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달 말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대면 회담을 진행할 예정인 가운데 양국이 서로 상대국을 겨냥한 수출통제 조치를 확대·강화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美中 주거니 받거니 수출통제 조치 내놓으며 신경전

중국 상무부는 9일 사마륨·디스프로슘·가돌리늄·터븀·루테튬·스칸듐·이트륨 금속과 사마륨-코발트 합금, 터븀-철 합금, 디스프로슘-철 합금, 터븀-디스프로슘-철 합금, 산화 디스프로슘, 산화 터븀을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역외(해외) 희토류 물자 수출 통제 결정'을 발표했다.

특히, 수출통제 대상 희토류의 범위 확대뿐만 아니라 희토류 가공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도 강화하기로 했다. 상무부는 중국이 보유한 희토류 채굴과 제련·분리, 야금, 자성 재료 제조, 희토류 2차 자원 회수 등 기술을 사용할 경우에도 수출이 통제된다고 밝혔다.

희토류와 가공기술의 해외 수출시에는 중국 상무부가 발급한 이중용도 물자(군용으로도 민간용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물자) 수출허가증을 취득해야 한다. 또, 해외 군수기업과 수출 통제 리스트에 오른 기업과 최종 이용자에 대한 수출은 원칙적으로 허가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여기다 군사 부문이 아니더라도 최종적으로 14㎚(나노미터=10억분의 1ｍ) 이하 시스템반도체나 256층 이상의 메모리반도체, 이들 반도체의 제조·테스트 장비에 쓰일 희토류 수출 신청과 잠재적으로 군사 용도를 갖고 있는 인공지능(AI) 연구·개발용 희토류 수출 신청은 개별 심사하기로 했다.

상무부는 대변인 명의 입장문을 통해 "한동안 일부 해외 조직·개인이 중국산 희토류 통제 물자를 관련 조직·개인에 제공했고, (이것이) 직접·간접적으로 군사 등 민감한 영역에 쓰여 중국의 국가 안보·이익에 중대한 손해와 잠재적 위협을 만들었다"면서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상무부는 이와함께 대만과의 군사 협력을 이유로 미국의 드론 방어 기술 업체 디드론바이액손과 디자인테크놀러지, 그리고 이스라엘 방산업체 엘빗시스템즈의 미국지사 등 14개 업체를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에 넣는 조치도 이날 발표했다.

그밖에도 공업용 다이아몬드 등 초경질 원자재와 희토류 제련·처리 등에 관련된 설비, 홀뮴·어븀·툴륨·유로퓸·이터븀 등 중희토류 관련 물자, 리튬 배터리와 인조 흑연 음극재 관련 물자도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하는 조치 역시 이날 내놨다.
 
8일간의 국경절 연휴 직후 내놓은 중국의 이같은 조치는 미국이 연휴 직전인 발표한 수출통제 확대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지난달 29일 수출통제 명단에 있는 기업이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도 자동으로 수출통제를 적용받도록 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해당 규정에 따르면 미국의 수출통제 대상인 중국 빅테크 기업 화웨이의 경우 기존에는 자회사, 혹은 제3국 기업 인수 등을 통해 미국의 제재를 우회해 미국의 수출통제 품목과 기술 등을 수입할 수 있었지만 향후 이같은 우회전략이 불가능해 진다.

싱가포르 소재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의 스티븐 올슨 객원 선임 연구원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들이 사실상 자회사를 이용해 규제를 우회해왔고 새 규정이 이러한 구멍을 메우는데 효과적이라면, (해당 중국 기업에)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미국 상무부는 미중 4차 무역협상을 앞둔 지난달 12일 미국의 반도체 관련 수출통제 조치를 위반했다는 명목으로 GMC 반도체와 지춘 반도체 등 중국 기업 23곳을 수출통제 명단에 추가로 포함시키기도 했다.

미국의 이같은 조치에 중국 상무부는 '매우 악랄한 조치'라면서 "중국은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단호히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보복 조치를 예고한 뒤 연휴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희토류와 가공기술 수출통제 확대 조치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APEC 계기 첫 정상회담 앞두고 협상 주도권 잡기 경쟁

미중 양국이 표면적으로는 무역전쟁 '휴전' 상태이지만 주거니 받거니 수출통제 조치를 내놓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번달 말 개막하는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예정인 양국 정상회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은 9일 중국의 희토류와 가공기술 수출통제 조치가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한국에서 대면 회담을 갖기 몇 주 전에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이징의 영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머리를 맞대는 두 정상은 양국간  켜켜이 쌓여있는 무역·통상 분야 문제에 대해 광범위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 향후 양국간 신경전은 보다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으로 당장 한차례 연장한 양국간 무역전쟁 휴전 기간이 다음달 10일로 만료되는 만큼 휴전 기간을 또 다시 연장하는 미봉책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상대국에 대한 적정 관세율을 최종 도출할지 여부를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동시에 미국이 중국에 요구하고 있는 미국산 대두와 보잉 항공기 수입 확대, 합성마약 펜타닐 원료 유통 문제 해결, 그리고 중국이 요구하고 있는 AI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제품과 기술에 대한 대중국 수출 통제 조치 해제 등의 현안이 양국 정상회담의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