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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산자가 폭도?…국가폭력의 기록 '4·3 기억의 폭풍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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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 방송 : CBS 라디오 <시사매거진 제주>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17:00~17:30)
■ 방송일시 : 2026년 5월 11일(월) 오후 5시
■ 진행자 : 류도성 아나운서
■ 대담자 : 허호준 전 한겨례신문 기자

<시사매거진 제주>, 4.3신간 발간한 허호준 전 기자
트라우마와 디아스포라의 기록, '기억의 폭풍'속에서 건져 올린 인간 존엄성
100개의 장면으로 세운 4.3의 숲…실증적 사료로 역사의 거대 담론 세우다
허호준 기자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에 머물러선 안 돼"
"사실 규명과 사후 연구의 '투트랙' 병행" 강조

허호준 전 한겨례신문 기자.허호준 전 한겨례신문 기자.
30년 넘게 언론인으로, 그리고 4.3연구자로 활동해온 허호준 작가가 신작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같은 시대를 다르게 겪은 두 사람의 삶에 관하여ʼ를 주제로 북토크를 가졌습니다.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자리를 내려놓고 현재 일본 리쓰메이칸대 코리안연구센터 객원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이 시간 허호준 작가를 만나보겠습니다.
 
◇류도성> 제가 호칭을 고민 많이 했는데요. 어떻게 불러야 되는지, 작가님이 편하세요? 아니면 연구원? 전 기자 어떤 게 편하십니까?  

◆허호준> 제가 지난 36년 동안 일선 취재기자로 활동해 왔어요. 지난해 4월 퇴직한 뒤에 처음 만나는 분들에게 소개할 때는 뭐라고 하지 고민하다가 그래도 기자라고 말해지더라고요. 습관이 무섭습니다. 작가라고 하기에는 제가 너무 부족하고요. 지금까지는 아무래도 허 기자가 편하죠.  

◇류도성> 북 토크는 잘 진행하셨는지 분위기가 어땠습니까?  

◆허호준> 서귀포시 서호동에 있는 동네 책방 '인터뷰'라는 곳에서 북토크를 가졌습니다. 감귤 창고를 개조한 곳이라고 하는데 아담하고 예뻤습니다. 한 20여 명 정도가 참여를 했는데요. 제가 올해 4월에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와 그리고 <아카이브로 본 역사>라는 4.3관련 책을 2권 냈거든요. 
 
서귀포에서 있었던 북토크는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를 가지고 진행했습니다. 1시간 남짓 제가 책에 얽힌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몇몇 분들의 질문과 답변을 했고요. 특히 제가 서귀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래서 서귀포에 살고 있는 저의 소울메이트가 노래를 또 몇 곡 불러줘서 분위기가 훨씬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류도성> 이번에 북토크 하신 그 신간 먼저 소개를 해 주실까요?  

◆허호준> 부끄럽지만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제가 취재했던 다랑쉬굴 유해 발굴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그 유해들을 수습하고도 또 44년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비밀로 간직했던 분, 작품 속 채진규 선생이시죠. 이분과 또 한 분은 산에서 활동했던 이명복 선생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채 선생을 몇 번 만나면서 한 번 책을 써봐야겠다는 어렴풋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재일동포 2세인 이명복 선생의 아들을 또 우연히 일본에서 만나면서 이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거든요. 그래서 상당히 끌렸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또 이명복 선생의 4.3 당시 자필 문서들을 또 제가 입수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구술 증언과 각종 자료들을 교차 검토하면서 쓴 작품입니다. 말 그대로 그분들의 4.3에 대한 이야기는 '기억의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죠. 그래서 제목도 <기억의 폭풍 속으로>라고 정하게 됐습니다.  

◇류도성> 말씀하신 두 분이 같은 시대를 다르게 겪은 거잖아요. 두 분의 삶이 4.3의 어떤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까요?  

