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AI(인공지능)칩의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을 두고 격돌해 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6세대 HBM인 'HBM4' 주도권을 두고 진검승부에 나섰다.
5세대 HBM(HBM3E)에서 주도권을 뺏긴 삼성전자는 HBM4 시장에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기술경쟁력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데 '6세대 HBM 왕좌'를 누가 차지할지 관심이 쏠린다.
HBM4, SK가 첫 발은 먼저…칼 가는 삼성
24일 업계에 따르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 열린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5에서 내년 하반기 '루빈'이라는 새로운 AI 칩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루빈은 엔비디아 AI 칩 중 처음 HBM4가 탑재되는 제품이다. 이에 업계에선 루빈 출시 이후 HBM4 시대가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첫 발은 SK하이닉스가 뗐다. SK하이닉스는 황 CEO가 신제품을 발표한 날 "당초 계획보다 빨리 36GB(기가바이트) HBM4 12단 샘플을 세계 최초로 주요 고객사들에 제공한다"고 밝혔다.
고객사를 밝히진 않았지만 이번에 샘플이 공급된 곳은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등 미국 빅테크 기업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도 같은날 HBM4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를 이끄는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은 18일 진행된 주주총회에서 "AI 경쟁 시대에 HBM이 대표적인 부품인데 그 시장 트렌드를 조금 늦게 읽는 바람에 초기 시장을 놓쳤다"며 "HBM4 등 차세대 HBM에서는 이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계획대로 차근차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HBM3E는 SK하이닉스가 주요 고객사들의 수요량을 상당 부분 확보한 상황이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이미 뒤처진 HBM3E보다는 HBM4 시장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르게 쌓아온 삼성·SK, HBM4 선 진검승부
제프 피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업 부문 수석부사장이 18일(현지시간)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5에 마련된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아 "HBM4 샘플을 축하합니다!"(Congrats on HBM4 Sample!)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연합뉴스맞춤형(커스텀) 제품인 HBM4 시장에선 새로운 적층(쌓기) 기술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협력이 기술 주도권 확보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HBM에서 D램을 적층할 때, 비전도성 접착 필름을 이용해 붙이는 '첨단 열압착 비전도성 접착 필름'(TC-NCF) 방식을 사용했고, SK하이닉스는 칩과 칩 사이를 액체 물질로 채워 붙이는 '매스 리플로우-몰디드 언더필'(MR-MUF) 방식을 차용했다.
하지만 HBM4 제품군부터는 양사 모두 칩과 칩 사이에 범프를 형성하지 않고 직접 접합시키는 기술로 고단 적층에 유리한 '하이브리드 본딩' 방식을 적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업계 내에서 나온다. 양사가 차용한 기술의 차이가 양사 기술력의 격차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업계 내에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와 협력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HBM4부터는 HBM의 '두뇌' 역할을 하는 로직 파운드리 공정이 적용된다.
삼성전자는 주총에서 메모리 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반면 자체 파운드리 설비를 구축하지 못한 SK하이닉스는 대만 TSMC 등과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영 전면' 이재용의 글로벌 네트워크, HBM4 미칠 영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이 22일 레이 쥔 샤오미 회장을 샤오미 전기차 공장에서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중국 샤오미 웨이보 캡처한편 최근 빠르게 보폭을 넓히고 있는 이재용 회장의 경영 행보가 삼성의 HBM 사업에 미칠 영향도 관심사다.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23일부터 이틀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발전포럼(CDF) 2025' 참석한다. 중국이 세계 주요 재계 인사를 초청, 경제 현안을 논의하며 투자 유치를 모색하는 행사인 CDF엔 IT와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기업 CEO 80여명이 행사장을 찾는다.
이 회장은 또 중국 샤오미 전기차 공장을 찾아 레이 쥔 샤오미 회장과 만나고 모바일과 전기차 사업에 대한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 자리엔 크리스티아누 아몬 퀄컴 CEO도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이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과의 네트워킹 차원 차원에서 중국발전포럼(CDF)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글로벌 빅테크 등 고객 유치가 사업 성패의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HBM 사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본격화된 이 회장의 글로벌 경영 행보가 삼성전자 HBM4 주도권 확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