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한국과 일본 등 14개국에 상호관세 서한을 발송한 가운데, 무역 협상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9일 상호관세 유예 시한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며 연일 압박 수위를 높여왔지만, 정작 이날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다음 달 1일로 미루며 한발 물러섰다. 이어 좋은 제안이 오면 이마저도 더 미룰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특히 이번 서한에는 '품목별 관세(Sectoral Tariffs)'에 대한 언급도 빠졌는데, 이를 두고 품목별 관세 비중이 높은 일본과 한국의 경우 협상의 핵심 의제가 빠진 채 진행되는 '빈껍데기 협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과 시점 오락가락에…"불확실성만 증폭", "기존 무역 협정과도 충돌"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무역 상대국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 시한을 기존 7월 8일에서 8월 1일 0시 1분으로 재조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지난 4월 상호관세 발표 이후 90일간 유예했던 조치를 약 3주 더 연장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좋은 제안이 있다면 이후라도 바꿀 수 있다"며 관세 부과일 자체를 또 미룰 수 있다고 시사했다.
'오늘 보낸 서한이 미국의 최종 제안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난 최종이라고 말하겠지만, 상대국이 다른 제안을 갖고 전화한다면, 그리고 내가 그 제안을 좋아한다면 우리는 바꿀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나는 확고하지만, 100% 확고하진 않다"고도 덧붙였다.
이는 그동안 "9일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며 상호관세 유예 시한을 일종의 마감선처럼 제시해 왔던 기존 기조와는 상반된 대응이다.
외신들은 이처럼 관세 압박과 유예를 반복하는 트럼프식 '오락가락 전략'이 오히려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불확실성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경제학자, 기업, 외국 정부 관계자들 모두 트럼프 행정부가 이러한 계획을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는지, 아니면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방편인지는 불분명하다"며 "하지만 두 시나리오 모두 경제적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드 부소장 겸 연구 책임자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엄청난 위협을 하는데도, 그는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며 "그는 사람들이 합의에 도달할 시간을 주기 위해 시한을 계속 연장하고 있다. 이것이 또 다른 허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상황은 불안정하다"고 분석했다.
기존 무역 협정 원칙과도 충돌하는 행보라는 비판도 나왔다. 웬디 커틀러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고율 관세를 예고한 것은 자유무역협정(FTA) 체제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조치"라고 우려했다.
품목별 관세는 언급 없어… "韓·日, 핵심 빠진 협상될 수도"
연합뉴스이번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율 조정 가능성은 시사했지만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핵심 품목에 대한 '품목별 관세(Sectoral tariffs)'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이 같은 핵심 의제의 공백은 협상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대미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부과된 25% 관세의 완화를 가장 우선순위 협상 과제로 삼아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해당 품목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은 각각 전체 대미 수출에서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 대상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다. 그만큼 해당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관세 여부가 양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
웬디 커틀러 전 부대표는 "이 발표는 다른 나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메시지"라며 "미국이 한일 양국의 최우선순위인 자동차 관세를 포함한 품목별 관세의 완화는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실망스러운 소식이지만 그렇다고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며 "추가 관세 인상이 발표되는 다음 달 1일 전까지 협상에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 상무부는 반도체, 의약품, 목재 등에 대한 추가 품목별 관세 부과도 검토하고 있어 설령 상호관세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핵심 품목에 대한 관세가 유지되거나 확대될 경우, 한국과 일본 입장에선 실익이 거의 없는 '빈손 협상'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