◆허호준> 채 선생 같은 경우는 이른바 납치 입산자라고 하고요. 이명복 선생 같은 경우는 자발적 입산자, 활동가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군경이나 우익 청년단의 눈에 채 선생이나 이 선생이나 모두 폭도로 규정되죠. 채 선생의 경우에는 무장대의 강요에 의해서 입산했지만 토벌대의 눈에는 도피자가 되는 것이고, 마을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도피자 가족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채 선생의 부모님 그리고 아내가 총살되고 갓난 아기도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산에서의 생활이 6개월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그럼에도 그 6개월이 채 선생의 평생을 따라다녔죠. 지독한 트라우마 때문에 교편 생활도 그만둘 정도였습니다. 반면에 이 선생의 경우는 3대 독자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아들과 가까이하려고 선흘곶자왈에서 피신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토벌대의 기습으로 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이 선생은 1952년에 일본행 밀항선에 몸을 싣습니다. 그분이 밀항할 때 일본 경찰에 붙잡혀서요. 수용소에 갇혔는데 일본에 있는 그분의 고향 분들이 십시일반 당시 돈 80만 엔이면 거금이거든요. 80만 엔을 모아서 석방시켰어요. 
 
그리고 이름을 세탁해서 살았어요, 돌아가실 때까지. 그래서 이 선생님의 아드님에 따르면 이 선생이 규슈에서 도쿄로 가는 열차 안에서 어머니의 제사를 지냈다고 해요. 얼마나 그리움이 파묻혔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선생은 고향 땅을 생전에 그렇게 오고 싶었다고 하죠. 
 
그러는데도 어머니가 무참하게 돌아가신 땅에 고개를 숙이면서까지는 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두 번 다시 고향 땅을 밟지 않고 일본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 분은 트라우마로 평생을 또 다른 한 분은 평생을 디아스포라의 삶을 산 그런 셈이 된 거죠.  

◇류도성> 그래서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으셨어요?  

◆허호준> 저는 이분들의 삶을 통해서 4.3의 명분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납치 입산됐다고 해서 온 가족을 총살하고, 산에서 활동한다고 해서 어머니를 무참하게 고문하고 공권력에 의해서 총살당했거든요. 그것은 국가 폭력일 수밖에 없지요. 국가란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 인간의 존엄을 말하는 것은 이 시기의 사치였는지 그리고 산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꿈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싶었던 지점이었습니다. 
 
◇류도성> 그리고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도 같이 발간하셨는데 이건 어떤 책인가요?

◆허호준> 이 책의 부제가 '100개의 장면으로 마주하는 그날들'입니다. 제목과 부제 그대로 100개의 아카이브로 4.3의 전 과정을 따라간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30년 동안 기자와 연구자로서 4.3을 만나면서 입수한 각종 국내외 문서, 신문 기사 그리고 개인이 소장한 임명장이나 표창장, 사진 등 각종 기록 등을 제 나름대로 100개의 아카이브를 추렸죠. 
 
그래서 거기에 해설과 함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아마도 새롭게 보는 자료도 꽤 여럿 눈에 띌 것입니다. 이 책을 쓰면서 느낀 점은 4.3의 모든 날들이, 매일이 장면 장면이었다는 것이죠. 어느 하루가 중요하지 않는 날들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우리는 잊어가고 있는 게 또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류도성> 그래서 '아카이브로 본 역사'가 4.3이라는 숲의 큰 줄기를 세우는 작업이라면 '기억의 폭풍 속으로'는 그 사이를 채우는 풀과 나무 같다는 평가를 받으셨더라고요. 거대 담론과 개별적 삶을 동시에 다룬 또 이유가 있으실까요?  

◆허호준> 우리가 4.3을 연구하거나 취재할 때 가장 많이 의존하는 것이 바로 1차 자료와 구슬 증언입니다. 그래서 아카이브로 4.3 역사가 자료에 1차 자료에 의존한 것이라면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는 구술 증언이 중심이 된 책이라고 할 수 있죠. 
 
특히 '기억의 폭풍 속으로'의 경우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산 사람들의 활동을 그 당시 자료를 교차 검증하면서 다루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부분적이나마 들어있다고 보면 됩니다.  

◇류도성> 30년 넘게 기자로 4.3을 취재하시다가 이제는 또 전문연구자로도 활동하고 계세요. 기자의 시각과 또 학자의 시각이 만났을 때 4.3 연구가 어떤 시너지를 발휘할까요?  

