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가운데), 정이한 개혁신당 후보. 연합뉴스·각 캠프 제공부산 시민들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일자리'였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난 시민들은 후보들이 내건 '글로벌 허브도시'나 '해양수도' 같은 거창한 구호보다, 당장 먹고살 수 있는 일자리와 민생 회복을 더 절실한 과제로 꼽았다. 양강 구도에 제3지대 도전까지 맞물리며 공약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민심은 기대보다 차분하고 냉정했다. 도시의 미래를 바꿀 비전에 대한 기대와 함께, '떠나는 부산'을 막아달라는 간절한 요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부산 곳곳을 돌며 시민들이 바라는 '진짜 부산의 숙제'를 들어봤다. "부산에서 버틸 수 있게"…현장에서 터져 나온 '일자리' 요구
평일 오전 부산 연제구의 한 거리에 시민들이 길을 가고 있다. 정혜린 기자17~19일 부산 곳곳에서 만난 시민들의 목소리는 한 방향으로 모였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에서 취업과 정착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현장 곳곳에서 이어졌다.
부산 연제구에 사는 전경자(70·여)씨는 "일자리만 있으면 열심히 일해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데, 아들 둘 다 일자리가 없어서 모두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부산에 없다"며 "해양수산 관련이든 기업이 좀 와서 대학교 졸업하는 아이들이 부산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동구 수정시장 상인 김옥순(63·여)씨는 "지금 부산은 일할 데가 없어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고 있다"며 "부산에 원래 있던 공장은 다 내보내고 그 자리에 자꾸 아파트만 짓는 형편이다. 쓸데없이 아파트만 짓지 말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부산의 지금 가장 큰 숙제"라고 지적했다.
'일자리 부족'과 취업난의 당사자인 청년들 역시 일자리가 없어 부산을 떠나는 사례가 많다며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토로했다.
부산 남구에 사는 정예빈(27·여)씨는 "부산에 청년들의 일자리가 너무 부족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데다, 수도권에 비해 임금 수준도 낮아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며 "부산에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또 청년들이 계속 부산에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상구 대학생 최우영(22·남)씨 역시 "대학생으로서 청년들이 부산에서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조금 더 만들어주길 바란다"며 "또 부산에 대학교가 많은데 이 대학생들이 부산에서 취업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지역 내 기업들과 대학교 간에 연계가 더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전재수 '해양수도' 공약…민심 기대와 평가 교차
부산 동구에 위치한 해양수산부 외관. 정혜린 기자지난해 12월 부산으로 이전한 해양수산부가 자리를 잡으며 그 직접적인 효과를 누리고 있는 부산 동구에서는 '해양수도'에 대한 기대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장 해수부 이전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갈렸지만, 새로운 인물과 구상을 통해 지역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인근에서 사무용품 업체를 운영하는 최광진(53·남)씨는 "해양수산부 이전으로 인근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유입됐고, 동네 분위기가 크게 달라져 활기를 게 됐다"며 "해수부 하나만 온 게 아니라 관련 업체들도 내려와 유입 효과가 더 큰 것 같다. 북극 항로 개척도 추진되면 더 많은 기업이 올 거고, 해양중심도시로 중점을 두면 부산이 더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어 "해양수산부 이전 등 해양수도에 대한 비전과 구상을 갖고 실천할 수 있는 후보를 부산시장으로 지지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 동구 수정전통시장과 해양수산부 모습. 정혜린 기자해양수산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성진(54·남)씨 역시 "해양수산부 이전으로 확실히 손님 수가 늘어나 이전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는 임시 청사인데 이 자리에 오래 있었으면 좋겠고, 나중에도 북항으로 이전했으면 좋겠다. 북항에 야구 돔구장 건설 공약도 동구가 더 발전할 것 같아 기대된다"며 "해양 수도 공약에 대해서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부분이 동구 지역에서는 선거에 중요한 핵심으로 작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해양수도'로의 도약이 현 상황에서 부산이 국제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부산진구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김성민(55·남)씨는 "해양수도 구상이 현재 부산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해수부 산하 기관이 추가로 내려오는 것이나 해사법원 개원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며 "이를 통해 제대로 된 국제 항구로서 허브 항만 역할을 할 수 있고, 부산이 글로벌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번 더' vs '추진력 한계'…엇갈린 박형준 평가
서면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길거리를 걷고 있다. 정혜린 기자지난 2021년부터 5년간 부산 시장으로서 시정을 운영해 온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에 대해서는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부산 연제구에 사는 윤동근(65·남)씨는 "부산을 위해 일할 사람이라면 크게 여야를 따지진 않지만 전재수 후보는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으로 신뢰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며 "박형준 시장은 앞으로 나름대로 계획이 있을 것이고, 한 번 더 하면 더 순조롭게 잘 이뤄나갈 것 같다"고 평가했다.
