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캡처◇권오철: 2024년 4월 29일에 시작됐던 금강 세종보 상류 천막 농성이 지난 30일, 700일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이게 멈춰 있던 강의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이어진 시간이고, 또 단순한 농성을 넘어 이게 시민들의 연대와 생태 회복의 현장이기도 했는데요. 700일 동안 이 현장을 직접 지켜온 이야기, 오늘 좀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사무처장 자리하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경호: 안녕하십니까?
◇권오철: 처장님, 소회가 좀 어떠십니까?
◆이경호: 뭐랄까요,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고요. 사실 두려움도 있습니다. 시작할 때도 철저하게 계획된 농성은 아니었고, 마무리 역시 완전히 계획된 상태는 아닙니다. 희망과 가능성, 그리고 활동가들과 시민들과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건데요. 이번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결국 이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권오철: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농성,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이경호: 2024년 4월 29일, 금강 상류에 작은 천막 하나를 세우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윤석열 정부에서 세종보 재가동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강의 흐름을 다시 막아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 농성으로 이어졌습니다. 5월 1일에 세종보 담수가 예고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틀 전에 농성장을 먼저 설치했고요. 세종보가 물에 잠기면 농성장도 잠길 수 있는, 아주 아슬아슬한 위치에 천막을 쳤습니다. 사실 2023년에 공주보에서도 농성을 했다가 공권력에 의해 6일 만에 철거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언제든 진압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권오철: 농성 초기 분위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경호: 맞습니다. 처음에는 불안감이 굉장히 컸습니다. 결심은 했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시민들이 계속 찾아와 줄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요. 공주보 사례처럼 언제든 무력 진압이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대비하며 지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 우리가 물러서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위기감이 컸습니다. 처음에는 참여 인원이 많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에는 충분한 사람들이었고요. 굉장히 단단하게 버텨낸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연대를 위해 텐트를 함께친 모습. 대전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캡처◇권오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이경호: 개인적으로는 '변화가 없으면 어떡하나'라는 불안이 가장 컸습니다. 현장을 지키고 목소리를 내도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가 보내는 시간이 의미 없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계속 되묻고,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면서 버텼던 것 같고요. 저를 포함해 3명의 활동가가 중심이 되어 지켜왔는데, 그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권오철: 700일 동안 시민 참여도 상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경호: 연인원으로 약 2만 명 정도가 다녀갔습니다. 단순히 지나가는 방문이 아니라 함께 머물고 시간을 나누는 참여였습니다. 강가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밥을 함께 먹고 쉬어가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 경험들이 쌓이면서 단순한 투쟁 공간을 넘어서 소통의 공간, 일종의 광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간들이 저희를 버티게 한 힘이었습니다.
◇권오철: 현장에서 생태 변화도 확인됐다고요?
◆이경호: 네,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농성장이 아니라 생명들이 함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자연 속에 있다 보니 변화가 직접 보였는데요. 너구리나 고라니가 매년 같은 시간대에 나타났고, 멸종위기종인 흰목물떼새의 번식도 확인됐습니다. 흰수마자나 미호종개도 관찰됐고요. 세종보 개방 이후 생태가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기록한 시간이었습니다.
◇권오철: 이 변화, 어떤 의미로 볼 수 있을까요?
◆이경호: 2017년 수문 개방 이후 생태 회복은 데이터로도 확인되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경험은 전혀 다릅니다. 펄이 사라지고 모래와 자갈이 쌓이고, 생명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강이 흐르면 생태도 살아난다'는 걸 가까이에서 체감했습니다. 또 하나는 공존에 대한 감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고라니가 멀리서 경계했는데, 나중에는 가까이까지 다가오는 모습도 보였고요. 자연과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워진 경험이었습니다.
2024년 5월 세종보 농성장에서 확인한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의 번식 모습. 대전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캡처◇권오철: 정책 흐름 속에서 이 농성의 의미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경호: 문재인 정부에서 재자연화 정책이 추진됐지만, 보 철거까지는 이어지지 못했고요. 이후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정책이 후퇴했습니다. 세종보는 2017년 이후 한 번도 닫힌 적이 없었는데, 다시 재가동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걸 막기 위해 농성이 시작됐습니다. 저희는 이 과정을 '물의 반란', 줄여서 '물의 난'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결과적으로 정부가 바뀌고 정책 변화가 생기면서, 그 흐름을 인정하는 단계까지 왔기 때문에 농성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권오철: 최근 정부와 시민사회가 합의에 이르렀다고 했는데요, 어떤 내용입니까?
