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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공명해온 이효리, 시로 물들인 4·3추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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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순이삼촌' 현기영 "애도에만, 슬픔에만 머물지 말라고…"

가수 이효리가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제주=CBS노컷뉴스 박종민 기자)

 

제주도를 새로운 삶터로 삼아 소통해 온 가수 이효리가 3일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추념식장을 찾아 시 세 편을 낭독했다. 먼저 4·3의 깊은 상처를 보듬는 제주 출신 시인 이종형의 '바람의 집'.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섬, 4월의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다만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섬, 4월의 바람은/ 당신의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당신의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로부터 시작되는 당신의/ 바람의 집이었던 것"

이효리가 시를 낭독하는 중간중간, 원통한 듯 내뱉는 까마귀 울음은 추념식장의 적막을 찢어놓았다. 까마귀들은 4·3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려는 듯이 공원 너른 벌판에 자리한 행방불명인들 표석 위를 날아올랐다.

이곳 행방불명인 표석은 모두 3895기에 달한다. 끝없이 펼쳐진 채 침묵하는 그 표석의 행렬, 그리고 적막을 찢는 까마귀 울음을 마주하면 4·3의 비극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파고든다.

앞서 소설 '순이삼촌'(1978)으로 4·3을 세상에 처음 알린 현기영은 이날 추도문을 통해 "4·3 조상님의 슬픈 넋들은, 지금 저 봄날의 들판에 노란 유채꽃으로 무리지어 피어났다"며 "함성처럼 일시에 피어난 저 유채꽃 무리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남북 분단의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통일국가를 외쳤던 70년 전의 그 함성을 듣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4·3의 영령들은 지금 이렇게 추념식을 열어 애도를 표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애도에만 머물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며 낭독을 이어갔다.

"4·3의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말라고, 4·3의 가혹한 경험이 생산적인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희생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3만이라는 그 막대한 죽음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과연 무엇이고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죽음이 아닌 생명을, 전쟁이 아닌 평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기영은 "이제 4·3의 영령들은 한반도 남북간에 증오의 언어와 몸짓을 걷어치우고 화해와 상생, 평화의 길로 나서라고 우리 등을 떠밀고 있다"며 "4·3 영령들이시여, 우리의 조상들이시여 부디 우리에게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와 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다.

◇ "허리에 박혀 살점이 되어버린 총탄마저 보듬어 안고…"

제70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평화공원에서 한 유가족이 희생자의 넋을 달래고 있다. (제주=CBS노컷뉴스 박종민 기자)

 

이날 이효리는, 추도식이 중반을 넘긴 때 다시 한 번 단상에 올라 4·3의 아픔을 그린 시 한 편을 더 읽었다. 시인 이산하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

"평지의 꽃/ 느긋하게 피고/ 벼랑의 꽃/ 쫓기듯/ 늘 먼저 핀다// 어느 생이든/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벤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를 마친 뒤, 이효리는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4·3의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말자'고 했던 현기영의 추도문과도 공명하는, 김수열의 시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를 낭독했다.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천둥 번개에 놀라 이리 휘어지고/ 눈보라 비바람에 쓸려 저리 휘어진/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나이테마다 그날의 상처를 촘촘히 새긴/ 나무 한 그루 여기 심고 싶다/ 머리부터 어깨까지 불벼락을 뒤집어쓰고도/ 모질게 살아 여린 생명 키워내는 선흘리 불칸낭/ 한때 소와 말과 사람이 살았던,/ 지금은 대숲 사이로 스산한 바람만 지나는/ 동광리 무등이왓 초입에 서서/ 등에 지고 가슴에 안고 어깨에 올려/ 푸르른 것들을 어르고 달래는 팽나무 같은/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허리에 박혀 살점이 되어버린 총탄마저 보듬어 안고/ 대창에 찔려 옹이가 되어버린 상처마저 혀로 핥고/ 바람이 가라앉으면 바람을 부추기고/ 바람이 거칠면 바람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봄이면 어김없이 새순 틔워 뭇새들 부르고/ 여름이면 늙수그레한 어른들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는/ 그런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푸르고 푸른/ 일흔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내일의 바람을 열려 맞는 항쟁의 마을 어귀에/ 아득한 별의 마음을 노래하는/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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