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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 장벽 없어야"…시각장애인 관객 위한 화면해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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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다이어리②]




영화 속 인물의 표정과 몸짓, 화면을 스쳐 가는 풍경과 색채까지. 누군가에게는 눈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장면이지만, 시각장애인 관객에게는 언어로 다시 전달되어야 할 정보다. 30년 넘게 방송작가로 활동해 온 오숙희 작가는 이제 화면 해설을 통해 영상과 관객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316편의 상영작 중 약 3%, 10편만이 가치봄 영화로 상영되는 지금, 화면해설의 대중화를 바라는 오 작가에게 '가치봄 영화 화면해설 작업기'를 들어보았다.

"보이는 것을 말하는 일"…화면 해설로 넓히는 영화제 관객석

◇ PD
30년 베테랑 방송 작가시다.
화면 해설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TV방송작가 작업과의 차이점이 궁금하다.

◆ 오숙희 작가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부산국제영화제 화면 해설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 제안을 받아 시작했다. 직접 작업해보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는 꽤 차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방송작가라 영상이 익숙하니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었는데, 첫 작업 때 많이 혼났다. 화면 해설의 문법을 너무 모르고 시작했던 탓이다.

방송 다큐멘터리의 경우 모든 영상 정보가 눈에 보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때문에 보이는 것 이면의 정보 내지는 그 안에 숨어 있는 가치와 의미가 방송 원고가 된다.  하지만 화면해설은 다르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공되고, 그분들이 1차 수용자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전달해야 할 정보가 영상정보다.

예를 들어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통도사 대웅전을 다룰 경우, 방송 원고에는 대웅전 모습이 묘사되지 않는다. 대신 대웅전이 왜 보물로 선정됐는지, 건축학적 가치는 무엇인지, 종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반면 화면 해설에서는 대웅전의 크기와 규모, 단청의 색깔, 문살의 모양, 건축물의 재료 등을 우선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이런 점이 가장 큰 차이다.

6일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오숙희 작가가 화면해설 녹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설유정 PD6일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오숙희 작가가 화면해설 녹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설유정 PD◇ PD
갈수록 영상 콘텐츠의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다. 영화 작업에서도 그런 변화를 느끼나?

◆ 오숙희 작가
콘텐츠의 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은 특히 OTT 드라마에서 두드러진다. 다행히 영화는 그보다 호흡이 느린 작품도 많다. 다만 액션 같은 장르의 경우, 굉장히 호흡이 빠르고… 원래부터 해설하기 어려운 장르였다.
그런 영화를 맡았을 때 가장 좋은 해설은 1대1 해설이다. 바다가 보일 때 '푸른 바다'라고 해준다든지, 학교가 보일 때 '학교'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하지만 호흡이 빨라지고 컷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 이런 식의 1대1 해설은 현명한 방식이 아니다. 전체 서사를 파악하고 맥락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호흡이 빠른 콘텐츠의 경우, 1대1 해설에서 벗어나, 서사 전체를 이해한 상태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쪽으로 해설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화면 해설은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

◇ PD
화면 해설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은 무엇인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본인만의 원칙도 있을까.

◆ 오숙희 작가
화면 해설을 해보니 가장 어려운 지점은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13년 전,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굉장히 큰 원칙이 하나 있었다. '해설 원고에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을 넣지 말라'는 것이 대전제였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문장을 쓰다 보면 굉장히 딱딱해지고, 영화를 볼 때 재미가 떨어지는 측면도 있더라.

요즘은 정확성을 전제로 한다면, 작가의 주관적인 해설을 넣는 것이 감상의 재미를 높인다고 얘기해주는 분들도 있다. 화면 해설의 수용자인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감상하는 태도에도 조금씩 변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 매번 감수를 하거나 원고를 쓸 때 가장 많이 논의하는 부분도 이것이 주관적인지, 객관적인지에 대한 문제다. 창작 경향이 계속 변화하는 만큼 경향성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춰 원고를 써내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오숙희 작가. 설유정PD오숙희 작가. 설유정PD
시각장애인 선생님들에게 감수받는 시간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비시각장애인은 반드시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그런 부분을 시각장애인 선생님들이 감수 과정에서 짚어주신다. 그 과정에서 화면해설의 부족한 점과 어려운 점을 함께 논의하고 해법을 찾아 최종 원고를 마무리한다.

