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격앙된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시설물 등을 파손하며 폭동을 일으킨 다음 날인 지난해 1월 20일 서부지법에 쓰러진 현판이 놓여 있다. 류영주 기자1년 전 이날(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을 반대하며 서울서부지법 앞에 나간 한 청년의 선택은 현대사에 큰 비극으로 남았다. 꿈도 미래도 모두 불투명해진 지금, 그 청년은 구치소 안에서 자신의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경찰을 꿈꿨던 청년의 뒤늦은 반성
지난해 1월 19일 새벽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후문에서 한 남성이 청사 건물을 향해 긴 막대를 던지고 있다. 양부남 의원실 제공"군중심리와 알 수 없는 호기심 등에 이끌려 7층까지 올라갔었지만…."
지난해 1월 18일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 당시 7층 판사실까지 올라갔던 손모(36)씨가 최근 대법원에 제출한 탄원서의 일부다. 그는 서부지법 폭동 사태 가담 혐의가 인정돼 4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사실 그는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끝난 지난해 1월 18일 오후, 손씨는 평소처럼 시험 준비를 위해 집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서부지법에 모여 달라." 윤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때라 보수성향의 유튜브 방송 등을 보게 됐는데, 마침 서부지법 앞으로 모여 달란 말을 들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니 굳이 가지 말라는 지인의 만류도 있었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손씨는 곧장 서부지법으로 향했다.
구속 심사 결과는 꽤 오랜 시간 나오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도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될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새벽까지 결과를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날인 1월 19일 새벽 2시 50분, 손씨에게 들려온 심사 결과는 '구속영장 발부'였다.
지난해 1월 19일 새벽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후문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 바리케이트와 분리수거대 등을 활용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양부남 의원실 제공
기대감이 높아져 있던 지지자들의 마음은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둘 언성이 높아지고, 몸싸움을 시작했다. 그렇게 손씨는 어느새 자신의 꿈이었던 경찰관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서부지법 앞을 지키던 경찰 벽은 무너졌고, 움직이는 군중을 따라 손씨도 서부지법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몰랐던 것이다. 경찰 벽이 무너지는 순간 경찰이 되고 싶었던 손씨의 꿈도 무너지고, 서부지법으로 옮긴 발걸음이 구치소로 향하는 길로 이어진다는 것을.
손씨는 그렇게 서부지법 폭동 사태의 주범이 됐다. 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김우현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22일 특수건조물침입, 특수공무집행방해, 현주건조물방화미수 등 혐의를 받는 손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 피고인 중 두 번째로 높은 형량이다.
그는 폐쇄회로(CC)TV 등 장비를 파손하고 경찰을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방화를 시도한 이른바 '투블럭남' 심모(19)씨에게 기름통을 받고 약 15초 동안 법원 1층 내부에 기름을 뿌린 혐의도 있다. 지난달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된 그는 대법원 재판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해 1월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되는 가운데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고 있다. 황진환 기자"정신을 차린 지금의 관점으로 그때의 상황을 회상했을 때의 일이고, 당시에는 정말이지 일시적으로나마 정신이 온전치 못했으며,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심결에 벌어진 일들이었습니다."
대법원 재판부에 보낸 탄원서에서는 손씨의 뒤늦은 후회와 자백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손씨는 당시 자신의 선택을 사무치게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한다. 집 밖으로 나갔던 선택부터, 서부지법 안으로 들어간 선택, 그리고 그 안에서 심씨에게 건네받은 기름을 뿌렸던 그 모든 선택을 말이다.
