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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녀에게 물려줄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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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믿음, 최고의 유산 10

최주훈 목사 제공최주훈 목사 제공
누가 그런다. 믿음을 물려주면 자녀가 행복해진다고! 정말 그런가. 솔직해지자. 우리가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려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가 사람답게 살길 바라서인가, 아니면 '믿으면 복 받는다'는 공식 안에 아이를 안전하게 넣어두고 싶어서인가. 여기서부터 꼬인다. 행복이 신앙의 목표가 되는 순간, 믿음은 유산이 아니라 보험이 된다. 보험은 손해를 막기 위한 것이지 사람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 부모들의 불안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숫자가 하나 있다. 부동산도, 주가지수도 아니다. 사교육비다. 해마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중이다. 영어, 수학, 논술, 코딩에 이제는 AI 캠프까지 안 가르치는 게 없을 정도다. 우리는 자녀에게 '최고의 것'을 쥐여 주겠다고 극성인데, 정작 가장 본질적인 것을 빠뜨리고 있지는 않은가. 스펙은 쌓아주면서 사람다움은 가르치지 않는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은 가르치면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선택하고 살아내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은 유산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본다. 시편 127편 3절,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여기서 '기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할라(נַחֲלָה)'는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맡기신 몫이라는 뜻이다. 자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 자체가 하나님이 부모에게 맡기신 유산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근본부터 달라져야 한다. '내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까' 대신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이 아이를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세우고 있는가.'로 말이다.
 
여기서 불편한 현실과 마주한다.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를 외치면서 정작 다음 세대를 잃고 있다. 청년이 되어 교회를 떠나는 비율은 해마다 높아진다. 왜일까. 우리가 전수한 것이 '사람다운 믿음'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종교적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믿으면 형통하고, 기도하면 잘 풀리고, 헌금하면 돌려받는다는 메시지, 그 공식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걸 확인하는 순간, 아이들은 신앙을 송두리째 내려놓는다. 합리성이 깨지고 효율이 떨어지며 행복 보장이 깨지면 믿음도 함께 무너지는 구조다. 이것은 신앙의 실패가 아니라 신앙 교육 설계 오류다.
 
한번 생각해 보자. 예수는 행복했나. 태어나자마자 난민 신세로 떠돌았고, 고향에선 동네 사람들에게 쫓겨났고, 제자에게 배신당했고, 온갖 누명 끝에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완전한 실패다. 이보다 비효율적이고 처참한 결말이 또 있을까. 그런데 질문을 바꾸면 답이 통째로 뒤집힌다. "사람다웠는가"라고 물으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예수의 삶은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다운 참사람의 삶이었다.
 
십자가의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는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했지, "나를 따르면 편해질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마태복음 16:24). 합리적으로 계산하면 십자가는 미친 짓이다. 손익을 따지면 절대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러나 예수는 계산하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 그것을 선택했고, 끝까지 살아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는 참사람의 모습이다. 사람다움이란 결국 합리적이고 영리하게 세상을 건너는 기술이 아니다. 마땅한 일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 결단, 그 결단을 삶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믿음의 삶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십자가 대신 쿠션을 물려주고 있다. 고통 없는 신앙, 손해 없는 믿음, 실패 없는 인생. 이런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 세대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박해가 아니라 값싼 은혜"(「나를 따르라」, 디트리히 본회퍼)다.
 
신명기 6장의 쉐마(שְׁמַע)는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해법을 품고 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명기 6:7). 여기서 '가르치라'는 히브리어 '쉬난(שָׁנַן)'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날카롭게 새기다'는 뜻이다. 칼날을 갈듯 반복해서 삶에 각인시키라는 것. 이것은 주 1회 예배 출석으로 완수되는 과제가 아니다. 앉을 때, 걸을 때, 눕고 일어날 때. 삶의 모든 순간이 믿음의 현장이 되는 것. 쉐마가 요구하는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부모의 존재 방식 그 자체다. 마땅한 일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 부모의 등을 보며, 아이는 비로소 사람다움을 배운다.
 
결국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고통 없는 삶의 보장이 아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의 도리를 선택하는 용기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마땅한 길을 걷는 단단함이다. 그것은 부모의 무릎에서 시작되고, 부모의 눈물 묻은 기도 위에 세워지며, 세상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부모의 뒷모습을 통해 전수된다.
 
지금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행복이라는 포장지인가, 사람다움이라는 뼈대인가. 이 질문 앞에 정직해지는 것. 그것이 다음 세대를 향한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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