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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증명하라는 정부…재난지원금 '선별'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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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새 20만 명 이의 신청 "가난 증명 행렬…선별 지원의 씁쓸한 단면"
"홍남기 부총리 이의신청 구제 발언, 베풀겠다는 시혜적 시각" 지적도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정부 5차 재난지원금에 대한 이의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상위 12%이 아니라 하위 88% 포함을 증명하기 위한 행렬이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정부의 선별 지원 방침이 빚어낸 씁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선별 지원 논란에도 결과적으로 정부 인식은 개선되지 않은 모습이다.
   

#1. 무상급식  


10년 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이어졌던 무상급식 논란은 이제 거의 모든 지역에서 당연시 여겨지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 손자에게도 공짜 밥을 주는 것이 맞느냐'는 반대 측 논리에 '가난을 증명해야 하느냐'는 찬성 측 논리가 부딪히면서 거센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은 보편 복지로 귀결됐다. 경제적 부담은 물론 도시락에서 해방된 수많은 학부모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2. 방학 중 급식카드 디자인 


급식을 먹지 못하는 방학 기간 동안 일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급식카드가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왼쪽부터 개선된 인천 아동 급식카드와 종전 카드. 기존 급식카드에 인천시 로고 등이 표시돼 결식 아동의 신원이 노출되고 낙인효과를 준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인천시 제공왼쪽부터 개선된 인천 아동 급식카드와 종전 카드. 기존 급식카드에 인천시 로고 등이 표시돼 결식 아동의 신원이 노출되고 낙인효과를 준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인천시 제공
일반 카드와 구분돼 '저소득층 급식 카드'임을 알 수 있는 디자인 때문이었다. 자신의 가난이 증명되는 카드 사용 대신 굶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결국 자치단체들은 카드 디자인을 바꿔야 했다. 더 이상 가난이 증명되지 않는 일반 카드 디자인으로.
   

#3. 서울대 장학금 


서울대의 장학금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장학금 신청서의 '경제적으로 절박한 정도를 구체적으로 작성' 기재란 때문이었다.
   
국가인권위가 장학사업에서 '가난을 증명하라'는 식의 양식 사용을 지양할 것을 권고했지만, 서울대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가난 증명을 요구해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서울대 뿐 아니라 많은 대학과 장학재단에서 비슷한 이유로 비판을 받은 뒤 조항을 삭제해야 했다.
   

#4. 2021년, 또 다시 요구된 가난 증명 


고규창 행정안전부 차관(오른쪽)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세부시행계획'을 발표에 앞서 실무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고규창 행정안전부 차관(오른쪽)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세부시행계획'을 발표에 앞서 실무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2021년 정부는 또 다시 가난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앞선 요구들이 비판을 받고 개선됐지만, 정부의 인식은 개선되지 않은 듯 보인다.
   
88% 선별 지급되는 제5차 국가재난지원금을 받기 위해 지난 1주일 사이 20만 명이 훌쩍 넘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가난을 증명해야 했다. '복지'라는 명분과 '이의신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가난 증명 요구인 셈이다.
   
여기에 홍남기 부총리는 이의신청 "최대한 구제하겠다"고 말했다. 베풀겠다는 시혜적 시각이 아니라면 입에 내뱉기 어려운 언어다. 스스로 가난을 증명한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베풀겠다는 뜻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온갖 비판도 받는다. 대출금에 허덕이는데 대상에서 제외된 맞벌이, 건보료 몇 천원 때문에 100만원에 이르는 4인 가족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직장인과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끝이 없다.
   
'않느니만 못하다' 는 표현이 있다. 제5차 국가 재난지원금에 대한 정부의 모습에서 이 표현이 떠올랐다면 과한 일일까.
   
한 40대 직장인은 "가난을 증명하라는 정부와 가난을 증명하겠다는 국민들의 행렬을 보며, 지금과 같은 방법밖에 없었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씁쓸한 풍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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