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충돌 피해 가는 '섀도 변호', 법원은 알고도 모른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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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대법관의 친족이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사례가 늘자 대법원은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사건배당 규정을 완화했다. 주심만 맡지 않으면 이해관계 있는 로펌이 수임한 사건이어도 관여가 가능해졌다. 재판은 실제로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공정해 보여야 한다. 대법원은 '공정한 외관'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을까. 변호사 3만명 시대, 대법관 증원까지 목전에 둔 상황에서 새롭게 대두될 문제들을 짚어봤다.

[법조인 가족, 어쩔 수가 없다?④]
전관·친족 변호사는 몸 숨기고 '몰래 변호'
'선임계' 아닌 '자문계약' 맺고 사건 관여
대법관부터 '전관 변호사' 벗어나야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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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①[단독]서경환 대법관, 김앤장 사건 못 맡는다…아들 변호사 취업
②[단독]제척 규정 후퇴에…조희대, '딸·사위 로펌 사건' 전합서 심리
③[단독]대법관 절반이 '변호사 가족'…올해만 30여건 재배당
④이해충돌 피해 가는 '섀도 변호', 법원은 알고도 모른 척
(계속)

사법부는 법관 본인이 근무했거나 친족이 몸담은 특정 로펌, 또는 연고가 있는 전관 변호사가 관련된 사건은 배당을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충돌을 피해 가는 방법 역시 오래전부터 굳어져 왔다.
 
'인적 영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전관이나 친족 변호사를 사건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이면에서 '몰래 변론'이 가능하도록 계약을 맺는다. 수임계약 대신 법률자문을 체결하면 재판 과정이나 판결문 어디에도 이름이 남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건에 대한 전략 수립, 의뢰인 관리 등 재판의 실질적 흐름에 관여한다.
 
앞서 CBS노컷뉴스는 대법원 사건배당 내규 완화로 인해, 대법관이 주심만 맡지 않으면 이해관계가 있는 로펌이 수임한 사건에도 관여할 수 있게 된 현실을 짚었다. 이번 편에선 이름을 숨긴 전관 변호사들이 사건을 움직이는, 법조계 전만에 만연해진 '섀도(Shadow) 변호'를 들여다본다.
 

법정에 온 '선배 부장판사'…드러나지 않는 '자문계약'

"부장판사 한 분이 퇴임 후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렸어요.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큰 대형로펌 안에 사무실을 얻었죠. 어느 날은 그 변호사가 법정 방청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수임은 로펌에 있는 어쏘 변호사가 했는데요. 그러면 판사들은 뻔히 다 아는 거죠. '곧 저 로펌으로 가겠구나' 하고요."
 

A 변호사는 지역에서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법정에서 마주한 '전관'을 떠올렸다. 그는 "검사장·고법 부장판사 출신에게는 퇴직 후 3년간 대형로펌 취업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규정으로 발목 잡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개인 명의로 법률사무소를 내되, 대형로펌 산하에 입주하는 일종의 전대차 계약'과 같은 구조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문패만 다를 뿐 실제로는 대형로펌 안방에서 자문계약을 맺어 일하는 '몰래 변론'의 현실이다.
 
대형로펌이 자문계약 형태로 몸을 숨기기도 한다. 중견로펌에 소속된 B 변호사는 대기업 자제의 이혼소송을 진행했을 때를 회상했다.
 
