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청 차량등록팀 창구의 차량번호 선택 화면. 정유철 기자광주 서구청 공무원들이 차량등록업체로부터 접대를 받고 행정시스템을 이용해 '1004'를 비롯한 황금 차량 번호를 특정 차량에 임의 배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차량등록 현장에서 선호 번호를 둘러싼 편법 거래가 만연한 가운데 공무원들까지 개입한 정황이 확인되면서 경찰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광주 서구는 최근 등록대행업체의 접대를 받고 특정 차량에 선호 번호(황금 번호)를 임의 배정한 공무원 10명을 징계하기로 결정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17일 밝혔다.
담당 공무원들은 일반 시민에게 이미 정상 배정된 황금 번호를 직권으로 취소하거나 등록 정보를 강제로 변경(경정등록)하는 방식으로 번호를 확보했다. 이후 이렇게 따로 묶어둔 '7777', '1004' 등의 선호 번호를 대행업체의 청탁에 따라 접대를 받고 특정 차량에 임의로 부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구 감사 결과 차량번호등록 시에 무작위로 10개 번호가 나오면 담당 공무원이 2~3분 내로 입력하고 취소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이들 공무원이 이를 악용해 취소한 황금 번호를 따로 확보한 후 접대를 해 준 차량 등록업체에 불법 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구는 이 같은 방식으로 불법 배정된 차량등록번호가 350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광주 서구 지역에 대형 수입차 매장과 딜러사, 중고차 매매 업소 등이 밀집해 있어 고가 차량 구매자들을 중심으로 한 황금 번호 수요가 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던 점이 이번 유착의 배경이 된 것으로 분석한다.
문제는 이 같은 이면에 황금 번호를 둘러싼 편법 거래가 이미 만연해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 광주 자치구 차량등록팀 창구에서는 대행업체 관계자들이 저가 경차 등 중고차 수십 대의 명의이전 서류를 무더기로 들고 와 반복 접수하는 행위가 수년째 이어져 온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한 사람당 10건 안팎의 이전 등록을 신청한 뒤, 원하는 번호가 나오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차량과 다른 사람 명의로 서류를 재접수하는 방식을 썼다. 특정 번호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날 차량등록 창구를 찾은 뒤 원하는 번호가 추첨될 때까지 명의이전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황금 번호를 확보한 중고차는 웃돈이 얹어져 구매자에게 판매된다. 구매자는 해당 중고차를 인수한 뒤 곧바로 '말소' 등록 처리한다. 이후 일정 기간 내에 자신의 새 고가 차량을 등록하면서 기존 번호를 승계받는 방식을 취한다.
결과적으로 중고차에 부여됐던 번호가 고가 차량으로 이동하는 구조다. 번호를 뺏긴 중고차는 자동차 검사를 거쳐 다시 운행 가능한 상태로 등록하는 '신규 부활' 절차를 밟아 중고차 시장에 재유입된다. 또 다른 번호 확보에 재활용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변칙 거래가 횡행해왔음에도 단속이나 수사는 미온적이었다. 차량과 번호를 묶어 매매하는 행위나 폐차 후 번호 승계, 신규 부활 절차 모두 현행법상 적법한 제도를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거래 과정에서 오간 프리미엄이 차량 대금인지 번호 대가인지를 명확히 구분해 입증하기 어려워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차량과 번호를 함께 거래하는 것은 현행법상 금지돼 있지 않고 폐차 차량을 다시 등록하는 절차도 적법하다"며 "명의이전을 반복하며 번호를 확보하는 행위 역시 위법 여부를 적용하기 쉽지 않아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광주 서구청 사례는 제도의 허점을 노린 민간의 편법 수준을 넘어 권한을 가진 공무원이 직접 행정망을 조작해 특정 번호를 가로챘다는 점에서 사안의 심각성이 훨씬 크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