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슬아슬' 출근길…"모든 길은 평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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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도 '일상권'을 ①-출근할 권리]
※지난달 28일부터 휠체어를 탄 채 탑승할 수 있는 고속버스가 4개 노선에서 3개월간 시범 운행에 들어갔다.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이 시행된 지 13년 만에 이룬 성과다. 하지만 장애인은 출퇴근과 여행을 위해 이동할 권리, 치료받을 권리 등 일상권에서 여전히 배제돼 있다. CBS노컷뉴스는 일상을 누릴 권리조차 갖지 못한 우리나라 장애인의 현실을 3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장애인에게도 '일상권'을 -출근할 권리
(계속)

지난 12일 전동휠체어를 타고 출근하는 배재현(41)씨의 모습. (사진=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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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지난 12일 전동휠체어를 타고 출근하는 배재현(41)씨를 동행취재했다.


서울지하철 4호선 쌍문역에서 상계역까지 고작 세 정거장. 재현씨의 거주지에서 역까지의 거리, 역에서 직장까지의 거리를 합쳐도 비장애인 기준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이날 재현씨의 집에서부터 직장까지 걸린 시간은 52분. 취재진이 동행한 재현씨의 출근길은 고단하고, 위태로웠다.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집을 나선 재현씨의 몸은 시도 때도 없이 흔들렸다. 재현씨는 매일 아침 전동휠체어를 타고 역으로 간다. 휠체어를 탄 채로 오를 수 있는 마을버스가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은 아파트 단지 내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7분 만에 역에 도착하지만 재현씨는 20분 이상 휠체어를 타고 달려야 한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 비탈지거나 움푹 파인 길은 위험하다. (사진=박고은 기자)

인도가 울퉁불퉁해 차로의 갓길을 이용하는 배재현씨. (사진=박고은 기자)
역으로 향하는 길은 울퉁불퉁하고 비탈지다. 겨울에 바닥이 얼기라도 하면 휠체어가 헛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인도에는 보도블럭이 빠져 움푹 파인 지점도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이런 지점을 전동휠체어가 피하지 못하면 사람뿐 아니라 휠체어까지 앞으로 고꾸라져 크게 다칠 위험이 있다. 이런 이유로 재현씨는 큰길이 아닌 곳에선 인도보다는 차로의 갓길을 이용한다.

재현씨는 "어떻게 된 게 한국에선 인도보다 차로가 더 평평하게 닦여있다. 길을 설계할 때 장애인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취재진이 동행한 날에도 사고가 날 뻔 했다. 인도가 따로 없는 길목의 한 초등학교 앞. 재현씨는 모퉁이를 돌다 맞은편에서 돌진하는 차를 발견하지 못했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나오는 비탈진 길을 신경 쓰다 정작 차가 달려오는 맞은편은 보지 못한 것이다.

전동휠체어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길에 취약하다. 자칫 잘못하면 탑승자와 휠체어가 동시에 옆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탑승자는 앞보단 옆을 주시하게 된다. 재현씨를 비롯한 전동휠체어 탑승자들이 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이유다.

재현씨는 "장애인의 출근길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타면 편하게 출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 하루 저를 따라다닌 기자님도 이제 길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모든 길은 평등하지 않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 출입구를 지나쳐 길을 돌아가는 배재현씨. (사진=박고은 기자)
다행히도 이날 지하철은 그리 북적거리지 않았다. 재현씨는 "직장을 상계동 쪽으로 옮긴 후 그나마 출근길이 나아졌다"며 "4호선 끝이라 사람들이 덜 붐비기 때문에 휠체어 탑승이 크게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1호선의 악몽'을 떠올렸다. 2013년 재현씨는 개봉역 부근에 있는 직장을 다녔다. 당시 재현씨는 출근 시간에만 꼬박 두 시간을 써야 했다. 거리가 멀기도 했지만 환승하는 시간, 승강장 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하는 시간, 휠체어 리프트를 타는 시간 등을 합치면 비장애인에 비해 시간이 배로 걸렸다.

더 큰 문제는 지하철 전동차 휠체어 전용칸에 사람이 가득 찼을 때다. 바쁜 출근 시간이면 사람들은 별 인식 없이 전동차에 오른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해 마련된 휠체어 전용칸도 예외는 아니다. 휠체어 전용공간은 전동차 한 대에 두 곳, 많으면 네 곳이다. 그런데도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지하철을 몇 대나 보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재현씨에 따르면 출근 시간이 아닐 때도 캐리어나 자전거를 들고 탄 사람들이 휠체어 전용칸을 차지하고 있어 불편을 겪는 일이 많다.

재현씨는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에 오르면 어떤 분들은 그냥 비켜주지만 어떤 분들은 말을 해도 안 비켜주는 경우가 있다. 아직은 휠체어 전용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현씨는 출근길을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비장애인에게도 출근은 힘든 일이지만 장애인에게 출근은 매 순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전쟁터다. 재현씨는 "장애인에게도 안전하게 출근할 권리가 있다. 출근은 삶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다. 안전한 출근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란 인식이 널리 퍼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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