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①농부의 감(感), 데이터가 되다 ②우유 관세 0%, 소는 로봇이 지킨다 ③겨울 딸기가 여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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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냉장고에 저렴한 가격표를 달고 진열된 유럽산 멸균우유. 한국 매대에 오르는 길은 지난 2011년 7월 발효된 한·EU FTA로 넓어졌다.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서 한우 옆자리를 차지한 미국산 소고기는 이듬해 3월 발효된 한·미 FTA에 따라 40%였던 관세가 매년 2.6%포인트씩 내려와 올해 1월 1일 0%가 됐다.
같은 날 미국산 우유와 치즈 관세도 사라졌고, 유럽산 유제품 관세는 7월 1일 0%가 됐다. 협정 양허표상 36%였던 우유 관세가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떨어져 올해 소멸한 셈이다. 축산업 전체가 무관세의 해를 지나고 있지만, 매대에서 변화가 가장 빠른 곳은 유제품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우유가 진열돼 있다. 류영주 기자
수입은 이미 증가세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기준으로 수입 멸균우유는 2020년 1만 1천여 톤에서 지난해 5만 700여 톤으로 늘며 해마다 기록을 새로 썼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식품수출정보(KATI)의 올해 1~5월 수입 통계에 따르면 미국산 치즈 수입은 3만 6962톤으로 46.6%, 버터는 5295톤으로 222% 늘었다.
한국낙농육우협회가 6월 16일 낸 성명에 따르면 국내 원유 생산량은 FTA 발효 직전인 2010년 207만 3천 톤에서 지난해 195만 1천 톤으로 5.9% 줄었고, 같은 기간 유제품 수입량은 원유로 환산해 113만 5천 톤에서 242만 8천 톤으로 114% 늘었다. 우유 자급률은 지난해 45.8%까지 내려왔고, 최근 5년 동안 낙농가 834호, 전체의 13.7%가 문을 닫았다.
가격으로 맞서기 어려운 구조도 있다. 한국의 젖소는 수입 사료를 먹기 때문에 생산비의 상당 부분이 환율과 국제 곡물가에 묶여 있다. 같은 성명에서 협회는 지난해 소규모 농가의 원유 생산비가 리터당 1252원으로, 낙농진흥회 평균 음용유 원유가격 1249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즉 생산할수록 손해인 구조다.
가격으로 맞서기 어렵다면 무엇으로 맞서야 할까. 그 답을 축사 안에서 찾는 목장이 있다. 경남 고성 가야목장의 소들은 사람이 부르지 않아도 제 발로 착유기에 들어간다. 관세가 사라진 첫해를 로봇으로 버티는 이 목장을 찾았다.
소가 제 발로 착유기에 들어간다
축사 한쪽의 스마트 게이트가 소 목에 걸린 전자 목걸이를 읽는다. 착유한 지 10시간이 지난 소는 로봇 착유기 쪽으로, 아직 이른 소는 사료조나 운동장 쪽으로 길이 갈린다. 착유기 앞에 선 소를 로봇 팔이 인식해 사료를 주며 착유컵 네 개를 유두에 붙이고, 우유가 나오는 속도가 떨어지면 착유가 끝났다고 판단해 스스로 컵을 뗀다. 문이 열리면 소가 걸어 나간다. 이 과정에 사람은 없다.
젖소가 로봇 착유기실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모습. 노컷TV 허태환 PD소가 착유기 로봇으로 들어가는 원리는 사료를 먹이는 시스템에 있다. 착유기에 들어선 소가 착유 대상으로 확인되면 급이통에 사료가 떨어지고, 소가 그것을 먹는 몇 분 사이에 착유가 끝난다. 젖소가 하루에 두 번 넘게 스스로 착유기를 찾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람이 하던 순서도 그대로 옮겨 왔다.
농촌진흥청이 2021년 8월 18일 국산화를 발표하며 설명한 바로는 이 착유로봇은 유두 세척, 착유컵 부착, 착유, 소독까지 사람이 하던 네 단계를 로봇 팔이 이어서 처리한다. 착유틀 위와 로봇 팔에 달린 3D 카메라가 소마다 다른 유두 위치를 입체적으로 찾아내고, 세척과 착유, 소독을 한 컵에서 잇따라 하도록 착유컵을 일체형으로 만들어 시간을 줄였다. 충남농업기술원이 2022년 11월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밝힌 마리당 착유 시간은 7분 34초였다.
로봇 착유기에서 착유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노컷TV 허태환 PD착유가 시작되면 유두 네 개에서 나오는 우유가 따로따로 계량된다. 개발사 ㈜다운이 2022년 5월 시연회에서 밝힌 사양에 따르면 이 기종은 분방별 유량과 유단백·유지방, 혈유 여부, 유방염 지수, 체세포수를 착유 중에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유두마다 착유를 따로 관리하는 것도 그래서 가능하다. 소가 문을 나설 때 이 목장의 컴퓨터에는 그 소의 그날 기록 한 줄이 더 쌓인다.
부모의 새벽을 물려받지 않기로 했다
설명 중인 이정현 씨. 노컷TV 허태환 PD정작 이 목장에서 기계가 가장 먼저 바꾼 것은 착유의 정확도가 아니라 사람의 시간표다.
