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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간토 대지진 학살 100주기 '백년 동안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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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고양이 제공
일본 시인 쓰보이 시게지(壺井繁治)가 1948년 발표한 14연 204행에 이르는 장시(長詩) '15엔 50전'은 자신이 직접 겪은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증언을 담은 고백의 시다. 1923년 9월 1일 대지진 직후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넣는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며 6일 동안 6천여 명의 조선인이 재향군인 중심 자경단에 의해 학살당했다.

"십오엔 오십전(十五円 五十錢)이라고 해봐! / 손짓 당한 그 남자는 군인의 질문이 너무도 갑작스러워 /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 잠깐, 멍하게 있었지만 / 곧 확실한 일본어로 대답했다 / -쥬우고엔 고쥬센 / -좋아! / 칼을 총에 꽂은 병사가 사라진 뒤에 / 나는 옆에 남자의 얼굴을 곁눈질로 보면서 / -쥬우고엔 고쥬센 / 쥬우고엔 고쥬센 / 이라고 몇 번씩이나 마음속으로 반복해보았다 / 그래서 그 질문의 의미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 아아, 젊은 그 시루시반탱(印絆夫)이 조선인이었다면 / 그래서 "쥬우고엔 고쥬센"을 / "츄우코엔 코쥬센"이라고 발음했더라면 / 그는 그곳에서 곧 끌어내려졌을 것이다"

'15엔 50전'은 일본어 탁음을 발음할 수 없는 조선인을 골라내려는 행위로 근대 일본 특유의 '일본인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는 일본인과 비일본인을 구분해 타자화 하려 했던 일을 증언한다.

이 장면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일본군 츠다 하사가 술집 게이샤로 변장한 여성의 병을 의심해 일본의 풍습 '마메마키(豆まき)'로 일본인과 비일본인을 구분했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전후 일본은 패전 이후 정국의 불안 속에 원망과 좌절에 대한 공포를 외부로 돌리려 했다. 여전히 일본에 남은 조선인, 중국인, 아이누인, 오키나와인 등 과거 식민들의 복귀 문제가 대두됐고 일본인들은 이들을 두려워 했다. 철저한 식민통치관에서 늘 하위에 있던 이들이 자유인이 됐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더 커졌고 정부에 대한 원망은 타인이었던 이들에게 향했다.

저자는 일본인 특유의 '나와바리', 세력권인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철저히 상불경(常不輕, 남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며 공경하거나 배려하는 행위)을 실천하지만 그 경계지 밖에 있는 타자는 '적'으로 대하며 혐오하는 섬나라 특유의 원형 문화가 발현됐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아시아에 저지른 백년의 과거를 괴로워하는 일본 시민과 지식인들이 존재하지만 과연 일본 정부가 변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0%라고 해도 일본 정치인의 변화를 기대하고 바른 말을 하는 정치인을 격려하고 잘못된 판단을 세뇌시키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멈추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소설가 오에 겐지부로는 "일본이 어느 정도 사죄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은 큰 범죄를 한국에 범했다. 게다가 아직 한국인에게 일본은 충분히 사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과거 일본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책은 말미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와 삭제·왜곡으로 시달리는 가해자 모두의 치유를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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