◇이경호: 이재명 정부가 들어와서 처음부터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최근 정부 입장이 바뀌었고요. 시민사회, 학계, 환경부가 함께 TF를 구성해서 약 4개월간 논의하고 정책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토대로 협의가 이뤄졌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합의 내용을 보면, 낙동강은 녹조 개선과 보 처리 방안 추진을 위해 2028년을 목표로 취양수장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요. 녹조가 심각한 하류 4개 보는 녹조 시기 이전에 대체 시설을 가동해 수문 개방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또 16개 보에 대한 처리 방안이 중요한데요. 사회·경제성 분석과 용역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2026년 국가 물관리 기본계획에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금강과 영산강은 2027년 상반기부터 이행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녹조 공동조사는 국민 안전 차원에서 정밀하게 진행하고, 농산물 문제는 식약처와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실무 논의 기구, 즉 거버넌스를 구성해 추진하기로 했는데요. 다만 아직은 선언 단계라고 봐야 합니다. 과거에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더 엄격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오철: 그래도 이번 합의, 의미 있다고 보십니까?
◇이경호: 네, 의미 있다고 봅니다. 낙동강과 한강은 그동안 보 처리 방안 자체가 없었는데, 이번에 4대강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 방안이 마련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또 일부 보는 중간 보고 형태로 빠르게 결정하겠다는 방향까지 나온 상황이라, 논의 구조와 거버넌스가 잘 유지된다면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희가 농성을 정리한 것도 그런 기대와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오철: 그렇다면 농성 종료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이경호: 문제가 해결돼서 멈춘 건 아닙니다. 단계가 바뀌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현장에서의 물리적 저지는 일정 역할을 했고, 이제는 정책 이행을 요구하고 감시하는 단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종료'가 아니라 '전환'이라는 표현을 썼고요.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과정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권오철: 기자회견에서 '기억식'이라는 표현도 쓰셨습니다.
◇이경호: 네, 기자회견과 함께 기억식을 진행했습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했고요. 700일 동안 현장을 지킨 것도 중요하지만, 목표는 결국 강을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걸 현실로 만드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기억식은 단순히 정리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이 시간을 기억하고 이어가자는 의미였습니다. 700일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쌓인 과정이기 때문에, '종료'가 아니라 '기억'으로 남기자는 취지였습니다.
◇권오철: 지금 현장은 어떤 모습입니까?
◇이경호: 천막은 모두 철거했고요. 대신 솥대와 작은 돌탑을 남겨두고 왔습니다. 겉으로는 비어 있는 공간이지만, 더 많은 의미가 남아 있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생명과 기억, 그리고 책임이 함께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처음에도 자연에 잠시 빌린다고 했는데, 이제 다시 자연에 돌려줬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보면 좀 쓸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희도 나올 때 그런 감정이 있었는데요. 그래도 그 시간이 남아 있는 공간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권오철: 앞으로 과제는 무엇입니까?
◇이경호: 결국 이행이 가장 중요합니다. 정책이 실제로 실행되느냐가 핵심입니다. 정부가 속도와 실리를 강조하고 있지만, 환경 정책은 아직 그 부분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더 빠르게 실행할 수 있도록 요구할 것이고요. 필요하다면 다시 행동에 나설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농성뿐 아니라 더 큰 행동도 가능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권오철: 현재 세종시장 후보군들에 대한 입장도 좀 궁금해지는데, 후보들의 입장은 좀 어떤지도 한번 이야기해 주시죠.
◇이경호: 전체를 다 보진 못했지만, 민주당 후보들 대부분은 보 재가동에는 신중한 입장인 것 같습니다. 다만 존치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요. 저희는 거기서 더 나아가 철거와 재자연화까지 가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현 시장은 보 활용 중심 정책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선거 과정에서도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권오철: 그렇다면 기후나 환경 관련된 정책들을 내놓는 후보들이 좀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이경호: 요즘은 오히려 '제2의 개발 시대'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가 일을 잘하는 부분도 있지만, 환경에 대한 철학은 부족해 보입니다. 경제 성장 중심으로 가면서 생태나 환경 정책은 후퇴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일부 변화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개발 중심 공약이 더 많은 상황입니다.
◇권오철: 후보들에게 정책 제안도 하실 계획입니까?
◇이경호: 네,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송전탑 문제 같은 경우 지역에서 중요한 이슈인데, 적극적으로 다루는 후보가 많지 않습니다. 에너지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전이나 화력 중심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흐름이 있는데, 이 부분은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권오철: 알겠습니다. 사무처장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경호: 농성은 마무리됐지만 강을 흐르게 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700일은 하나의 과정이었고, 앞으로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해 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앞으로의 과정도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권오철: 알겠습니다. 합의 이후 실제 변화로 이어지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경호: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