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첫해보다 낮은 최저임금 인상, 왜일까[노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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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우리는 일합니다.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오늘도 일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쉼 없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터를 찾은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판 깔아봅니다.

17년 만의 합의로 정한 최저임금이라지만…너무 낮은 인상률에 민주노총 퇴장까지
'노동 존중' 이재명 정부인데도 보수 정권의 집권 첫 해 인상률보다 낮다?
0%대 성장률 전망에 책임 돌린 공익위원…경기 침체에는 저임금 노동자들도 힘들텐데
'尹정권 알박기 공익위원'이 문제? 정권에서 자유롭지 못한 최임위 구조 개편 고민할 때
李, 文의 최저임금 실패 감안했을 수도…노동계 "저임금 노동자 생계 보완할 대책 마련하라" 촉구

김민재 기자김민재 기자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9% 오른 1만 320원에 그쳤다. 17년 만의 노사 합의로 정한 결과라지만, '노동 존중' 정부를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의 집권 후 첫 최저임금 인상폭이 역대 대통령 임기 첫해 기준 가장 낮은 기록을 세우면서 향후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2차 전원회의를 열어 2026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올해 최저시급 1만 30원보다 2.9%(+290원) 오른 1만 320원으로 의결했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주 소정근로 40시간을 근무한 것을 기준으로 유급 주휴를 포함해 215만 6880원으로, 올해보다 6만 610원 오른 수준이다.

특히 이번 최저임금은 2008년 이후 처음으로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공익위원이 합의해 정했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후 노사 합의를 이룬 일은 이번이 여덟번째다. 다만 최저임금 논의 도중 제시된 심의촉진구간이 너무 낮게 설정됐다고 항의하며 민주노총 근로자위원들이 퇴장해 '반쪽짜리 합의'에 그쳤다.

'노동존중' 이재명 정부인데…집권 첫 해 기준 DJ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 기록


최저임금은 단순히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만 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실업급여, 육아휴직급여, 고용촉진장려금 등 26개 법령 48개 제도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연동되기 때문에 대다수 임금노동자가 최저임금의 영향 아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신임 대통령의 노동관을 가늠할 시금석으로도 꼽힌다. 최저임금은 통상 '6말 7초'에 결정되는데, 박근혜·윤석열 두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 임기가 늦봄부터 시작하면서 자연히 집권 후 가장 먼저 맞는 노동정책의 분수령이 됐다. 게다가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강조하면서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 취임 전후 줄곧 '노동 존중' 정부를 표방해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며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도 "기업 발전과 노동존중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며 "성장의 기회와 과실을 고루 나누는 것이 지속성장의 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 대통령이 집권하고 첫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률은 전례가 드물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이번 인상률은 역대 정부의 집권 첫 해 인상률 기준, IMF 외환위기 시절인 김대중 정부의 2.7% 이후 가장 낮다. △노무현 정부 10.3% △이명박 정부 6.1% △박근혜 정부 7.2% △문재인 정부 16.4% △윤석열 정부 5.0%을 살펴봐도 최근 20여 년 동안 5% 아래로 떨어진 전례가 없다.

캐스팅 보트 쥔 공익위원 "경제 지표 악화로 심의촉진구간 낮게 잡아" 해명…저임금 노동자는 어쩌나


이 낮은 인상률을 노·사·공 합의로 정했다지만, 사실상 이번에도 공익위원이 최종 결정을 주도했다. 매년 노사는 최저임금을 높이냐, 낮추냐 만을 놓고 '제로섬'(zero-sum) 승부를 벌인다. 그 사이에서 사실상 캐스팅 보트를 쥔 이들이 바로 전문가 그룹인 공익위원들이다.

노사는 6차~10차 회의에서 9번에 걸쳐 요구안을 고쳐냈지만, 공익위원이 1만 210원~1만 440원의 '심의촉진구간'을 설정하면서 사실상 결론이 예고됐다. 구간 상한선인 1만 440원조차 인상률이 4.1%로, 5% 미만의 역대급 낮은 기록을 세우기는 매한가지였다.

심의촉진구간이 제시되기 직전, 노사가 제시한 수정안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사용자위원 수정안과 구간 하한선 인상률은 불과 0.3%p 차이만 났지만, 근로자위원 수정안과 구간 상한선 간 차이는 4.6%p에 달한다. 최종 합의에 참여한 한국노총조차 "심의촉진구간이 사용자측에 편파적으로 유리하게 나왔다"며 유감을 표했을 정도다.