부산진구 서면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박모(72·여)씨는 "그동안 일을 많이 못한 것 같은데 그래도 한 번 더 기회를 더 줘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까지처럼 축제나 문화 쪽으로 과도하게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제조업을 많이 유치해 일자리도 늘리고 경기가 살아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한 번 더 공약을 실천할 기회를 주고 싶지만, 야당인 만큼 사업 추진 동력이 떨어질 것 같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인근 부전시장 상인 이대동(63·남)씨는 "4년이라는 세월이 짧기 때문에 뭘 하나만 하려고 해도 시간이 금방 흐른다. 조금만 더 밀어주면 공약을 다 실천할 것 같다"며 "부산·경남 통합도 지역 발전을 위해선 꼭 필요하다. 통합을 해야 자금이 들어오고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박형준 시장을 밀어주고 싶은데 야당이고, 국회 의석수도 적어 힘이 없을 것 같다. 공약이나 부산을 위한 사업을 잘 추진할 수 있을지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양강 구도 속 '청년 후보'…인지도 낮지만 신선함은 강점
부산 남구 국립부경대학교 앞에서 시민들이 거리를 건너고 있다. 정혜린 기자박형준 국민의힘 후보와 전재수 민주당 후보의 양강 구도 속에서 청년을 전면에 내세운 정이한 개혁신당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부산 시민들은 정 후보에 대해 "들어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주로 보였다.
두 후보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상황이지만 시민 일부는 신선한 인물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젊음'과 청년을 내세운 개혁신당 후보가 부산 선거판에서 실질적인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부산진구에 사는 강민주 (30대·여)씨는 길을 지나다가 정 후보를 홍보하는 건물 전광판을 보고 출마 사실을 알게 됐다. 조씨는 "부산시장 후보라는데 너무 젊어 보이고 처음 보는 인물이라 검색을 해봤었다"며 "여야 후보보다 새로운 인물이고, 청년으로서 세대교체를 내세우고 있어 긍정적으로 봤다. 지지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로 좀 새로운 게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호기심은 있다"고 말했다.
황모(30대·남)씨는 "부산에 청년 이탈이 심한 상황에서 일자리 등 주로 청년을 위한 공약을 갖고 나왔다는 것에 대해 기대해 볼 만한 것 같다"며 "또 여야 두 정당이 독점하는 것보다 비교적 영향력은 크지 않더라도 제3지대에서 견제하는 느낌으로 출마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두 후보에 비해 부족한 연륜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북구에 거주하는 김모(30대·여)씨는 "또래인데 이렇게 젊은 후보가 나와서 놀랐다"며 "새로운 시도고 청년 정책도 부산에 필요하긴 하지만, 나이가 어려 경험이나 연륜이 아무래도 부족할 텐데 쟁쟁한 두 후보 사이에서 경쟁력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먹고사는 문제부터"…민심은 '체감 정책' 요구
부산 부산진구 부전시장 모습. 정혜린 기자일부 부산 시민들은 '해양수도', '글로벌허브특별도시'와 같은 거대한 구호보다도 경기가 회복되고 당장의 생계의 어려움이 해결되는, 서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공약을 요구하고 있다.
부전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정한(57·남)씨는 "장사만 잘 되게 해주고, 서민들 먹고 살게만 해주면 끝이지 바랄 게 뭐가 있냐"고 말하며 손을 내저었다.
이어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인건비랑 월세 주면 남는 돈이 없다. 올해 누가 되든 상관없지만 서민들 먹고 살게 해주면 아무 걱정도 없다"며 "선거 기간에만 반짝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부산 시민들을 생각하고 신경 써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연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50대·여)씨 역시 "돈 걱정이 없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은 생계에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법이 개정돼 최근 압류 방지 전용 계좌가 나온 것처럼 생활이 어려운 금융 취약계층 등 서민들에게 당장 삶에 와닿는 게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누가 부산을 떠나지 않게 할 것인가
결국 부산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분명했다.
'해양수도'와 '글로벌 허브도시' 같은 거대한 구호 이전에, 이 도시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었다.
양질의 일자리와 민생 회복 없이 미래 비전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이번 선거는 누가 더 큰 청사진을 제시하느냐가 아니라, 그 비전을 시민의 삶으로 얼마나 끌어내릴 수 있느냐를 가르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떠나는 부산'을 멈출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느냐,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부산 민심이 던진 가장 단순하고도 무거운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