그는 "선임계를 내지 않은 대형로펌 변호사들과 '한 팀'으로 일했다. 재판엔 우리 로펌 변호사만 나갔지만, 변론의 큰 방향 설정을 하고 움직인 건 대형 로펌이었다"며 "실제 업무 이메일엔 대형로펌 변호사들이 항상 참조돼 있었다"라고 떠올렸다. 알고 보니 해당 대기업은 이미 대형로펌과 월 단위 자문계약을 맺고 있었고, 재판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뒷배'는 전관…"모두 그렇게 돈을 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로펌의 어쏘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지만, 실제 뒷배에는 전관 변호사가 있는 경우는 흔하다. 이른바 '전관 로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C 변호사는 경기도권 법원에서 부장판사로 퇴임한 전관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공직을 퇴임한 변호사는 퇴직 후 1년간 근무지 사건을 수임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지만, 현실에서 이 조항이 문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쏘 변호사 명의나 같은 로펌에 있는 다른 변호사 이름으로 사건을 수임하는 거죠. 전관 변호사는 뒤에서 서면을 첨삭하거나 직접 작성하고, 의뢰인을 컨트롤하죠. 본인의 영향력이 있었던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변호사 활동을 하는 건 특이한 현상이 아니에요. 당연히 모두 그렇게 돈을 벌고 있어요."
 

C 변호사는 "의뢰인으로서는 승소하더라도 전관의 영향력 탓인지 알 길은 없다. 그렇지만 수임료는 높다"면서도 "전관이 개입하면 판사가 청구 기각할 정도의 간단한 사건도 한두 번 변론기일을 열어주는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 4호는 법관이 퇴직 후 법무법인 등에 취업할 시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현실은 많은 전관 변호사들이 여전히 자신의 영향력이 닿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은 채, 익숙한 법원과 판사들을 상대로 사건을 맡고 있다.
 

"방청석에 앉아 있을까봐"…먼저 회피하기도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맡은 형사 재판 피고인의 선임계에서 익숙한 로펌 이름을 발견했다. "사기 사건이었는데, 로펌 이름이 낯이 익었어요. 초임 때 모셨던 부장님이 그 로펌에 들어갔다는 문자를 얼마 전 받았거든요" 법률상 제척 사유는 없었지만, 그는 스스로 회피를 신청했다.
 
"첫 공판기일에 방청석에 앉아 계실 것 같았어요. 혹시 나중에 연락이 올 수도 있고요. 다른 판사들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는 사람이 변호인으로 들어오면 조서 한 장이라도 더 꼼꼼히 보려는 마음이 생길까 흔들리기 싫어서 먼저 회피했어요. 그렇지만 저만큼 결벽적으로 회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의뢰인이 먼저 전관을 찾기도 한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형사처벌이 확정될 경우 자격상실 위험이 있는 의사나 교수, 공무원 등 의뢰인은 서울대 출신 전관부터 찾는다"며 "선임계를 낸 변호사보다 이름만 올린 고문 변호사가 더 많은 수임료를 받는 기현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추행 사건 피해자를 대리할 당시 '담당 후배 검사에게도 전화를 했다'며 합의를 요구하는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며 "서초동에서 전관의 몸값이 가장 높을 때는 인맥이 살아 있을 시기인 옷 벗고 3~4년까지"라고 퍼져있는 몰래 변론을 지적했다.
 

대법관부터 잠재적 '전관 변호사' 벗어나야 

전문가들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지금, 뿌리 깊은 전관예우 문화를 끊어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강대 임지봉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퇴임 대법관들부터 변호사 활동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고심 사건에 퇴임 대법관의 이름이 올라가면 최소한 '심리 불속행'을 피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이는 전형적인 전관예우의 작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법관으로 퇴임했다면 변호사 개업이나 대형로펌 고문 활동 등으로 이름을 올리는 일 자체를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립대 차성안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9년 사법정책연구원에서 낸 논문에서 "해외 어느 사례보다 심각하고 체계화된 전관 변호사의 개업과 소송대리 활동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사법불신이 고착화 돼 있는데도 한국은 1년짜리 수임제한 규제를 하고 있다"며 사건 수임 제한 규정 등을 강화해야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정태호 교수는 "전관예우는 퇴직 이후 당연한 보상을 기대하는 법조계의 도덕성 타락을 보여준다"며 "제도만으로는 완전히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동료 법관끼리 관행을 감시하는 문화가 함께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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