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제공서울의 공간은 누구의 것인가. 시민의 일상이 쌓이는 장소인가, 시장의 비전이 전시되는 무대인가.
박경선의 '노들섬과 세운상가'는 지난 20년 서울의 도시공간을 오세훈·박원순 두 전·현직 서울시장의 정책 변화를 통해 읽어낸 책이다. 저자는 노들섬과 세운상가를 중심에 놓고, 시장이 바뀔 때마다 같은 공간이 어떻게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받고 다시 쓰였는지를 추적한다.
책은 노들섬과 세운상가를 단순한 개발 사례로 보지 않는다. 두 공간은 서울의 도시정책이 '개발'과 '재생', '랜드마크'와 '시민 참여', '관광도시'와 '생활도시' 사이에서 어떻게 흔들려왔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오세훈 시정에서 노들섬은 한강 한가운데 세워질 '랜드마크'이자 서울의 문화 경쟁력을 보여줄 공간으로 기획됐다. 저자는 당시 한강 예술섬 구상이 "도시 비전을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기념비적 공간"으로 작동하려 했다고 짚는다. 이후 박원순 시정에서는 생태와 공동체, 시민 참여를 앞세운 '노들꿈섬'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러나 시민 참여와 운영 중심의 실험은 제도적 기반 없이 추진되며 한계를 드러냈다. 책은 "선 운영자 선정, 후 설계"라는 이례적인 시도가 행정적 불확실성을 낳았고, 그 부담이 사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돌아갔다고 분석한다. 다시 오세훈 시정이 들어선 뒤 노들섬은 싱가포르 '슈퍼트리'를 연상시키는 새로운 경관 이미지와 함께 재구조화 대상으로 떠올랐다.
세운상가 역시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한때 철거와 재개발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세운상가는 박원순 시정에서 산업 생태계와 보행,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의 상징이 됐다. 서울시는 기술 장인과 청년 창작자, 메이커 입주자가 만나는 공간으로 세운상가를 다시 해석하려 했다.
하지만 시장이 바뀌자 세운상가의 의미도 달라졌다. 박원순 시정에서 도시재생과 산업 혁신 기지로 정의됐던 세운상가는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정비가 시급한 낙후 도심으로 다시 규정됐다. 저자는 같은 건물이 물리적으로 남아 있더라도, 그 공간이 담고 있던 사회적 의미는 정책 기조에 따라 뒤집힐 수 있다고 본다.
책의 핵심은 두 시장 중 누가 옳았는지를 따지는 데 있지 않다. 오세훈의 대규모 개발과 디자인 중심 도시 비전, 박원순의 도시재생과 시민 참여 담론은 서로 달랐지만, 둘 다 공간을 자신의 시정 철학을 각인시키는 정치적 언어로 삼았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시장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도시공간의 전면적 재편"이 그 공간을 이용해 온 시민들에게 오랜 불확실성을 감내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노들섬의 운영자, 세운상가의 상인과 입주자, 공간에 기대어 일상을 꾸려온 사람들은 정책 전환의 비용을 가장 먼저 떠안았다.
'노들섬과 세운상가'는 도시공간을 둘러싼 논쟁을 세금과 효율의 문제에만 가두지 않는다. 누가 공간의 의미를 정하는가, 그 결정은 어떤 절차를 거치는가, 바뀐 정책의 대가는 누가 감당하는가를 묻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시개발 공약이 다시 쏟아지는 시점에서, 이 책은 서울시장 20년의 공간 정치가 남긴 질문을 되돌려준다. 도시의 미래는 시장의 임기표 안에서만 설계되어도 되는가. 그리고 도시공간을 시민의 것으로 되찾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더 물어야 하는가.
박경선 지음 | 돌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