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준 부산시교육감. 부산시교육청 제공'AI 시대를 이끌어가는 인간중심 미래 교육' 전국 최초로 4선 고지에 오른 김석준 부산시교육감이 취임 초기부터 강조하는 핵심 정책이다. 지난 8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김 교육감이 내놓은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파격적이다. 그는 "초중고에 AI 튜터(보조교사)를 전면 보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우선 부산교육 AI 튜터인 'BeAT(비트)'를 고교에 전면 보급할 예정이다. 비트는 교사에게는 수업 준비와 평가 문항 제작을 돕는 '보조교사'로, 학생에게는 질문 해결과 맞춤형 학습 계획을 지원하는 '학습 튜터' 역할을 하는 AI 서비스다.
여기에 더해 구글 '제미나이', 노트북LM 등 생성형 AI 서비스를 초중고에 보급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또 남부·해운대 메이커교육체험센터를 'AI·메이커교육체험센터'로 개편해 기존의 만들기 중심 메이커교육을 인공지능 기반 융합형 교육으로 전환한다. 안전한 AI 활용 기준을 마련하고, 디지털 리터러시를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선도"하자는데…교사 절반 "활용법 몰라"
이 모든 정책은 2030년까지 완료하는 게 목표다. 사상 유례없는 속도전이다. 각계각층에서 'AI 대전환'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만큼, 교육 현장도 뒤처질 수 없다는 취지로 보인다.
실제로 김 교육감은 "AI가 학교 현장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려되는 여러 문제점을 수정 보완해 나가면서, 피할 수 없다면 조금 더 선도적으로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했다.
부산지역 교원 생성형 AI 활용 정도. 부산시교육청 제공하지만 당장 일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들은 'AI 속도전' 앞에 난감한 실정이다. 부산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지난 4월 13~21일 부산지역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원 193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96.6%는 생성형 AI 사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나 정작 이를 수업에 활용하는 비율은 58.8%에 그쳤다. AI 활용률이 가장 낮은 곳은 55.6%를 기록한 초등학교였다.
원인은 명확하다. 생성형 AI 활용 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교사 2명 중 1명꼴인 51.7%가 "활용 방법을 모른다"고 응답했다. 즉 부산 교육 수장은 호기롭게 'AI 속도전'을 선언했지만, 일선 교사들은 기술적인 준비 기간이 부족해 애를 먹는 형국이다.
학부모 "방향엔 공감…핵심은 '길라잡이' 역할"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소용돌이를 바라보는 학부모 시선은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우선 학부모들은 부산 교육이 시대 변화에 발맞춰 후발 주자가 아닌 선두로 빠르게 나아가는 방향성 자체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자녀들이 이미 디지털 환경과 변화에 익숙하고, 사회 전반에서 AI 없이 작동하는 영역이 없을 정도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AI를 학습 능력이 저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AI를 활용한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AI를 '어떻게' 올바르게 활용할지를 가르쳐주는 게 필요하다고 학부모들은 강조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이모(40대·남)씨는 "AI 도입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이들이 AI에게 모든 걸 다 물어보다가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도 된다"라면서 "공교육 차원에서 AI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길라잡이'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모(40대·남)씨도 "AI는 우리가 안 가르쳐줘도 아이들이 스스로 빠르게 습득한다"며 "AI를 교육에 접목하는 게 필요하기는 한데, 그 전에 디지털 윤리나 비판적 사고력을 다질 수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부터 먼저 다지는 게 필요하다. 학교에서 이걸 중점적으로 교육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부산교육 AI 튜터 '비트'. 부산시교육청 제공노르웨이는 '유턴'…"실적보다 사회적 합의 선행해야"
현장에서는 대대적인 'AI 도입 속도전' 이전에 교육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AI 도입이 불러올 악영향이나 위험성은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채, 대대적인 도입이 불러올 '장밋빛 미래'만 그려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노르웨이 정부는 지난달 19일 초등학생(만 6~13세)의 생성형 AI 도구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중학생 이상 학생에게도 교사의 감독 아래에서만 허용하는 등 AI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다. 동시에 교실 내 종이책 사용을 확대하는 법안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는 "AI 사용은 어린이들이 교육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단계를 건너뛰도록 할 위험을 높인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르웨이는 1990년대부터 교실에 컴퓨터를 도입했고, 2010년 이후로는 태블릿을 교실에 도입하며 종이책과 필기 의존을 줄여 왔다. 하지만 학업 성취도는 오히려 점점 하락했고, 이에 시계를 디지털 이전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2024년에는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했는데, 이후 학교 내 괴롭힘이 줄고 평균 성적이 올랐다는 노르웨이 공중보건연구원 연구 결과도 나왔다.
부산교사노조 이정열 부위원장은 "특히 성적이나 입시 부담이 없는 초등학생 단계야말로 생각하고, 책 읽고, 필기 정리를 하며 자신이 부족한 점을 깨닫는 훈련이 필요한 시기"라며 "AI 도입으로 이 과정을 모두 건너뛸 우려가 있는데, 생성형 AI를 초등학교까지 일괄 보급하겠다는 구상이 교육적으로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생성형 AI를 학습에 활용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학습 성취도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해외에서 속속 나오고 있는데도, 교육청이 이런 내용은 '패싱'하고 있다"라며 "AI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막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속도전으로만 전개되고 있는데, 교육 실적을 '기기 보급'과 같은 숫자로만 잡으니 이런 정책 기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