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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섯 개의 칼을 찬 연개소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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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대첩 기록화. (키노스타 제공)

 

수나라 황제 '양제'는 612년 정월 북동의 강국 고구려를 치기 위해 육지와 바다로 최강의 원정군을 보낸다. 수의 병력 규모는 113만 명. 수 군사는 살수(薩水)에 이르러 을지문덕의 고구려 군에게 궤멸(壞滅)한다. 그 후 수나라는 심각한 재정악화와 내분으로 망국의 길로 접어든다. 당시 수나라의 많은 군사들이 고구려 땅에서 전사한 것을 비탄한 시가 오늘까지 전해온다.

'산 위에서 노루 사슴 잡고, 들에서는 소와 양을 잡으며 평화롭게 지냈는데. 관군이 도착해 칼 들고 전쟁터로 끌고가네. 사람들이여, 요동에서 죽는 것을 깨달아라.'

수에 이어 당나라도 수차례 고구려 정복에 나서지만 그때마다 패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안시성 전투에서 연개소문에게 쫓기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滅)한 것은 한반도 이남을 차지하고 있던 신라와의 연합군을 통해서였다. 이때 중국과 고구려와의 끈질긴 '철천지원수' 관계가 청산된다. 그리고 한반도는 신라의 땅이 된다. 통일신라부터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왕실은 '실리(實利)'라는 명분 아래 중국에 '이소사대'(以小事大)하는 관계를 만들어 안정을 유지했다.

현대사로 접어들면서 역사는 묘한 변화를 겪는다.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탄생하면서 수와 당의 후예인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한반도 북쪽 고구려 후예의 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변신한다. 철천지원수였던 고구려의 후예와 수·당의 후예들이 같은 배를 타게 된 것이다. 그들이 피를 나눈 혈맹으로 발전한 것은 동맹군이 되어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나서다. 1500년 전 '나당연합군'이 '고당연합군'으로 뒤바뀐 셈이다. 그 후 계속된 냉전체제 속에서 중국과 북한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밀월기간을 보낸다.

역사는 강물처럼 흘러 아무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을 지금 통과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자본주의를 도입해 세계경제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패권을 노리는 중국은 북한을 한때 혈맹의 형제국가였다고 곱게 봐줄 이유가 없어졌다. 북한도 중국과의 혈맹관계가 역사적·시대적 패러다임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망하지 않기 위해 배수진으로 핵무기를 붙잡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김씨 왕조의 '핵폭탄'은 상징적인 동어(同語)다.

한반도 남과 북의 슬프고도 고난으로 점철됐던 역사를 훑어보면 어둠 속 등불처럼 빛을 내는 메시지가 있다. '힘'이다. 평화와 공존은 힘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만 가능했다. 고구려가 황제의 나라 수·당의 집요한 정복전쟁에도 패하지 않고 버틴 것도 힘 때문이었다. 6·25 전쟁 이후 남과 북이 공존한 것도 동서 냉전시대 힘의 균형 때문이었다. 냉전시대는 갔고, 한반도 안정에도 이미 균열이 일고 있다. 이제야말로 믿을 수 있는 것은 '국력'뿐이다.

오산 상공 비행중인 B-52 (국방부 공동취재단)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대한민국 국군은 대북 확성기방송을 재개했고 한반도 상공에는 핵미사일로 무장한 미국의 전략무기 B-52가 날고 있다. 한·미·일 3국은 대북제재 공조에 나섰고, UN 안보리는 추가 대북제재에 강경한 입장이다.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경극(京劇) 가운데 <독목관>(獨木關)이라는 작품이 있다. 극 중에는 '다섯 개의 칼'을 차고 나와 주인공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겁박하는 무서운 인물이 나온다. 중국인들에게 위압과 공포감을 주는 인물이다. 그가 당 태종 이세민을 떨게 했던 고구려의 영웅 연개소문이다. 역사를 거슬러 경극 속에 살아남은 그가 아쉽고 그립다. 한반도에서 광활한 북쪽 대륙을 향해 호령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중국과 미국 혹은 일본에 '이소사대'하며 살아야 하는 일만은 없어야겠기에 떠올린 생각이다. 조선이 중국에 사대(事大)하며 살았던 때가 불과 150여 년 전이었다. 삼천리금수강산을 일본에 빼앗긴 때도 100여 년 전이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풍요도 '살수대첩' 이후 1500년 한반도 역사 가운데 고작 3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일어설 만큼 섬뜩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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