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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법대로'가 만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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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IMF '국란'을 목전에 두고 있던 1997년 10월 20일 박순용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며 낸 고발장을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했다. 김대중 총재는 두 달 여 뒤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시되던 후보였다. 검찰이 김 총재를 즉각 수사한다면 사실상의 대선 개입이 될 터였다. 수사에 착수할 것이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 중수부장은 '고발 사건 처리 원칙에 따를 것'이라는 원론적 대답만 반복했다. 중수부장 방을 나오며 나는 만약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걱정이 통했는지 검찰은 대선 이후로 수사를 유보한다고 이튿날 전격 발표했다.
 
당시 검찰이 고발 사건 처리 지침에 따라 신속하게 수사했다면 김대중 총재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고 헌정사상 첫 정권교체도 없었을 것이다. 또 지금과 같은 인터넷 강국, 문화 강국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법기관이 '법대로' 하지 않아 나라에 오히려 도움이 된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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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법대로'를 고집한 반대의 경우도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이재명 대표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 판결이다. 조 대법원장은 사건이 대법원 소부에 배당된 당일 다시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그리고 회부 9일만인 2025년 5월 1일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둔 때였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선거법 위반 사건은 보통 선거 뒤로 판결을 미뤄온 관행에 비춰 매우 이례적인 처리 속도였다. 조 대법원장은 '법대로'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이른바 '6.3.3 원칙'(1심 6개월 이내, 항소심과 상고심 각각 3개월 이내 판결)이다. 하지만 법대로 했다면 이재명 후보는 대선에 출마하지 못했을 것이고 윤석열 등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파기 환송심을 맡을 고등법원 재판부가 재판을 중단하면서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희대 대법원장의 '법대로'가 사법부의 정치 개입, 선거 개입이라는 논란은 지울 수 없다. 그런데도 조 대법원장은 '법대로'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후임 대법관 제청 과정에서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사전 협의 관행을 깨고 후보자를 일방적으로 제청했다. 조 대법원장측은 '법 어디에도 사전 협의하라는 내용은 없다'며 '법대로 대통령에게 제청했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관행을 깨고 비선호 후보를 일방 제청받은 청와대는 당연히 임명을 거부하며 조 대법원장에 재제청을 요구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미 추천된 후보 중 다른 사람을 제청할지, 아니면 다시 추천을 받을지를 놓고 장고 중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재제청을 요구함으로써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복수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것으로 성립된다. 이 사람이 실제로 대법관에 임명되느냐는 대통령의 임명권한에 속한다. 만약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를 대통령이 무조건 임명해야 한다면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사전 협의' 관행이 만들어져 수 십 년 동안 지켜져 왔다. 정권을 넘나들며 유지된 오랜 관행을 조 대법원장이 깬 것은 모종의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되면서 상고심 적체 등의 우려가 크다. '법대로'가 항상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법의 취지와 절차를 지키면서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법대로'가 만능은 아니라는 이치를 알고도 남을 연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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