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세종정부청사 기자실에서 발언 중인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김기용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독과점과 민생 담합 사건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 조직 개편에 나선다.
플랫폼·대기업집단·민생 밀접 분야를 전담할 '중점조사기획단'과 AI·데이터 분석 조직인 '경제분석국'을 신설하고, 조사 인력도 237명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중대사건 전담조직 부활…"플랫폼 복합 갑질 한 번에 본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26일 세종정부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열린 정부 출범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조직·제도 개편 방향을 공개했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중대 사건 전담 조직 신설이다.
공정위는 플랫폼, 민생 밀접 독과점, 대기업집단 사건 등을 집중적으로 맡는 국 단위 조직 '중점조사기획단'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조직 규모는 40명 수준으로, 중점조사1·2·3담당관 등 3개 과 체제로 운영된다.
중점조사기획단은 복잡한 사건을 한 번에 다각도로 조사하는 이른바 '탄력(Agile) 조직' 역할을 맡는다. 플랫폼 독과점이나 전국 단위 민생 담합처럼 피해 규모가 큰 사건에 조사 역량을 집중 투입해 신속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주 위원장은 "쿠팡·배달앱 플랫폼처럼 다양한 법 위반이 결합된 복합 사건이 늘고 있다"며 "지금처럼 조직이 쪼개진 상태에서는 사건을 부분적으로만 들여다보게 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플랫폼 생태계를 중심으로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독과점 이슈가 급증하고 있다"며 "국민 삶과 직결된 중대 불공정 행위에 보다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과거 중점조사 조직이 '정권 친화적 조사' 논란 끝에 폐지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정위는 정치 수사를 하는 기관이 아니라 국민 삶을 개선하기 위한 중대 불공정 행위를 제재하는 기관"이라며 "국민의 눈높이와 국민의 입맛에 맞는 조사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망 위기 상황 대응도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중동 사태나 공급망 위기 상황에서는 국민과 기업 모두 어려워지는데, 그 틈을 타 불법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반복돼 왔다"며 "전국 단위 민생 사건에 신속 대응할 수 있는 기동대형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알고리즘 대응 강화…"이제는 데이터·통계의 싸움"
공정거래위원회 제공인공지능(AI)·알고리즘 기반 경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분석국도 신설한다.
경제분석국은 37명 규모로 꾸려지며 산업경제분석과, 계량경제분석과, 시장분석팀 등을 둔다. 플랫폼의 데이터 독점이나 알고리즘 자사우대 같은 신유형 경쟁 제한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학·데이터 분석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공정위는 플랫폼 알고리즘, 데이터 독점, AI 기반 가격 결정 등 기존 법리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경쟁 제한 행위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 위원장은 "공정거래 사건처리의 일선 현장은 이제 법리 다툼에서 데이터와 통계의 싸움으로 전장이 확대되고 있다"며 "갈수록 정교해지는 기업들의 경제학적 방어 논리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데이터 분석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전체 조직·인력 확충 규모도 237명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앞서 확정한 167명 증원안에 더해 추가 인력 확충을 추진하는 것이다. 전국 지방사무소에도 약 70명을 배치해 지역 하도급·가맹 갑질 사건 대응을 강화할 계획이다.
대기업 허위자료·반복 담합 정조준…"과징금 더 세진다"
대기업집단 규제도 한층 강화한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 과정에서 허위자료를 제출한 기업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천만원 이하 벌금만 가능해 억지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공정위는 동일인에게 부과하는 정액 과징금 형태를 검토 중이며, 최대 200억원 수준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 위원장은 "허위자료 제출을 통해 대기업집단 지정에서 빠질 경우 출자규제와 사익편취 규제 등을 적용받지 않게 된다"며 "경제력집중 억제 시책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위반 중대성에 상응하는 강력한 경제적 제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2세·3세·4세 경영 세습을 위해 기업집단 자원을 낭비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제력 집중과 구조적 불공정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계열사 누락을 통해 규제를 회피한 경우, 누락 계열사를 통한 사익편취·부당지원 여부까지 조사할 수 있도록 법 개정도 검토하고 있다.
반복 담합 사업자에 대한 시장 퇴출 장치도 추진한다.
공정위는 반복적으로 담합을 저지른 사업자에 대해 등록·허가 취소나 영업정지 등 시장 참여 제한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또 장기간 은폐된 담합 적발을 위해 현행 최대 12년인 담합 처분시효를 최대 15년으로 연장하는 공정거래법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주 위원장은 최근 설탕·밀가루 담합 사건 과징금과 관련해서도 "부당이익 환수와 실질적 억제력 확보 차원에서 매우 합리적인 수준"이라며 "과거처럼 낮은 제재를 반복하면 법 위반이 오히려 이익이 되는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배달앱 사건 논란에도 촉각
공정위는 이와 함께 전분당·국고채 담합 사건 심의를 가급적 올해 3분기 내 마무리하고, 배달앱 사건은 동의의결 개시 여부를 우선 신속 심의하겠다고 밝혔다.
배달앱 사건은 쿠팡이츠와 배달의민족이 입점 음식점들에 자사 앱에서 가장 낮은 가격을 유지하도록 요구했다는 이른바 '최혜대우 요구' 논란이다. 입점 업체가 다른 플랫폼이나 자체 주문 채널에서 더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지 못하도록 압박해 가격 경쟁을 제한했다는 게 핵심 쟁점이다.
이와 관련해 쿠팡이츠는 지난 4월 공정위에 동의의결을 신청한 상태다. 동의의결은 법 위반 여부를 최종 판단하지 않고 사업자가 자진 시정방안을 제시하면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제도다.
주 위원장은 쿠팡이츠 동의의결 심의와 관련해 "입점업체 단체와 플랫폼 사업자, 라이더 등 이해관계자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 조율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입점업체 단체 내부에서도 이해관계 차이가 컸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배달앱 관련 사안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만큼 신속하게 판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