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인 9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직접 기획과 운영에 참여한 '고밍아웃' 행사가 진행 중이다. 김수빈 작가"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한글날인 9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만난 자립준비청년 임하은(가명·23)씨는 사회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봐 줬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부모의 보호 없이 성장했다는 이유로 국가와 사회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복지시설 등에서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독립해야 하는 청년을 일컫는다.
이날 서울숲에서는 자립준비청년들이 기획과 운영에 참여한 '고밍아웃 콘서트'가 열렸다. 부모의 보호 없이 성장한 청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시민들은 체험과 공연을 통해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자리였다.
'고밍아웃'은 '고아'와 '커밍아웃'을 합친 말로, 자립준비청년들이 자신의 성장 배경을 당당히 드러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행사는 CBS가 주최하고 서울시가 후원했으며 한국고아사랑협회가 협력했다.
책 필사부터 생활 수리까지…서울숲서 함께 배운 '자립'
행사장 곳곳에서는 오전부터 시민들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참여가 이어졌다. 자립준비청년들의 이야기가 담긴 문장을 직접 필사하고, 일상에 필요한 생활 수리 기술을 배우는 등 '자립'의 의미를 되새겼다.
책 필사 프로그램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전한 문장을 옮겨 적으며 이들의 삶에 공감하고 응원의 마음을 나누는 취지로 마련됐다. '자립의 기술'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일상 속 작은 수리를 직접 해보며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도록 했다.
이 밖에도 케이크 만들기와 말차 테라피,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키캡 키링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이 이어졌다. 행사장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부터 혼자 찾아온 청년들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모였다.
한글날인 9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직접 기획과 운영에 참여한 '고밍아웃' 행사가 진행 중이다. 김수빈 작가서울 구로구에서 온 한강빈(30)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한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행사 소식을 접하고 혼자 서울숲을 찾았다.
한씨는 "저도 1인 가구로 살고 있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며 "자립을 일찍 이룬 분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체험도 해보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고아'라는 편견…청년들이 바라는 평범한 시선
이날 행사에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스태프로도 참여했다. 이들은 오전부터 행사장 의자를 배치하고 운영을 도우며 시민들을 맞이했다.
취재진이 만나본 이들은 묵묵히 사람들의 편견과도 싸우고 있었다.
임하은씨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이유로 국가와 사회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된다"며 "각종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만 부각되면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가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아'라는 단어에도 이들을 향한 편견이 담겨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립준비청년 김민지(22)씨는 "'고아'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좀 모자란 행동을 했을 때 욕하는 단어로 쓰는 것 같다"며 "진짜 고아가 아니더라도 비속어처럼 사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시선은 청년들이 자신의 성장 배경을 공개하는 데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씨는 평소 과거 자신의 성장 배경을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 주변인에게 "자립준비청년인 사실을 함부로 알리지 말라"는 조언을 들은 뒤 고민이 생겼다.
그는 "그런 말을 듣고 나서 사람들한테 말하는 게 좀 꺼려졌다"며 "앞으로 남자친구를 사귀더라도 어디까지 오픈하는 것이 맞나 고민된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성장 배경을 공개하는 데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달랐지만,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분명했다. 부모의 보호 없이 성장했다는 사실이 동정이나 비난의 이유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하는 배경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김씨는 자립이 자립준비청년만의 과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립이라는 기준에서 자립준비청년이나 다른 청년들이나 다 똑같은 것 같다"며 "부모님 밑에서 좋게 자란 청년들도 어차피 자립은 해야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립준비청년 김새봄(가명·23)씨는 "'고아'라는 단어가 나쁜 단어도 아니고 그냥 그렇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나쁘게 보는지가 이해가 안 된다"며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이 곧 자립이고, 그 자립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에요"…시민들의 응원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강모(65)씨는 이날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서울숲을 찾았다. 강씨는 체험 프로그램에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강씨는 "부모님의 지원이 있어도 살아가기 힘든 환경인데 혼자서 모든 걸 헤쳐 나가려고 하면 너무 힘들 것 같다"며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고 주변에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시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녀의 자립을 준비 중인 강씨는 지역사회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마을 안에서 살아간다는 건 지원이 없이는, 연대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며 "마을 사람들과의 연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들도 행사에 참여했다. 가족과 함께 서울숲을 찾은 14세 어린이는 재활용 소재로 키링을 만들었다. '고밍아웃'의 의미를 설명 들은 뒤에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세상 밖에 당당하게 나가세요. 파이팅"이라며 응원했다.
무대 위로 이어진 '고밍아웃'…노래로 전한 응원
한글날인 9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직접 기획과 운영에 참여한 '고밍아웃' 행사가 진행 중이다. 주보배 기자체험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행사는 오후 들어 영상 상영과 콘서트로 이어졌다.
오후 4시 자립준비청년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상영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행사 스태프로 참여한 청년 가운데는 '자립'을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해 상영한 당사자도 있었다.
오후 5시 30분부터 열린 메인 콘서트에는 뮤지컬 배우 정선아와 가수 나윤권, 싱어송라이터 구현모, 자립준비청년 출신 가수 모유진, 바이올리니스트 정원준 등이 무대에 올랐다.
시민들은 야외무대에 마련된 좌석에 앉거나 서울숲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공연을 감상했다.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자립준비청년 출신 싱어송라이터 모유진씨는 "너무 힘들 때 집 현관문에 장을 봐서 걸어두고 간 친구, 밥 한 끼 사준 사람, '잘 지내느냐'며 안부를 물어준 이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견뎠다"며 "여러분 주위에서 작은 불빛을 기다리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달라"고 말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들은 하루를 살아내기도 힘들다"며 "먼 미래보다 당장의 하루를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작곡 '긴 겨울의 끝'을 열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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