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을 찾는 비만 환자분들은 문을 열기 전까지 수백 번을 망설입니다. 스스로를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이라 자책하며 눈물을 쏟아내는 분들이 너무 많아,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게 휴지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비만은 결코 개인의 의지나 노력 부족으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비만 진료 현장의 전문가인 닥터리가정의학과의원 이진복 대표원장은 CBS 경제연구실 유튜브 <의사결정>에 출연해 비만을 향한 사회적 편견에 일침을 가했다. 이 원장은 "비만은 뇌 신경전달물질과 내분비 호르몬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명백한 질병"이라며 사회적 낙인을 걷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ADHD 인식 변화와 판박이…"호르몬 바로잡는 약물이 편견 깼다"
이 원장은 비만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이 과거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겪었던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진단했다. 과거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다'거나 '자제력이 없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 이상이 규명되고 효과적인 치료제가 도입되면서 '치료 가능한 뇌 질환'으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비만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48년 이미 질병분류 코드로 공식 등재했고, 2013년 미국의사협회(AMA)와 최근 저명 의학저널 란셋(Lancet)까지 거듭 질병으로 선언했음에도 사회에서는 줄곧 '자기 관리 실패'로 치부해 왔다.
이러한 견고한 편견을 깨뜨린 결정적 계기가 바로 '위고비'와 '마운자로' 같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등장이다. 이 원장은 "만약 비만이 순전히 개인의 의지 문제였다면 약물 투여로 살이 빠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며 "뇌 시상하부의 식욕 중추를 조절하고 인슐린 분비를 돕는 약물이 투여되자 체중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비만이 신체 내부 시스템 붕괴에서 비롯된 질환임을 명백히 입증한 셈"이라고 짚었다.
출산·폐경·야간근무…"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지는 대사 시스템"
이 원장은 일상에서 체중이 불어나는 원인 중 대다수가 개인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선천적으로 골격과 근육량이 크고 체지방이 많은 체질도 일부 있지만, 상당수 환자는 임신과 출산 후 겪는 산후우울증, 폐경기 급격한 호르몬 변화, 질환 치료를 위한 스테로이드 복용, 생계를 위한 교대근무와 수면장애 등 불가항력적인 외부 환경으로 인해 호르몬 균형이 무너지며 비만으로 이어진다.
이 원장은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사건으로 호르몬과 신경계의 밸런스가 한 번 무너지면, 뇌의 잘못된 신호 탓에 자력으로는 체중을 되돌리기 어렵다"며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생겼을 때 혼자 고민하지 않고 약을 처방받듯, 비만 역시 전문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사 질환'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약에만 기대면 근손실 재앙"…운동·식단 병행에 '점진적 중단' 필수
다만 최근 비만 치료제의 열풍으로 인해 식습관 관리와 운동을 등한시하는 풍조에 대해서는 강한 경고를 보냈다.
이 원장은 "GLP-1 약물 치료 시 빠지는 체중의 25%에서 최대 40%까지가 근육일 수 있다"며 "특히 중장년층에서 근육이 급격히 빠지면 골다공증, 낙상, 대사 저하, 근감소증 등 훨씬 더 치명적인 건강 위협을 부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만 치료의 기본은 언제나 운동과 올바른 식사 요법이며, 약물은 목표 체중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목발'이자 시간을 벌어주는 도구일 뿐"이라고 못 박았다. 치료를 통해 목표 체중에 도달한 후에는 약물의 투여 용량과 간격을 서서히 늘려가며 끊어내는 '테이퍼링(점진적 감량)' 과정을 거치고, 개선된 생활 습관을 유지해야만 요요 현상 없이 평생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조언이다.
이 원장은 마지막으로 "비만 환자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멈추고 당당히 치료를 시작해야 하며, 사회 역시 이들을 향한 왜곡된 시선과 낙인을 거둬야 한다"며 "치료제 선택지가 넓어진 지금, 병원을 찾아 전문적인 상담을 받는 것이 건강한 삶을 되찾는 첫걸음"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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