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도시철도 청소노동자들이 역사 내부를 청소하고 있다. 박진홍 기자공항이나 지하철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5년 전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노동 여건은 비정규직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호소가 줄을 잇고 있다. 불완전한 형태로 이뤄진 정규직 전환이 근본 원인인 만큼, 제도와 정책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열악한 근무 환경 여전" 공항·지하철 자회사 노동자 호소
전국공항노동자연대는 지난 1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김해공항을 비롯한 전국 공항 15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주로 보안 검색과 경비, 환경미화 등 공항 운영에 필수적인 직무를 맡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부산지하철운영서비스 소속 노동자들도 파업을 예고했다가 사측과 합의에 이르러 철회하기도 했다. 이들도 주로 지하철역이나 전동차 등에서 청소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다.
공항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다. 지난 3월 인천공항에서 20대 직원이 야간근무 중에 숨졌고, 7월에는 제주공항에서 환경미화 노동자가 현장에서 숨을 거둔 게 계기가 됐다. 연속 야간노동을 강제하는 교대제를 개편하고 인력을 충원해 노동 강도를 낮춰달라고 주장했다.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의 요구사항 역시 교대제 개편과 인력 충원이었다. 주로 60대 이상인 이들은 3조 2교대로 주6일 근무하며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전국공항노동자연대가 지난달 19일 김해공항에서 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공항노동자연대 제공 이들은 '공공부문 자회사 정규직 노동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용역업체 비정규직이던 이들은 자회사 정규직이 됐다. 한국공항공사는 직접고용 대신 KAC공항서비스, 남부공항서비스, 한국항공보안 등 3개 자회사를 설립해 공항 노동자들을 자회사 소속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했다. 부산교통공사 역시 자회사 부산도시철도운영서비스를 만들어 청소노동자 등을 정규직 직원으로 받았다.
노동자들은 외형상 정규직은 됐지만, 근로 여건이나 처우는 비정규직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공항 노동자들은 자회사가 원가 산출이나 용역계약서 작성, 과업 지시 등을 기존 용역 시절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산지하철 노동자들 역시 자회사가 기존 22개 용역업체에 주던 용역계약비와 인력 조건을 그대로 적용해 정규직 전환 전후로 처우에 별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공공부문 모회사들 "자회사는 별도 법인, 알아서 해결하라"
노동자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나서자, 모회사들은 자회사가 별도 법인이라며 자신들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답했다. 이들이 자회사 소속 직원이니, 노사 분쟁도 자회사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다.
지난달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선언하자, 부산교통공사는 자회사가 별도 법인인 만큼 자회사 노사가 자율적인 교섭을 통해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노조는 자회사 이사회 과반을 차지한 교통공사가 자신들의 근로조건과 예산 등을 구체적으로 결정할 권한이 있는 만큼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자회사와 일부 여건 개선에 합의했다.
공항 역시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최인주 전국공항노조 중부본부장은 "교섭을 계속하더라도 자회사가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은 많지 않다. 모회사가 자회사와 불공정한 계약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며 "모회사가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파업 상황까지 오지 않았겠지만, 모회사와 소통할 방법 자체가 없었다. 지난 8월 공동결의대회 당시 요구안조차 전달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노사 자율'로는 처우개선 안 돼…"제도·정책으로 풀어야"
노동 전문가들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을 펼칠 당시, 전환 방식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선행되지 않아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 만큼 노동자 처우개선 문제를 '노사 자율'에 맡기기보다는 제도 개선이나 정책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역노동사회연구소 남원철 운영이사는 "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해 정규직 전환 당시 예산 문제도 반드시 논의해 해결했어야 한다. 하지만 오히려 '기존 예산 범위 안에서 전환해야 한다'는 지침이 담겼다"며 "이 때문에 기관들이 자회사 설립을 택하다 보니 고용 형태만 바뀌고 처우개선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모회사 결단 없이는 자회사 노동자 처우개선은 불가능한 만큼, 모회사가 책임을 회피해선 안 된다"며 "동시에 제도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당시 정한 지침을 수정하고, 특수한 상황에서 자회사를 만든 만큼 용역비에 드는 부가세를 감면해 노동자 처우개선에 쓰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할 때"라고 제안했다.
지난달 4일 공공운수노조 부산지하철노조 운영서비스지부가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 선포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김혜민 기자 국립부경대 경제학과 황선웅 교수는 "처우개선 문제는 자회사 노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 정책이 급하게 추진되면서 남은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며 "공공부문 정규직화 2단계 대책 등을 마련해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회사가 모든 예산이나 사업 운영 관련 중요 결정을 내리는 만큼, 자회사 노동자 처우개선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책임져야 할 이들이 제대로 책임질 수 있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