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획득에 실패한 여자배구 대표팀 이예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배구 여제' 김연경의 국가대표 은퇴 이후 세대교체 난조에 빠진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아시안게임 메달 획득에 또다시 실패했다.
차상현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22일 일본 아이치현 파크 아레나 고마키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동메달 결정전에서 태국에 세트 스코어 0-3(20-25 19-25 23-25)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4위로 마감하며, 5위에 그쳤던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아시안게임 역사상 최초로 2회 연속 메달 획득 실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 여자배구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62 자카르타 대회 이후 매 대회 메달을 수확해 왔으나, 2006 도하 대회(5위) 때 처음 시상대에 서지 못한 데 이어 이번 대회를 포함해 통산 세 차례 메달 사냥에 실패했다. 특히 2회 연속 노메달은 한국 배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아시아 정상을 호령하던 명예는 완전히 실추됐다.
세계랭킹 28위인 한국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베트남을, 8강에서 카자흐스탄을 꺾고 준결승에 올랐으나, 세계랭킹 6위 일본에 0-3으로 완패한 데 이어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세계랭킹 13위 태국을 상대로 완패하며 아시아의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음을 증명했다.
22일 일본 아이치현 파크 아레나 고마키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여자 배구 대한민국과 태국의 동메달 결정전. 연합뉴스
이번 추락은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인 김연경과 양효진 등이 태극마크를 반납한 뒤, 대표팀은 완벽한 세대교체 실패의 늪에 빠졌다.
2025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최하위 강등의 치욕을 씻어내지 못한 것은 물론, 중국과 일본은 물론 태국에마저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며 변방으로 밀려났다. 이제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를 상대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렸다.
근본적인 원인은 고갈되다 못해 바닥을 드러낸 국내 배구 저변에 있다. 한국중고배구연맹에 따르면 남녀 배구부를 운영하는 고교는 각각 20개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심각한 선수 수급난에 허덕이고 있다.
현장 지도자들의 목소리는 한국 배구의 암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 장윤희 중앙여고 감독은 최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수만 개 학교 팀이 있지만 한국은 여고부 팀이 15개 남짓이고, 오후 수업을 다 들으며 운동해선 절대적인 훈련량을 채울 수 없다"고 짚었다.
17세 이하 여자 대표팀을 이끄는 이승여 금천중 감독 역시 "최저학력제와 수업 일수 규제로 인해 선수들의 훈련량이 턱없이 부족하며, 운동에 전념할 수 없는 시스템적 한계가 뼈아프다"고 토로했다. '제2의 김연경'으로 불리는 손서연(선명여고) 같은 소수의 유망주가 분전하고 있으나, 말라버린 뿌리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다.
메달 획득에 실패한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차상현 감독 등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전망이 더욱 어둡다는 점이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2027-2028시즌부터 남녀부 모두 외국인 및 아시아쿼터 선수의 코트 기용 폭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설 자리가 좁아진 가운데, 국내 선수들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국가대표 경쟁력의 기반은 완전히 씨가 마를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KOVO와 대한배구협회의 유기적인 공조와 대책은 보이지 않고 각자도생에 급급한 실정이다.
아시안게임을 4위로 마친 대표팀의 시선은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본선을 향하지만, 향후 일정은 가시밭길이다. 대륙별 선수권대회 티켓을 놓친 한국은 내년 열릴 FIVB 월드컵 상위 3위 이내에 들거나 세계랭킹을 끌어올려야 하는 실정이다.
32개 팀이 참가하는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겨우 확보했으나, 지금의 경기력과 저변으로는 기적을 바라기조차 버겁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태극전사들은 소속 팀으로 돌아가 V리그 일정을 소화한 뒤 다시 대표팀에 소집되지만, 한국 여자배구가 기나긴 암흑기의 터널에 완전히 갇혔다는 비관론이 배구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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