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송파 장모 살인 사건'과 유사하게 경찰이 가정폭력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강력범죄를 막지 못한 사례가 지난해에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경찰의 '가정폭력 재발우려 가정'으로 관리되던 가정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쇠망치를 휘둘렀고, 피해자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면서 가까스로 살인미수에 그쳤다.
최근 경각심이 커진 교제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와 달리, 전자발짜 부착명령을 기각하는 등 가정폭력 강력범죄 가해자에 대한 법원 판단을 둘러싸고 피해자 보호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수차례 신고에 '재발우려 가정' 등록됐으나…결국 딸 죽이려 해
18일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1-3부(강효원·김태호·박선영 고법판사)는 지난 7월 24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형 집행 종료 후 5년간 보호관찰도 명령했지만, 검사가 청구한 전자장치 부착명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지난해 8월 10일 서울 관악구의 주거지에서 딸 B씨가 '밥을 차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격분해 살해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쇠망치로 딸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쳤다. 피해자가 방으로 피신해 문을 잠그자 쇠망치로 방문을 부수려 했고, 이후 철제 집게까지 동원해 공격을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은 B씨가 직접 경찰에 신고해 경찰들이 현장에 출동하면서 멈췄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처음 발생한 가정폭력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A씨는 오랜 기간 배우자와 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해 왔다. 배우자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거나 딸에게 유리병을 던져 상처를 입힌 적도 있었다. 2020년에는 가정보호사건 송치결정을 받았고, 배우자는 지속적인 폭력을 견디지 못해 같은 해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가정폭력 신고가 여러 차례 접수되면서 해당 가정은 이미 경찰의 '가정폭력 재발우려 가정'으로 등록돼 관리받고 있었다. 그러나 폭력은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 살인미수로까지 이어졌다.
최근 발생한 송파 장모 살인 사건에서도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체계의 한계가 드러났다.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에서 20대 남성이 혼인무효 소송 중이던 장모를 살해하고 아내를 차량에 태워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존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가 만료된 상황에서 경찰의 재신청에 대한 법원 결정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이 임시조치 만료 후 엿새가 지나서야 재신청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기남부경찰청은 관할 수원권선경찰서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경찰이 가정폭력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했음에도 강력범죄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관악구 사건과 닮아 있다.
"망치로 죽였어야 했는데"…재범 우려 인정하고도 전자발찌 기각
연합뉴스관악구 딸 살인미수 사건에서는 범행 이후 법원의 재범 방지 조치도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A씨가 다시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구체적으로 "피고인이 다시 살인 범죄를 범해 법적 평온을 깨뜨릴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피고인의 재범 위험성이 형 집행 종료 전에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가정폭력이 오랜 기간 이어진 데다 집안의 물건을 던지는 수준에서 둔기를 사용한 살인미수로 폭력의 정도가 심각해졌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A씨는 범행 이후 출동한 경찰 앞에서 "망치로 죽였어야 했는데"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검사의 전자발찌 부착명령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전자장치 부착명령이 신체의 자유 등을 제한하는 보안처분이라는 점에서 비례의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고 봤다.
또한 재판부는 "피고인은 형 집행 후 보호관찰 기간에 피해자나 배우자의 의사에 반해 피해자나 배우자를 만날 수 없게 되므로 보호관찰명령의 실효적인 집행만으로도 피고인이 가정폭력을 저지를 위험을 상당히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A씨에게 피해자와 배우자의 의사에 반하는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약물치료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보호관찰 준수사항을 부과했다.
교제폭력·스토킹과 다를 바 없는데…가정폭력만 약한 보호조치
그러나 살인 재범 위험성까지 인정된 가해자에게 보호관찰과 접근금지만으로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경하법률사무소의 이경하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교제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법원도 이를 엄중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며 "반면 가정폭력은 여전히 집안일로 여겨지는 측면이 있어 형량이나 대응이 상대적으로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적 보호조치가 스토킹 범죄보다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가해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잠정조치로 허용하지만, 가정폭력처벌법상 임시조치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접근금지 기간도 가정폭력은 최대 6개월로 스토킹의 최대 9개월보다 짧다.
이 변호사는 "가정폭력은 스토킹 못지않게 위험도가 높은데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해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가정폭력 임시조치도 스토킹 잠정조치와 비슷한 수준으로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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