그는 사건 직후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직접 경찰에 자수했다. 구속된 후로는 반성의 뜻으로 황교안 전 국무총리(현 자유한국당 대표) 등이 제안한 무료 변호도 거절했다. 황 전 총리 등은 당시 무료 변호를 제안하며 손씨 등 서부지법 폭동 사태 피고인들에게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반성하겠다는 자신과 생각과 많이 달라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사랑제일교회 목사 전광훈씨와 유튜브 채널 '진격의 변호사들' 등 여러 보수단체에서도 영치금을 후원했지만, 일체 거절했다. 혼자만 반성한다는 이유로 다른 피고인들로부터 구치소에서 '배신자' 취급을 받으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손씨는 탄원서에서 "전적으로 제 잘못이고, 구속된 기간 동안 참회하는 마음으로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기름을 뿌렸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심씨와 공모해 방화를 미수했다는 사실에 대한 억울함을 표하고 있다. "서부지법에 불을 지르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심씨와 방화를 꾸민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무죄는 한 명도 없었다…숫자로 본 서부지법 폭동
손씨가 반성과 후회의 시간을 보낸 지난 1년 사이, 법원도 지난 1년을 되돌아보는 책을 펴냈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 1년을 1개월 앞둔 지난달 서부지법은 '1·19 폭동 사건 백서'를 내고 서부지법 폭동에 대해 "사법부 독립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중대한 사건"이라며 "사건을 역사에 남기고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백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4일 기준 서부지법 폭동 사태로 기소된 137명 중 1심 선고를 받은 피고인은 총 94명. 그중 징역형은 69명, 징역형의 집행유예는 23명, 벌금형은 2명이었다. 그중 가장 높은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사람은 손씨와 공모해 불을 지르려 했다는 혐의를 받은 심씨며, 그 뒤를 손씨가 이었다. 또 전체 피고인 중 1심에 불복해 항소한 사람은 총 65명이었다. 무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을 연령별로 나누면 10대 2명, 20대 28명, 30대 47명, 40대 20명, 50대 22명, 60대 15명, 70대가 3명이다. 3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20~30대 청년이 전체의 약 55%를 차지했다. 피고인들을 직업별로도 나누면 기타 직업을 가진 61명을 제외하면 무직자가 38명으로 가장 많았고, 회사원이 18명, 자영업자가 8명, 유튜버가 7명, 학생이 5명으로 그 뒤를 따랐다. 또 피고인 중 남성은 123명이고 여성은 14명이었다. 30대 무직 남성인 손씨는 가장 전형적인 피고인의 모습이었다.
한편 서울서부지검은 지난달 1일 보도자료를 내고 당시 기준 전체 피고인 수는 141명이고, 그중 구속 기소된 피고인이 95명이라고 밝혔다. 백서에서 집계한 기준일(9월 24일)보다 2개월을 더 수사해 4명을 추가로 기소한 것이다. 또 그중 재판 중인 인원은 97명, 판결이 확정된 인원은 44명이었다. 현재는 추가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수가 더 늘어 총 146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로 인한 피해액은 총 7억 6천만 원가량(서부지법 시설물 등 피해액 4억 7857만 원, 물품 피해액 1억 3843만 9천 원, 미술품 피해액 520만 원, 복구 공사 비용 1억 3988만 4천 원)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서부지법은 백서를 통해 "형사 재판 결과와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된 가운데 지난 14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1년 전 '서부지법 폭동 사태'는 헌정사에 길이 남을 비극이 됐다. 시간이 흘러 군중의 광기(狂氣)는 사라지고 부서졌던 법원청사는 다시 재건됐다. 남은 것은 사회가 받은 상처의 기록과 피고인들의 뒤늦은 후회뿐이다. 경찰 시험을 준비하던 손씨가 꿈꾸던 미래의 제복 역시 단 몇 시간 만에 죄수복으로 바뀌었다. 또 다수의 피고인은 수년간의 수형 생활과 함께 수억 원대 손해배상 책임을 떠안을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재판을 받으면서도 아직도 반성을 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일부 피고인은 지난해 8월 서부지법 폭동 사태 옹호 행사에서 연단에 올라 "(나에게) 사실상 죄가 없으니까 집행유예로 풀려나오지 않았겠냐"는 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해당 피고인들의 변호인이자 윤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하상 변호사는 폭동 가담자들을 "혁명가"라고 부르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우려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사태의 출발점과도 같았던 윤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공개적인 사과는 물론, 후회의 모습은 단 한 순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윤 전 대통령에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고, 이에 대한 법원의 선고는 다음달 29일 내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