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연합뉴스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골잡이 손흥민(LAFC·33)을 앞세우고도 한국 축구의 북중미 월드컵 여정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손흥민을 필두로 역대 최고 수준의 '황금 세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그가 출격한 네 차례의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한 것은 단 한 번뿐이라는 뼈아픈 현주소만 재확인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대표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은 짙은 아쉬움 속에 조기 마감됐다. 한국은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체코를 2-1로 꺾으며 기분 좋게 출발했으나, 2차전에서 개최국 멕시코에 0-1로 패한 데 이어 한 수 아래로 여겼던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최종 3차전마저 0-1로 내주며 자멸했다. 결국 조 3위(승점 3)로 처진 한국은 와일드카드 커트라인인 '각 조 3위 상위 8개 팀' 안에도 들지 못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번 대회는 손흥민의 네 번째 월드컵이었다. 막내로 나선 2014년 브라질 대회와 주축으로 분투한 2018년 러시아 대회에서 연거푸 탈락의 눈물을 쏟았던 그는 2022년 카타르 대회 조별리그 포르투갈과의 최종전에서 후반 46분 황희찬(울버햄프턴)의 극적인 결승 골을 어시스트하며 마침내 16강 진출의 감격을 누렸다.
하지만 북중미에서 받아 든 성적표는 너무나도 초라했다. 앞선 세 차례 대회에서 3골을 기록해 박지성, 안정환과 함께 한국인 통산 최다 득점 공동 1위였던 손흥민은 이번 대회에서 단독 1위 등극을 노렸으나, 단 하나의 공격 포인트도 올리지 못하는 전례 없는 부진에 울었다.
새 역사를 겨냥한 채 조별리그 1, 2차전에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손흥민은 쉴 새 없이 상대 수비를 흔들었지만 골 운이 따르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은 체코전에서는 후반 24분, 멕시코전에서는 후반 12분에 그를 일찌감치 벤치로 불러들였다.
마지막 남아공전에서 홍 감독은 손흥민을 선발에서 제외한 뒤 후반전 '조커'로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손흥민은 끝까지 상대의 촘촘한 수비벽과 거친 압박 속에서 빈틈을 노렸으나, 고대하던 득점포는 끝내 침묵했다. 결국 손흥민은 이번 대회 '0골 0도움'이라는 본인 커리어 역사상 가장 낯선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 했다.
아쉬워하는 손흥민. 연합뉴스결과적으로 한국 축구는 '손흥민 보유국'이라는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수를 두고도 전술적 지원 부족 속에 손흥민을 고립시켰고, 그의 발끝에서 단 하나의 골도, 도움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다음 월드컵이 열릴 때면 손흥민의 나이는 만 37세가 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회가 사실상 그의 '라스트 댄스'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으나, 손흥민은 이번 대회 첫 경기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단정 지은 적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태극마크를 향한 캡틴의 의지는 여전히 굳건하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과 싸우며 침묵한 에이스, 그리고 그 무게감을 전혀 분담해주지 못한 대표팀의 무기력한 결말은 잔인했다. 네 번의 도전 중 세 번이나 조별리그 문턱을 넘지 못한 손흥민과 한국 축구는 뼈아픈 숙제만 남긴 채 씁쓸하게 발길을 돌렸다.
한편, 홍 감독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 탈락의 책임을 지고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는 "국민들께서 원하는 결과를 끝내 보여드리지 못했고, 그 책임은 모두 감독인 저에게 있다"라며 "우리 대표팀이 다시 국민 여러분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팀으로 성장해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다"라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