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한때 '수익형 부동산'으로 인기를 끌었던 지식산업센터가 공급과잉으로 최근 준공 시설의 공실률이 40%를 넘어서자 정부가 전면적인 제도 손질에 나선다.
앞으로 지식산업센터를 새로 지을 때는 주변 공실과 미분양 상황을 따져 공급을 조절한다. 이미 지어진 시설은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고 AI 등 신산업의 입주 규제도 대폭 푼다.
정부는 10일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구조혁신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지식산업센터 공실 대책 및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핵심은 '신규 공급은 조이고, 기존 물량은 활용 범위를 넓혀 소화한다'는 것이다. 과거 투자 열풍 당시 불거진 허위·과장 광고와 투기성 전매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신축 지산 10곳 중 4곳 이상 공실…경매도 2년 새 5.6배
지식산업센터는 제조업과 지식·정보통신산업, 벤처기업 등이 생산시설과 지원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다층형 집합건축물이다. 1988년 '아파트형 공장'으로 도입된 뒤 지식·IT산업으로 입주 범위를 넓히면서 2010년 현재 명칭으로 바뀌었다.
2020년을 전후해 주택시장 규제가 강화된 반면 지식산업센터는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고 대출·전매 규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았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까지 더해지면서 공급도 급증했다.
전국에서 설립 승인을 받은 지식산업센터는 올해 5월 기준 1553곳이다. 서울 393곳, 경기 725곳, 인천 81곳 등 수도권에 전체의 77.2%인 1199곳이 몰려 있다.
연간 설립 승인은 2020년 109곳에서 2022년 136곳까지 늘었다가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지난해 19곳으로 급감했다. 올해 들어 5월까지는 6곳에 그쳤다.
신규 승인은 줄었지만 공급과잉의 후유증은 최근 완공된 시설을 중심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가 전국 준공 지식산업센터 가운데 조사에 응답한 1056곳을 분석한 결과 평균 공실률은 16.6%, 미분양률은 9.0%였다.
최근 3년간 준공된 153곳은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 공실률이 43.5%, 미분양률은 26.9%에 달했다. 신축 지식산업센터 10곳 가운데 4곳 이상이 비어 있는 셈이다.
최근 3년 준공분의 공실률은 수도권이 평균 42.7%, 비수도권은 46.9%였다. 전남은 75.9%, 충남 61.2%, 광주 53.3%에 달했다.
고금리와 가격 하락까지 겹치면서 경매 물건도 쏟아지고 있다. 지식산업센터 경매 건수는 2023년 688건에서 지난해 3876건으로 2년 만에 5.6배로 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새 지산 지을 땐 주변 공실부터 본다…신규 공급에 '브레이크'
정부는 우선 신규 공급 단계부터 수급조절 장치를 마련한다. 올해 하반기부터 지방자치단체가 지식산업센터 설립을 승인할 때 주변 지식산업센터의 공실·미분양률과 상가·오피스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따지도록 별도의 승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수용 능력과 지역 주력산업과의 연계성도 평가한다.
산업집적법을 개정해 지자체가 신규 설립을 승인하기 전 산업통상부에 신청 내용을 통보하고, 산업부가 시장 수급상황 등을 토대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지자체가 개별 사업별로 판단하던 공급 승인 과정에 중앙정부의 수급 판단을 추가하는 것이다. 지자체에는 관할 지식산업센터의 공실·미분양률을 조사할 법적 근거를 주고 관련 정보를 반기마다 공개한다.
빈 사무실 원룸·오피스텔로…기존 지산 주거 전환
연합뉴스이미 공급된 지식산업센터는 활용 범위를 대폭 넓힌다. 기존에 설립 승인을 받은 지식산업센터에 한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지원시설' 비중을 2년 동안 20%포인트 높인다.
