거래단계 중간에 끼워넣어 시가 대비 고가로 매입하는 등의 부당행위도 저질렀다.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A사는 슈링크플레이션으로 발생한 이익에 더해, 사주일가가 운영 중인 계열법인이 부담해야 할 약 40억 원의 광고선전비를 A사가 대신 지급하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지원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또한 A사는 제3의 법인이 가맹점 인테리어를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소개비를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아 거래를 은폐하고 매출을 누락한 혐의도 받는다.
할당관세를 적용받아 원재료를 저렴하게 수입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면서도, 이를 판매가격에 반영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한 수입기업도 적발됐다. 할당관세는 물가안정과 특정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정기간 농·축·수산물 및 가공식품 원료 등에 대해 관세율을 낮춰주는 제도다.
전국적인 판매망을 구축한 수입율 전문유통업체 B사는 할당관세를 통해 저렴하게 확보한 수입율을 사주일가가 주주로 있는 특수관계법인에 업종평균 대비 절반의 마진율만 남기고 시가보다 저렴하게 공급해 이익을 분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결과 B사는 수년 전보다 매출액이 3배 이상 급증, 주주인 사주의 자녀에게 고액 배당을 지급했다. 사주 자녀는 이렇게 받은 배당금으로 고가의 토지와 건물을 구매하며 호화·사치생활을 영위했다고 국세청은 지적했다.
법인자금을 편법으로 유출해 고가의 해외자산 등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외환 수요를 증가시켜 환율을 올린 업체도 조사 대상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외국국적을 보유하고 국내에서 다수의 법인을 운영하는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이 수출대금 등 사업활동에 대한 대가를 외국인 지위를 이용해 개설한 대외계정을 통해 수취하고, 개인소득세 신고를 누락한 경우도 있었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를 통해 물가·환율 상방압력을 유발하는 등 시장 불안정성을 키우면서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시장 교란행위 탈세를 철저히 검증한다는 방침이다.
국세청 안덕수 조사국장은 "일시보관, 금융계좌 추적, 포렌식 기법 등 사용 가능한 수단은 모두 동원하고, FIU(금융정보분석원) 및 수사기관 정보, 외환자료 등을 활용해 물가와 환율 변동성을 기회로, 보이지 않는 편법적 이득을 얻으면서도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회피하려는 행위를 단호히 차단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조세범처벌법상 장부‧기록 파기 등 증거인멸 행위나, 재산은닉 등 범칙행위가 확인될 경우 수사기관에 고발해 징역‧벌금 등 위법행위에 상응하는 형사처벌로 이어지도록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