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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子수난시대④] 50대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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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도 홀로 산을 찾는 그들 "갈 곳도, 할 일도 없어"

남존여비(男尊女卑)라 했던가.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여존남비' 사회다. 갈수록 남자들이 설 곳을 잃고 있어서다. 청년들은 취업과 결혼, 중장년은 직장과 가정에서 치이고 밀리기 일쑤다. 하지만 본인도, 주변도 여전히 인식은 조선 시대에 멈춰있어 갈등도 만만찮다. CBS노컷뉴스는 '男子수난시대'의 세대별 실상을 5회에 걸쳐 집중 조망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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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20대 '답'이 없다
②30대 '집'이 없다
③40대 '나'는 없다
④50대 '일'이 없다
⑤60대 '낙'이 없다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산을 찾는 50대 남성이 늘고 있다. 산악회에 가입해 여럿이 뭉쳐가는 것도 아니다. 취미생활로 화려한 등산 장비를 갖춰 입는 건 더더욱 아니다.

평일 아침 관악산에서 만난 이모(52) 씨. 그는 누구에게도 인사 한 번 건네지 않고 묵묵히 산에 오른다.

낡은 운동화에 빛바랜 등산복, 푹 눌러쓴 모자만 챙겨온 남자의 어깨에는 막걸리 한 병과 고추장에 찍어 먹을 마른 멸치만 담긴 가방이 걸려있다.

이 씨와 같은 50대 남성들이 굳이 산을 찾는 이유는 우선 건강 때문이다. 한창 시절 매일같이 새벽에 출근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필름 끊기는' 회식을 했다. 또래 중에 당뇨와 고혈압 걱정 없는 친구가 없다.

하지만 건강보다도 더 큰 이유는 '갈 곳이 없어서'다. 도봉산에서 만난 은행원 출신 김모(58) 씨는 스스로를 '뱅커'라고 소개하면서 "할 일이 없어서 산에 왔다"고 했다.

"은퇴하니까 시간은 남는데 할 일이 없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돌아다니면 다 돈이 들고, 딱히 소일거리 할 게 없다"던 김 씨는 취미를 묻자 한참을 망설였다.

"취미라니, 뭐라고 얘기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골프야 일 때문에 접대하느라 배운 거고, 일 그만둔 처지에 칠 형편도 안 되고…".

잠시뒤 김 씨는 '정답'을 찾아낸 듯 미소를 지었다. "우리 세대에게 취미가 어디 있나. 기껏해야 등산하고 아침에 뛰는 거지".

그나마 김 씨는 일이 없어도 당분간 버틸 수 있을 만큼 형편이 나은 편이다. 기획재정부 통계에 따르면 50대에 취업한 사람은 지난 2003년 31만여 명. 하지만 지난해엔 53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50대의 고용인구와 고용률 모두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문제는 일자리의 '질'이다. 도봉산에서 만난 정모(55) 씨는 3년 전부터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있다. 24시간 격일 근무라 쉬는 날이면 산에 온다고 한다.

생선가게를 꾸렸던 정 씨는 "새벽 3시 30분에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받아오면 물건이 다 팔릴 때까지 밤 12시가 넘도록 일했다"며 "우리 세대는 다 그렇게 일하지 않았나"라고 되물었다.

반백을 훌쩍 넘긴 나이. 정 씨도 이제 여유를 찾고 싶지만 문제는 지긋지긋한 돈이다. 50대 남성에게 돈보다 가혹한 게 있을까. 가장 큰 부담은 역시 '자식'이다.

요즘 아이들은 '밥이 아니라 돈을 먹고 자란다'는 게 50대 가장들의 얘기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온갖 학원에, 대학 등록금에, 이젠 시집 장가 보낼 일까지 남았다.

코피 흘려가며 벌어놓은 돈을 다 쓰고도 모자라 은행에 손 벌리고 나면, '더 늙어서 일도 할 수 없을 때에는 어쩌나' 두렵기만 하다.

빚더미에 오른 50대는 단순히 운 나쁜 몇 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실질 가계부채는 1100조 원에 육박한다.

집을 팔아도 대출금과 전세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인 담보가치인정비율(LTV) 80% 이상 대출도 3조 원이 넘을 정도다. 특히 50대가 가장인 경우는 한 가정당 평균 7500여 만원의 빚을 안고 있어 각 세대 가운데 가장 많은 빚을 안고 있다.

누구나 힘들던 그 시절. 나만 혼자 고생한 게 아니란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정 씨 역시 "아내가 함께 일하지 않았으면 애들을 못 키웠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50대 남성의 가슴 한켠에는 사무치는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평생 남의 눈치를 보고 경쟁하며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뒤돌아보면 직장 동료들은 어디론가 흩어졌다. 고향이나 학교 친구들은 서울 올라와서 각자 먹고살기 바쁜 탓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

험난한 사회생활에서도 '내 새끼, 내 마누라만은 따뜻한 밥 한 끼 굶기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왔지만,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곳은 역설적으로 집이다.

북한산에서 만난 김득호(59) 씨는 그나마 퇴근이 빨랐던 공무원 출신인데도 자식들과 무슨 얘기를 해야 좋을지 아직까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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