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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단식' 시민 "세월호 참사, 기성세대로서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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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일어난지 100일 넘었지만, 아직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31일간 단식에 참여했던 연천희 씨가 26일 오후 경기 용인 구성동주민센터 앞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33일째인 26일, 경기 용인시의 공원에서 만난 연천희(51) 씨는 다소 수척한 모습이었다.

연 씨는 지난달 24일부터 '수사권·기소권을 보장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을 규명해 줄 것을 요청하며 동조단식을 했다가 지난 24일 단식을 중단했다.

단식기간은 무려 31일, 일반인 동조단식 참가자 중 '최장기'다.

31일 동안 몸무게는 14㎏이나 줄었다. 단식 이후 목이 자주 말라 지금도 물병을 들고 다니며 자주 목을 축여줘야만 한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조용하지만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7일로 134일이지만, 우리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 평범한 내가 동조단식에 참여한 이유는…"비에 젖은 길 위에 앉아 울부짖는 부모들 보니…"

연 씨는 20대 초반의 쌍둥이 아들·딸을 둔 아버지다. 다른 국민들처럼 그도 뉴스를 보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모습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100일째 되는 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했다.

"그 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아픔을 봤죠. 시청에서 추모제가 끝난 뒤 광화문으로 행진하는데 중간에 경찰에 막혀서 길에 앉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 날 정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거든요"

비가 와서 길에는 웅덩이가 생기고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오는 상황. 하지만 유가족들은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함께 행진하던 시민들도 모두 앉아 유가족들과 함께 고통을 나눴다.

"밑에서 한기가 막 올라와서 병이 날 것 같은데 그 현장에서 일어나자고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난 사실 못 앉겠다 이런 생각도 했거든요. 다음날 광화문에 가보니 많은 분들이 병이 나셨더라고요"

현장에 나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절박함을 온몸으로 느낀 연 씨는 그 길로 동조단식을 시작했다.

"저도 살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그렇다 보니 억울함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고 단식을 시작하면서부터 '오래 할 수도 있겠다' 각오를 했어요"

◈ 31일 동안 지켜본 유가족들의 아픔… "버티기 위해 웃는 세월호 참사 부모들"

광화문 광장의 유가족 곁에서 31일을 보낸 연 씨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웃는 얼굴'로 기억했다.

"어머니, 아버지들이 참 잘 웃어요. 처음에는 잘 웃는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의도된 웃음'이란 생각을 했어요. 버티기 위해, 버텨내기 위해서 그렇게 웃으시는 거죠"

유가족들의 웃음 뒤에는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크나큰 아픔이 있었다. 자식들을 보낼 수 없어 가슴에서 자꾸만 꺼내보고, 또 꺼내보는 동안 부모들의 마음은 너덜너덜하게 헤졌다.

"조금만 유가족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바로 울기 시작하는 거에요. 아이가 바다에서 나와서 장례를 치르는데, 옷이나 신발 이런 거 버리지 못해요. 심지어는 살이 퉁퉁 불어 가위로 잘라 벗겨낸 옷도 소중히 가져가서 빨아서 보관할 정도로…"

'대학입학 특례 혜택이나 보상금을 바란다'거나, 27일로 45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에 대한 악의적 비방이 나도는 것을 들으면 연 씨는 한숨만 나온다.

"유가족들이 특례입학이나 보상금을 요구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그런 유언비어가 난무하죠. 유민 아빠는 유민이의 손발 끝이 다 망가진 것을 보시고 단식에 돌입하셨다고 해요. 정말 마음 아픈 이야기고 사실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그에게 주고 있는거죠"

연 씨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유가족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주고 있는 사회가 안타깝다며 목에 걸린 노란리본 목걸이를 꼭 쥐었다.

"상대가 당하는 고통을 '나의 기회'로 이용하는 대표적인 상황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요. 전쟁 중에는 '사실'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분들은) 유가족들을 (전쟁에서의) '적'으로 생각하는 걸까 생각했어요. 만일 그게 아니라면, 왜 내가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지 정말 한번 생각해봐야 해요"

◈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유가족 외면·무능한 정치권 "안타깝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31일간 단식에 참여했던 연천희 씨가 26일 오후 경기 용인 구성동주민센터 앞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연 씨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란 점을 강조했다.

"표면적으로는 세월호 유가족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안전을 등한시한 우리 공동체, 사회 시스템이 그분들에게 고통을 준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세월호에 탈 수 있었고 참사를 겪을 수 있었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돼 있지 않아요"

그래서 연 씨에게 세월호 참사는 사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다. 그러면서 독일 나치정권에서 집단 수용소에 갇혔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시를 인용했다.

"내가 공산당원이 아니고, 유대인이 아니고, 노동조합원이 아니라 매번 침묵했더니 숙청의 순간이 정작 내게 오자 그 순간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거에요. 전 이 시가 지금 이 상황에 꼭 맞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어요"

연 씨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수사권·기소권을 보장한 유족들의 의견을 반영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만일 유가족이라면 권력과 탐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새로운 수사기관을 만들자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 사회에 억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 사람들의 억울함을 밝히지 못한 지금까지의 과정이 세월호 침몰이란 엄청난 결과를 낳은 거에요"

또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국민을 위해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법을 제정하는데도 얼마나 많은 기득권층의 저항이 있나요? 저는 이번에 수사권 등 보장되지 않으면 진실을 밝힐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에 대해서도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연 씨는 정부와 여당은 유가족들을 외면하고, 야당은 판세에 떠밀려 다니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분들이 유민 아빠 옆을 지나면서 인사도 하지 않고 다 외면하면서 가는 거에요. 바쁘셨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한 거죠. 그때 문정현 신부님이 거기 온 정치인들에게 굉장히 화를 많이 내셨어요"

그는 "여러가지 재앙의 원인은 결국 '탐욕'때문"이라며 "'사실'만이 탐욕을 걸러낼 수 있는데, 사회는 물론 특히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를 알리는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렸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연 씨는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훨씬 넘었지만 우리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어요"

◈ 특별법 제정될 때까지…"가슴에 노란 리본 달고 다시 광화문 광장 나갈 것"

연 씨는 두 개의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하나는 노란리본 모형이 달린 목걸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손으로 바느질해 만든 브로치다.

"농성장을 나서는데, 어떤 분이 저를 큰 소리로 부르셨어요. 돌아보니까 거기서 노란 리본 만드시는 분인 것 같은데 직접 만든 이 브로치를 제 가슴에 직접 달아주시더라고요. 바느질해서 만드신 거에요. 참 감사했어요"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연 씨는 이 노란리본 브로치를 달고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 유가족들의 손을 잡을 생각이다.

연 씨는 "검사를 받았는데 그리 큰 이상은 없다고 해요. 아내가 건강을 잘 챙겨줘서 조만간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유민 아빠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결심했던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고 싶다.

"유민 아빠와 함께 단식을 끝까지 하지 못해서 미안하죠. 유민 아빠에게 가서 단식을 끝내라고 종용할 게 아니라 우리가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 최소한의 결과물이라도 갖고 가서 밥 먹자고, 같이 사회를 바꾸자고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몸이 상하는 것도 무릅쓰고 유가족들의 발걸음에 동참한 연 씨이지만, 그는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말한다.

"사실 기성세대로서 부끄럽고 창피해요. 그래서 별로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말하거나 알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가 50년 이상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오면서 참 부끄러운 사회의 모습에 비판없이 매몰돼 살아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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