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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오독에 관한…줄리언 반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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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페미나상, 메디치상 등 전 세계 문학상 휩쓸어

다산북스 제공 다산북스 제공 

부커상 수상 작가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생애 마지막 소설이 될 것이라고 밝힌 신작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18개국에서 동시 출간됐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그의 말과 달리 죽음이나 작별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소설은 아니다. 대신 이 작품은 기억이 어떻게 어긋나고, 타인의 삶이 어떻게 이야기로 오독되는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야기다. 노년의 소설가를 화자로 내세운 이 작품은 반스가 평생 집요하게 탐구해온 '기억의 불확실성'에 대한 가장 느리고, 가장 단정한 응답에 가깝다.

소설의 화자는 관리 가능한 혈액암 진단을 받은 노년의 작가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비극적으로 응시하거나 삶을 정리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친구들의 죽음, 흐려지는 기억, 시간의 감각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평생 해온 일, 즉 관찰하고 기록하고 질문하는 행위 자체로 되돌아간다. 그는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 태도는 곧 이 소설의 서술 방식이 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인물, 스티븐과 진이 있다.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이들은 헤어진 뒤 각자의 삶을 살다 수십 년 만에 다시 재회한다. 이 과정에 화자가 개입한다. 그는 한때 이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그 약속을 어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세 사람의 기억은 서로 다르게 어긋나고, 누구의 기억도 완전히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진실은 끝내 하나의 서사로 정리되지 않는다.

반스는 이 어긋남을 통해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타인의 삶을 이야기로 만드는 순간, 작가는 이미 그 삶을 배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은 진실에 다가가는 도구일까, 아니면 삶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장치일까. 화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을 의심하며, 소설 쓰기라는 행위 자체를 심문한다.

기억은 이 작품에서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다. 반스의 세계에서 기억은 언제나 시간이 덧입힌 이야기이며, 삶을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묶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앞과 뒤는 있으나 중간이 비어 있는 구조로 전개된다. 사건의 공백, 설명되지 않는 감정, 결론 없는 대화들이 이어지며 독자는 빈칸을 스스로 채워야 한다.

이 소설은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반스는 설명하지 않고, 단정하지 않으며,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 곁에 앉아 말을 건다. 기억은 무엇인가, 사랑은 같은 의미로 공유될 수 있는가, 우리는 과연 자신의 삶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질문은 제시되지만 답은 남겨둔다.

소설의 마지막은 지극히 평범하다. 이름 모를 나라의 소도시, 카페의 야외 좌석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한 남자. 사건도 결말도 없다. 그러나 이 장면은 반스의 작가 인생 전체를 응축한다. 그는 끝까지 관찰자로 남는다.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오래 보고 싶은 사람으로.

줄리언 반스 지음 | 정영목 옮김 | 다산북스 |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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