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김성환 대표(왼쪽부터), OKX 네테로 다이 글로벌 마켓 총괄 대표, 코인원 차명훈 대표, 컴투스홀딩스 정철호 대표가 지난달 29일 여의도 코인원 본사에서 진행된 코인원 투자 유치 계약 체결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은행과 증권 등 전통 금융권이 가상자산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가상자산이 단순 투자 대상을 넘어 새로운 금융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합병·인수·지분투자…전통금융의 '러브콜'
2일 금융권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29일 코인원 지분 20%를 취득했다. 글로벌 가상자산 기업 OKX의 투자사인 OKX벤처스도 같은날 코인원 지분 20%를 인수했다.
이에 따라 한국투자증권과 OKX벤처스는 코인원 차명훈 대표(30.36%)와 컴투스홀딩스(24.54%)에 이은 공동 3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
특히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1위인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에 대한 전통 금융권의 구애가 강한 모습이다.
하나은행과 한화투자증권은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두나무 지분을 각각 6.55%와 3.9%씩 매입했다. 삼성증권과 삼성SDS, 삼성카드도 카카오 계열사가 가지고 있던 두나무 지분을 사들여 모두 4%를 확보했다.
이에 따라 두나무 지분율은 △송치형 의장 25.51% △김형년 부회장 13.1% △한화투자증권 9.84% △우리기술투자 7.2% △하나금융그룹 6.55% △삼성 계열사 4% 등 순으로 재편됐다.
여기에 두나무는 네이버파이낸셜과 지분교환 방식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합병이 완료되면 두나무는 네이버파이낸셜의 자회사이자 네이버의 손자회사가 된다.
이밖에 미래에셋그룹은 코빗 지분 93.02% 인수 절차를 밟고 있다. 당국이 인수를 승인하면, 국내 금융그룹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인수하는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스테이블코인·토큰증권 생태계 조성
연합뉴스업계 안팎에서 가장 기대하는 시너지 효과는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STO) 및 실물연계자산(RWA) 부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국채 등 안전자산을 기반으로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가상자산으로 원화 등 법정화폐와 가치를 연동해 결제 수단 기능을 갖는다.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24시간 실시간 송금과 국가 간 즉시 이체 등이 가능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제도화하면 금융사와 가상자산 거래소는 △발행 △유통 △결제 등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나아가 네이버 쇼핑 등 플랫폼을 통한 협업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하나금융 함영주 회장도 두나무 지분투자에 대해 "디지털자산 기반 금융혁신을 가속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며 "두나무와 함께 K-블록체인 생태계 조성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업계는 또 △주식 △채권 △부동산 △미술품 등 다양한 실물자산이 토큰 형태로 거래되는 토큰증권과 실물연계자산 시장 활성화를 예상한다.
은행과 증권사, 가상자산 거래소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란 설명이다. 예를 들면 은행이나 증권사 앱에서 비트코인을 매매하거나, 가상자산 거래소 앱에서 주식이나 채권의 토큰을 거래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탈중앙화라는 반항아로 출발한 가상자산은 비트코인 열풍 때 투자 수단으로 주목받았고, 이제는 전통 금융권이 러브콜을 보내는 '금융혁신'으로 자리 잡았다"고 강조했다.
하나증권 이준호 연구원도 "가상자산 거래소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시장 진출의 필수 요소라고 판단해 선제적으로 지분을 투자해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움직임"이라며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은 컨소시엄 주도로 개화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향후 거래소에 대한 다른 금융사의 투자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넘어야 할 현실의 벽…"가상자산 2단계 입법 이후 시작"
발언하는 이억원 금융위원장. 연합뉴스이 같은 전통 금융권과 가상자산 업계의 시너지는 당장 현실화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금융과 가상자산 분리 원칙인 '금가분리' 기조 탓이다. 법적 규제는 아니지만 당국의 행정지도 형식의 통제 장치다.
금융당국은 자금세탁과 금융범죄 차단은 물론 가상자산의 큰 변동성 리스크가 제도권 금융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금가분리 기조를 유지해 왔다.
다만 하나금융이 두나무 지분에 투자하면서 금가분리 원칙에 대한 완화 가능성이 본격화한 분위기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21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글로벌 시장 변화와 가상자산 제도화 입법 추진 등 변화된 상황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금가분리 기조의 완화 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가상자산 2단계 입법(디지털자산기본법)이 언제 마무리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오는 3일 지방선거 이후 국회가 후반기 원구성을 마무리해야 입법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당국은 은행이 과반 지분(51% 이상) 지분을 보유한 컨소시엄에만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권한을 부여하고, 가상자산 거래소의 대주주 지분율도 15~20%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쟁점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대주주 지분 제한은 위헌 가능성까지 제기된 상태다.
따라서 전통 금융권과 가상자산 업계의 협력은 가상자산 2단계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 이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은행 51% 룰과 대주주 지분 제한 모두 지분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가상자산 2단계법이 완료된 이후에야 지분 구성을 토대로 한 전통 금융권과 가상자산 업계의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 '동맹' 기류도…"구체적 제휴 논의 단계 아냐"
연합뉴스한편 은행권 간의 '동맹'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에 진입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신한금융과 KB금융·지방은행은 전날 비공개 가상자산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는 최근 법과 제도 동향을 파악하고 가상자산 생태계의 건전한 육성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핀테크 기업인 토스도 참여했다.
일각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해 은행권이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가상자산 업계와 손을 잡더라도 '은행 51% 룰'이 적용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핵심은 은행이기 때문이다.
다만 간담회에 참가한 은행권은 구체적인 사업 제휴를 논의하는 단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등의 강연을 듣고 가상자산 시장에 대해 스터디를 하는 자리였다"면서 "사업 관련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