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가족들이 사망자 신원이 담긴 사진과 실종자 정보가 담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카트만두(네팔)=CBS노컷뉴스 이충현 기자"온 가족이 홍수에 휩쓸려갔어요. 마침 저는 그때 다른 지역의 병원에 있었죠. 저도 가족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31일(현지시간)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트리부반 대학교 교육병원(티칭병원)의 시신안치실 앞 골목길. 도로 한 쪽에는 실종자를 찾는 전단으로 빽빽한 게시판이, 맞은 편에는 사망자 사진이 줄줄이 걸린 게시판이 마련 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두 게시판을 오가며 애타는 마음으로 가족을 찾고 있었다.
홍수로 9명의 일가족을 잃은 가야트리 다칼(70)씨. 카트만두(네팔)=CBS노컷뉴스 이충현 기자
사망자 게시판 앞에서 만난 가야트리 다칼(70)씨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연신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칼씨는 홍수에 휩쓸려간 아들과 며느리 가족, 삼촌 가족 등 총 9명을 찾고 있다. 이들은 이번 홍수로 마을의 90% 이상 사라진 솔레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다칼씨의 며느리는 손녀 학교를 데려다주던 중 다리에서 홍수를 맞았고, 손자 한 명은 인근 발전소에서 일을 하다 떠밀려 갔다. 나머지는 집에 있다가 갑자기 홍수가 덮치는 바람에 피할 새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다칼씨는 몸이 좋지 않아 3개월 전부터 카트만두 내 병원에 입원해 있던 터라 변을 면했다.
다칼 씨는 혼자 살아남은 게 가족들에게 못내 죄스럽다. 그는 "너무 힘들고 괴롭다. 나도 그때 가족들과 함께 있었어야 했는데 나 혼자 남아 있다"며 "지금은 가족들 사진을 들고 직접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실종자 게시판을 연신 들여다보던 펨바 청 타망(35)씨도 홍수로 총 15명에 달하는 친지를 한꺼번에 잃었다. 신두팔촉에서 모여 살던 타망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큰형 가족과 삼촌, 고모 등 일가친척은 홍수 이후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타망씨 혼자다.
당시 상황에 대해 타망씨는 "물이 1분에 1㎞를 움직이는 속도로 밀려와 도망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며 "100명이 도망치면 5명도 살아남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회고했다. 타망씨는 충격으로 물이 들이닥친 이후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는 노인과 아이들은 사실상 대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나라마(23)씨 가족은 홍수 피해가 유독 컸던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인터뷰 중 눈물을 흘리는 모습. 카트만두(네팔)=CBS노컷뉴스 이충현 기자무나라마(23)씨는 가족들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씩 접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와 이모, 언니 등 일가족은 홍수 피해가 컸던 라슈와 지역에서 실종됐다. 해당 지역의 마을은 사실상 초토화된 상태로 아직도 구조팀이 닿지 못한 곳이다. 육로로는 진입조차 힘든 상태다.
취업을 위해 홀로 카트만두로 내려온 무나라마씨는 각종 핑계로 거의 1년간 고향을 방문하지 못했다. 겨우 다음달 명절(다사이)을 맞아 고향을 찾기로 계획했지만, 무나라마씨의 고향은 이미 사라졌다. 그는 "가족들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이 닷새가 지나면서 사라지고 있다"며 "어머니가 너무 그립고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스럽다"고 눈물을 흘렸다.
네마라즈 반다리씨의 여동생 시신을 힌두교식으로 화장하는 의식. 카트만두(네팔)=정석호 기자가까스로 가족의 시신을 찾더라도 보내주는 일 역시 애통하다.
카트만두 파슈파티나트 힌두교 사원 화장장 한편에서 망연자실하게 여동생 시신을 화장 중인 네마라즈 반다리(38)씨를 만났다. 그의 여동생은 남편, 아들, 딸과 함께 라쇼아 인근 고사이쿤다 호수에서 열리는 '자나이 푸르니마' 축제를 즐기러 가다 참변을 당했다.
매년 8월 보름달에 개최되는 이 축제에는 수만 명의 순례자가 운집하는 대형 행사여서, 수많은 이들이 이번 홍수로 실종됐다. 반다리씨는 "여동생과 조카의 시신은 겨우 수습했지만 매제와 조카딸은 여전히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며 고개를 떨궜다.
홍수 피해로 카트만두 지역 화장장까지 시신이 늘었다. 시신이 병원에서 옮겨져 바로 바닥에 내려지는 모습. 카트만두(네팔)=정석호 기자이날 파슈파티나트 사원 화장장에는 하얀 천에 둘러싸인 시신이 연신 구급차에서 내려졌다. 물에 잠긴 이후 더운 날씨에 옮겨지며 강한 시취를 인근에 풍겼다. 티칭병원 등의 시신 안치실이 한도를 넘으면서 홍수로 인한 시신들이 신원 확인만 거친 뒤 이곳으로 떠넘기듯 보내지고 있었다.
시신이 급증하면서 홍수 피해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수도까지 화장이 증가하는 것이다. 사원 가이드인 프로빈(43)씨는 "홍수 전에는 이곳에서 하루에 약 30구 정도의 시신을 화장했지만 홍수 이후에는 45구 정도로 급증했다"고 전했다.
시간이 오래된 시신의 경우 제대로 된 의식을 치르기도 힘든 모습이었다. 한 유족들은 힌두교 전통 절차에 따라 시신을 바그마티 강물에 씻기려 했지만, 이미 시신이 상당히 부패해 사실상 제대로 씻기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참혹한 모습에 차마 다가가지도 못한 채 멀리서 발만 동동 굴렀다.
네팔 홍수로 인한 사망자와 실종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네팔 국가재난관리청은 이날 오전 9시 기준 네팔 내 사망자 수는 903명, 실종자 수는 4247명으로 집계했다. 지역의 시신 수습·보관 능력도 한계에 달하면서 당국은 시신을 집단 매장하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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