화면 해설 대중화되려면…"창작 문법, 더 많이 공유돼야"

◇ PD
화면 해설 교재도 만드셨다고 들었다. 화면 해설에 대한 기본 시스템부터 만들어 나갔다고?

◆ 오숙희 작가
화면 해설 교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책까지 나온 것은 내가 알기로 시청자미디어재단에서 만든 것이 거의 유일하다. 다만 이 작업은 혼자 한 것이 아니고, 혼자 할 수도 없다. 학위 논문의 주제가 '해설 콘텐츠의 창작법'에 관한 것이어서, 교재를 만들 때 그 내용의 일부를 가져다 썼다. 교재 제작에는 보통 3~4명 이상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한다.

모두 제작자들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작업을 해오면서 공동으로 정한 창작 문법이나, 시각장애인 선생님들의 감수를 통해 공통적으로 지적된 부분들을 추려냈다. 또 영화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기 때문에, 장르별로 어떻게 접근하면 좋은지도 정리해 교재를 만들었다.

이런 창작 문법은 관련 기관마다 축적돼 있을 거다. 책자 형식이 아니더라도 문건화된 자료가 있을 텐데, 많은 기관이 이를 공유하거나 공개하지 않는다. 화면해설의 대중화를 이야기하면서도 밖으로 공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화면해설이 더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창작자가 각자 어떻게 쓰는지 서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시너지가 생긴다. 각 단체가 자신들의 방식을 공개하고, 함께 연구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같이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가치봄 영화' 총 10편… 부족한 영화 접근성

◇ PD
올해 가치봄 영화 상영작은 몇 편 정도, 어떤 작품들이 상영되나.

◆ 오숙희 작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300편 넘는 영화들이 초청됐다. 그중 가치봄 영화 버전은 총 10편이다. 전체 작품 수와 비교하면 상당히 적은 숫자다.

그래도 작품들을 소개하자면, '피오르'라는 영화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과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새드걸즈'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이다.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석권하며 영화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양자경 주연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짧은 단편으로 함께 상영된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가족의 갈등과 화해 과정을 그린 따뜻한 드라마, '정가네'가 있다. 이 작품은 AI가 해설을 한다. 기술과 접목된 부분이 궁금해 꼭 봐야겠다고 점찍어 둔 작품이다. '도희야'와 '다음 소희'로 잘 알려진 정주리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도라'도 가치봄 버전으로 상영된다. '도라' 역시 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이런 작품들을 감상해 보면 좋겠다.

6일 화면해설 녹음이 진행중인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녹음실. 설유정PD6일 화면해설 녹음이 진행중인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녹음실. 설유정PD
◇ PD
'배리어프리'한 환경은 누구에게나 편리한 환경이라고 한다. 배리어프리한 콘텐츠도 마찬가지인가?

◆ 오숙희 작가
당연하다. 요즘 OTT로 드라마를 볼 때 자막을 켜서 보는 경우가 많지 않나.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대사가 일부러 작게 녹음되거나 대사의 톤이 낮은 경우가 많은데, 자막 없이 보면 이를 놓치기 쉽다. 하지만 자막이 있으면 그런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 감상의 깊이와 재미가 더해진다.

자막은 처음부터 청각장애인을 위해 제공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비장애인 역시 자막이 없으면 감상에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만 봐도 배리어프리한 콘텐츠는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스크린에 걸린 순간 영화는 관객의 것… 관객에 장벽 없어야"

영화는 스크린에 걸리는 순간 감독의 것이 아니라 관객의 것이라고 한다. 이때 관객의 표현 안에 장애와 비장애의 벽이 없었으면 한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또 가치봄 영화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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