산업단지와 수도권은 현행 30%에서 50%, 비수도권은 50%에서 70%까지 확대한다. 새로 짓는 지식산업센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지원시설에는 창문과 욕실, 바닥난방, 빌트인 가전·가구 등을 갖춰 청년이나 중장년층의 보조 거주지로 활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원룸'도 허용한다.
공실이 심한 지식산업센터는 오피스텔이나 기숙사 등 준주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푼다. 일반공업지역의 지식산업센터를 오피스텔로 전환할 수 있도록 2027년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30㎡ 미만 오피스텔로 전환할 경우 추가 주차장 설치 의무도 같은 기간 면제한다.
리모델링 자금도 지원한다. 프리미엄 원룸은 실당 800만원, 오피스텔·기숙사는 호당 7천만원까지 연 3%대 금리로 빌려준다. 주거시설 전환 사업자에게는 리모델링 이후 예상 감정가의 60% 이내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모기지 보증도 제공한다.
공공이 직접 공실을 주택으로 바꾸는 방안도 추진한다. 수도권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실 지식산업센터 등을 매입·리모델링해 청년·신혼부부용 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
앞서 정부는 지난 5월 발표한 비아파트 공급대책에서 공실 상가·오피스 등을 프리미엄 원룸이나 오피스텔로 바꿔 2027년까지 1만5천호, 2030년까지 3만3천호 이상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지식산업센터 대책도 도심 유휴 비주거시설을 주택으로 전환하려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AI 기업인데 광고업이라 안 돼"…입주업종 규제 확 푼다
기업 공간으로서의 수요를 늘리기 위해 입주업종 규제도 대폭 완화한다. 현재는 제조업과 지식산업 76개, 정보통신산업 19개 등 법령에 열거된 업종만 입주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사행·유해 업종이나 환경부담 업종, 위험물 처리시설 등 일부 업종만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입주를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한다.
AI를 활용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기업도 수입의 대부분이 광고에서 나오면 한국표준산업분류상 '기타 광고서비스업'으로 분류돼 현재는 입주하지 못할 수 있다.
도심형 마이크로 풀필먼트센터(MFC)나 드론 촬영·교육 업체도 업종 분류 때문에 입주가 제한되는 사례가 있었다.
정부는 앞으로 업종 명칭보다 실제 사업 내용을 중심으로 판단해 AI·디지털 융복합 기업 등의 입주를 폭넓게 허용할 방침이다.
공유오피스도 일괄 허용한다. 기숙사는 해당 지식산업센터 소속 근로자가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식당·카페·병원 등의 이용자도 입주기업 근로자로 제한하지 않는다.
규제 풀되 '투기판' 재연 막는다…쪼개기 전매 금지
입주와 활용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과거 투자 과열기에 나타났던 부작용에 대한 관리는 강화한다. 모집공고안이 승인되기 전에 분양홍보관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해 허위·과장 광고를 막는다.
분양 이후 건축물 사용승인 전까지 한 호실의 지분을 여러 명에게 나눠 팔거나 여러 호실을 쪼개 파는 이른바 '분양권 쪼개기 전매'도 금지한다. 산업단지 밖 지식산업센터에는 입주 신고 절차를 새로 만들어 부적합 업종의 입주를 관리한다.
반면 산업단지 안에서는 기업의 부담을 줄인다. 공장설립 완료나 사업개시 신고 전에는 임대할 수 없도록 한 규제를 폐지하고 복잡한 입주계약 절차도 사후 신고 방식으로 단순화한다.
'지식산업센터'라는 명칭 자체를 AI 시대에 맞게 바꾸는 방안도 추진한다. 산업단지 안과 밖에 각각 다른 명칭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며 구체적인 이름은 대국민 공모를 통해 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달 중 설립승인 가이드라인과 지원시설 유권해석 기준을 마련하고, 하반기에는 입주업종 네거티브 전환과 지원시설 비율 확대를 위한 산업집적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다.
공실 통계 공개와 명칭 변경, 전매 제한 등 법 개정이 필요한 과제도 이달부터 산업집적법 개정안을 순차적으로 발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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