◆허호준> 기자들이 남들보다 잘하는 부분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남들보다 잘하는 부분이 팩트체크입니다. 사실을 검증하고 사실을 찾는 발굴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사건을 예로 들면, 데스크들이 언제나 묻죠. 시간과 장소가 정확한지, 이유가 무엇인지 세세하게 묻습니다. 취재기자들한테 4.3의 취재와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4.3 속에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어요? 엄청나게 많은 사건들이 그 기간에 있었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를 추적하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사건 관련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래서 저는 기자였다는 것이 4.3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류도성> 그래서 최근 학술대회에서 1차 사료에 기반한 실증 연구를 강조하셨던데 근데 사료 발굴은 노동 강도도 높고, 성과가 금방 드러나지 않는 고된 작업일 수도 있는데요. 연구자들이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허호준>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최근의 연구는 사실 2차 연구, 다시 말해서 4.3 이후 연구에 치우친 경향이 강하죠. 기억의 문제라든가 문학 작품이라든가 즉 사건 이후를 그렇게 연구하는데요. 그러나 정작 4.3의 본질 속으로 들어가서 4.3 당시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재점검하고 그 의미를 살피는 연구는 사실 활성화됐다라고 볼 수 없지요. 
 
사건의 진실을 정확히 규명해야 2차 연구도 올바르게 갈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1차 사료에 기반한 실증 연구는 그 자체가 연구 성과도 당장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요. 4.3의 진실을 담고 있는 그 문서가 어디에 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드넓은 백사장에서 반지를 찾는 것 같은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끊임없이 4.3의 진실에 대한 연구는 놓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류도성> 그래서 2003년에 발간된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를 교과서처럼 고착화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도 하셨더라고요. 그러면 우리가 이 보고서를 넘어서 새롭게 규명을 해야 할 본질은 뭐라고 보세요?  

◆허호준> 2003년에 나온 진상조사보고서는 4.3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연구자들은 없을 것입니다. 이 보고서가 나온 지 벌써 23년의 세월이 흘렀잖아요. 그 사이 새로운 사료의 발굴도 꽤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사료의 발굴이 2003년에 나온 그 보고서를 충실히 보완하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할 수 있게끔 하고 있거든요. 
 
여전히 우리는 4.3 시기의 집단 학살 사건들에 대해서 그게 군인이 그렇게 했다, 경찰이 그렇게 했다, 서북청년단이 그렇게 했다고 거기까지는 알지만 그 이상의 세세한 것들은 우리는 여전히 모르고 있거든요. 
 
그래서 누가 직접 학살에 가담했는지 그리고 미국의 개입에 대해서도 미국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형편이죠. 그래서 우리가 가해자를 규명하려는 것은 그들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최소한 기록만이라도 우리가 남겨서 이 기록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류도성> 그래서 기억 같은 '사후 연구와 사실 규명 같은 '본질 연구'가 병행돼야 된다고도 말씀하셨는데 이거는 어떤 뜻일까요?  

◆허호준> 결국 1차 사료에 기반한 실증 연구나 보고서에 따른 2차 연구라고 할 수 있는 사후 연구 모두 중요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은 2차 연구에 너무 치우쳐져 있는 것이 또 사실이고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4.3의 진실은 2003년에 나온 진상조사보고서 하나로 만족하게 되죠. 
 
그런데 역사적 사실은 꾸준히 발굴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고 이 자료에 대한 교차 검증을 통해서 진실을 수정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럴 경우에 2차 연구도 당연히 영향을 미치겠지요. 이에 따라서 이 연구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도 저는 그 투트랙 그러니까 사후 연구와 본질 연구 두 가지 연구가 병행돼야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류도성> 마지막으로 4.3의 진실을 찾는 여정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본다면, 이 역사를 처음 접하거나 연구를 시작하려는 젊은 세대에게 선배 연구자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허호준> 제가 선배 연구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끄럽고요. 제가 살아온 인생이 기자 생활이 대부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후배 기자들에게 한 말씀한다면 4.3 취재가 해마다 4월 3일 또는 해마다 4월에만 있는 그런 의례적인 취재가 아니라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역사이면서도 이것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우리의 역사적 과제로 받아안았으면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을 기록할 책임은 우리 특히 언론인에게 있다는 점을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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