가야목장은 2대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착유는 수십 년간 부모가 새벽마다 해 온 일이었다. 아들 이정현 씨가 목장에 로봇을 들인 이유도 거기서 출발한다. 이 씨는 "어머니, 아버지께서 같이 일하고 계시는데 착유 시간과 작업량에서 힘이 부치기 시작하셨다. 저도 청년농업인으로서 정부 지원사업이 있다는 걸 알고 신청해서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목장에 올해 2월 말 도입된 착유 로봇은 국내에서 부품부터 제조까지 전과정 국산화에 성공한 유일한 기종으로 농촌진흥청과 ICT 기업 ㈜다운이 2021년 국산화에 성공해 개량한 2세대 기종이다.
농촌진흥청이 올해 1월 26일 공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산 로봇착유기는 국내 15농가, 총 17대가 보급됐다. 도입가의 절반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로봇 전담기관인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로봇 보급사업 보조로 충당했다. 나머지 자부담은 청년창업 후계농으로 선정돼 받은 장기 저리 융자로 조달했다. 로봇과 짝을 이루는 자동 사료급이기와 사료 정리 로봇은 이 씨가 자비로 도입했다.
로봇 착유기를 설명하는 이정현 씨. 노컷TV 허태환 PD노동의 변화는 즉각적이었다. 손 착유 시절 회당 1시간 40~50분 걸리던 착유가 로봇 도입 뒤 회당 40~50분으로 줄었다. 그는 "아침저녁 두 번 하면 하루 2시간 정도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의 1월 26일 보도자료에 따르면 착유는 젖소 사육 노동력의 40%를 차지하는 작업으로, 착유 전 과정을 자동화하면 50두 규모 농가 기준 연간 비용의 31%, 약 1300만 원을 아낄 수 있다. 줄어든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목장 측은 현장 인터뷰에서 손으로 짜던 시절 40마리였던 착유우가 로봇 2대 체제에서 60마리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노동은 줄고, 규모는 커졌다.
착유 방식 자체도 바뀌었다. "젖소는 자주 짤수록 우유가 많이 나온다. 손으로 할 때는 하루 두 번이었는데, 로봇은 소가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가니까 지금 평균 2.3~2.4회 착유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즉 착유 횟수가 늘면 점점 착유량이 느는 구조라는 것이다.
로봇이 짜는 것은 우유만이 아니다. 착유 때마다 유량과 유질, 체세포 데이터가 쌓인다. 이 씨는 "착유기에서 유질이나 건강 데이터가 올라오기 때문에, 소를 직접 보지 않아도 데이터로 건강 이상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 한 방울, 로봇이 사람보다 먼저 봤다
로봇 착유기에서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노컷TV 허태환 PD올해 봄. 하루는 이 씨의 휴대폰에 문자 알람이 떴다. 착유 중이던 소 한 마리의 우유에서 피가 섞여 나온다는 신호였다. 축사에서 확인해 보니 출혈이 있었던 소는 운동장에서 다른 소에게 밟힌 적이 있었다. 그는 "운동장에서 소가 밟혀 피가 나고 있는 상태였는데, 로봇 착유기 유질 검사에서 잡혀 알람이 왔어요. 외부 충격으로 피가 나고 있다는 걸 그렇게 발견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체세포 수치가 나빠져도 알람이 온다. 유방염과 같은 질병의 전조 증상이다. 이 씨는 로봇이 신호를 주기 때문에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 눈이 60마리를 하루 종일 지켜볼 수는 없지만, 데이터는 매 착유 때마다 몇 분씩 모든 소를 지켜본다.
관세 0%의 셈법, "가격은 인정한다, 그래서 단가를 낮춘다"
미국산 유제품 관세 0%라는 현실을 이 씨는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는 "수입산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국산 원유는 고정으로 들어가는 생산 비용이 있고, 사료도 수입해서 먹여야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어 "저희 나름대로 K-밀크라는 브랜드로 깐깐하게 생산하고 있다. 체세포, 세균수 같은 부분을 프리미엄으로 관리해서 그런 점을 부각시켜 경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즈처럼 수입산이 이미 장악한 시장이 있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유일한 항목을 정조준했다. 그는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 로봇 착유기나 자동 사료급이기가 단가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봇은 노동 해방의 도구이기 전에 무관세 시대의 원가 전략이라는 이야기다.
이 목장의 우유는 전량 부산우유협동조합으로 간다. 조합원 목장에서 아침에 짠 원유가 가공을 거쳐 유통되는, 국산 신선우유의 표준 경로다. 착유 데이터가 관리하는 체세포·세균수는 그 납유 원유의 품질 등급을 떠받치는 숫자이기도 하다.
소의 여물을 먹기 쉽게 모아 정리해주는 자동화 로봇. 노컷TV 허태환 PD
이 씨의 목표는 목장의 확장이 아니다. 그는 "지금 규모를 유지하면서,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게 목표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소들의 건강 이상 신호를 이전보다 빠르게 잡아내고, 최대한 건강하게 오래 끌고 가는 것, 그러니까 치료 시기를 빨리 감지하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무관세 매대에서 국산 우유가 팔 수 있는 것은 결국 신선함과 품질이고, 그 품질을 매일 증명하는 것이 데이터라는 계산이다.
관세가 감소하던 기간은 낙농가에게 준비의 시간이기도 했다. 가야목장의 준비는 축사 안에 있었다. 사람의 눈이 놓치는 신호를 데이터가 잡아내고, 줄어든 노동이 늘어난 규모를 감당한다. 물론 로봇 한 대가 자급률 하락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목장은 부모의 새벽을 물려받는 대신 물려줄 만한 목장을 만드는 길을 골랐다.
※ 본 기사는 2026년 FTA교육홍보지원사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영문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