왼쪽부터 하헌제 상임위원, 이인재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 권순원 공익위원 간사. 김민재 기자왼쪽부터 하헌제 상임위원, 이인재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 권순원 공익위원 간사. 김민재 기자
최임위 이인재 위원장은 최저임금 결정 직후 기자들에게 "이번 인상률은 합의로 결정된 인상률이기 때문에 노사가 서로 양보해서 마지막 결론에 도달했다는 관점에서 이해해달라"고 해명했다. 또 심의촉진구간에 대해서는 "객관적 지표에 근거해서 심의촉진구간을 설정하도록 노력했다"며 "올해 경제지표가 나쁜 것을 고려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상한선이 좀 낮게 나오지 않았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공익위원들은 올해 GDP(국내총생산) 경제성장률 전망 평균치가 0.8%에 불과하고, 경기 위축으로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도 1.8%인 점 등을 근거로 심의촉진구간을 정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최저임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중소기업 ·영세소상공인만큼, 최저임금에 생존을 맡겨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 사정도 다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공익위원들은 '경기가 어려우면 영세사업주의 임금 지불 능력을 감안해 최저임금 인상을 낮춰야 한다'는 경영계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한 점이 눈에 띈다.

"尹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이 문제? 정권에 자유롭지 못한 최임위 구조가 근본 문제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이 최저임금 인상을 막았다고 주장한다. 양대노총은 마지막 회의 직전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권이 임명한 최저임금 공익위원들은 낮은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해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최임위는 정부로부터 독립된 사회적대화 기구로, 원칙상 정권과 무관하게 노·사·공의 사회적 대화만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던 19대 대선 당시, 주요 후보 모두 '임기 내 최저시급 1만 원 달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최임위가 자율적으로 정할 사안을, 대선 후보들이 구체적인 최저임금 인상 목표치와 달성시점까지 대놓고 장담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김민재 기자김민재 기자
위에 설명한대로 최저임금 논의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들을 다름 아닌 정부가 직접 추천한다. 전문가로서 양심을 걸고 독립성을 지키겠지만, 애초 '정부 입맛'대로 정한 인선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노동계 주장대로 이번 최임위 공익위원들은 윤석열 정부 시절 임명된 공익위원들이다. 이번 회의를 주재한 이인재 위원장은 보수 성향인 탓에 선출 당시부터 노동계의 우려를 샀다. 공익위원 간사를 맡은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권순원 교수 등 일부 공익위원들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에 적극 관여하는 등 중립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아 '사퇴 논란'에도 휩싸였다.

다만 정작 권순원 간사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11대 공익위원 시절부터 최임위에 몸 담았던 인물이다. 단순히 공익위원들의 임명 시기만으로 특정 정권 인사라고 판단하기보다는, 최임위가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그 정책 기조에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정부, '文 최저임금 혼란' 감안했을 듯…노동계, 저임금 노동자 수습 촉구


이를 감안할 때, 현 정부로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파격적인 최저임금 인상이 남긴 후폭풍을 참고한 점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낮지 않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 집권 초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했지만, 너무 빠른 인상속도로 부작용이 심각하는 반발이 나오자 이후에는 거꾸로 2년 연속 역대 최저 인상폭을 기록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7.2%로, 바로 직전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 시절(7.4%)보다도 낮았다. 최저임금이 크게 치솟았다는 고정관념과 달리,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이명박(5.2%), 윤석열(3.8%) 정부에 이어 역대 세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다른 노동정책들도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준비되지 않은 급격한 정책 변화가 두고 두고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이재명 정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소극적이었을 수 있다.

한국노총 제공한국노총 제공
관건은 앞으로 불어닥칠, 이번 최저임금 인상 결과의 후폭풍이다. 퇴장을 선택한 민주노총은 "이렇게까지 촉진구간이 낮게 책정된 것을 이재명 정부가 모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총파업에서 이재명 정부를 규탄하겠다고 예고했다.

합의 당사자인 한국노총 역시 "오늘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족한 부분은 이재명 정부의 숙제로 남았다. 저임금 노동자 생계비 부족분을 보완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하고, "향후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쟁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며 정부가 낮은 인상률에 대한 정책 보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 정부가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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