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5년도 제1회 추경예산안에 대한 정부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나서고 있다. 윤창원 기자"우리 당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될 거라고 보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경선을) 솔직히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의힘 당직자)29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2차 컷오프를 통과한 '최후의 2인'이 발표된다. 하지만 최종 발표를 앞둔 긴장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출마가 기정사실화되면서, 단일화론도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에선 경선이 한 대행을 위한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헌정회장에 '韓 단일화' SOS 친 권영세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2차 경선 토론회 미디어데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진행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한덕수 출마 및 단일화'도 구체화되고 있다. 물밑에서 지도부가 '한덕수 차출론'을 지원사격 했다는 사실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대철 헌정회장에게 전화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권 비대위원장은 정 회장에게 한 대행이 당이 선출한 최종 후보와 단일화를 통해 입당 및 출마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회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권 비대위원장이) 26일 저녁 '좀 잘 얘기해 주세요'라 했다"며 "당 대표가 안부전화를 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우리 쪽으로 (오게) 해주세요'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후보가) 2명으로 압축됐는데 한 대행이 갑자기 들어가서 '끼워달라' 할 수도 없잖나. 결국 짐작컨대 (최종후보가 확정되면) 그 한 사람과 노무현-정몽준 식의 단일화를 도와달라는 뜻"이라며 "뻔한 얘기"라고 부연했다.
한 대행이 조만간 정 회장과 만날 것으로 알려지자, 정 회장에게 지원사격을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명시적 언급은 없었지만, 정계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 사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뉘앙스였다는 전언이다.
원내 핵심관계자는 "단일화는 우리 당 후보가 주도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나"라면서도
"비대위원장과 선관위원장의 역할은 다르다. (권 위원장의 발언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찬탄파도 피해갈 수 없게 된 '단일화 적자' 경쟁
당초 한 대행 얘기를 일종의 해프닝으로 받아들였던 캠프들의 기류도 달라졌다.
마치 '누가 단일화의 적자'인가를 겨루는 양상이 전개되면서, 한 대행과의 접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막판 마케팅이 과열인 실정이다.
한 대행 출마를 앞장서 촉구한 박수영 의원 등이 캠프 요직에 있는 김문수 후보, 홍준표 후보는 이른바 '원샷 경선'을 밀고 있다.
김 후보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를 보면 여론조사로 소위 원샷 경선을 했다. 신속하고도 이의제기 없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했다. 홍 후보도 당원 투표는 물론, 역선택 방지 장치도 없이 '국민 전체를 상대로 한 경선'을 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찬탄(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한동훈 후보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이다.
안 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 대행과 김·한 후보를 싸잡아 "세 분은 '윤석열 내각'에서 일해 공동책임이 있다"며 이번 대선에 출마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단, 부득이 한 대행이 출마한다면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양자대결 시 가장 격차가 적은 사람이 단일화 후보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후보는 조금 더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다. 권 비대위원장과 정 회장 간 통화 내용을 두고 "적절하지 않다"며 "경선 진행 중 자꾸 그런 얘기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패배주의"라고 지적했다.
이에 권 비대위원장이 '반명(反明) 빅텐트'를 염두에 두고 원로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 "뭐가 부적절한가"라고 되받아치며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만,
한 대행과의 관계성 설정 자체가 경선의 경쟁력이 돼버린 현 국면을 무시할 수도 없는 복잡한 속내가 엿보인다. 한 후보는 최근 4자토론에서 '한덕수 출마론이 언짢나'란 질문에 '그렇지 않다'(X)는 취지로 답했다.
"짜여진 각본에 無감동·노잼"…내부서 자조도
국민의힘 대선 2차경선에 참여 중인 김문수 후보가 27일 SNS에 올린 게시물. 김 후보 캠프 제공
당 내에서는 이미 '예비전'이 돼버린 경선에 대해
"다 짜여진 각본", "감동도 재미도 없다"는 자조적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김 후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을지문덕' 홍보물이 화제가 되자, 일부 당직자들 사이 다소 격앙된 반응도 나왔다. 김 후보 캠프는 해당 포스터에서 김문수의 '문'과 한덕수의 '덕'을 딴 이미지로 표심을 향한 구애를 펼쳤다.
한 국민의힘 당직자는 "김문수 캠프는 곧 한덕수 캠프나 마찬가지"라며
"우리 후보들의 색깔은 전혀 없는 '한덕수 경선'이 됐다. 당이 경선 중단을 선언하고 후보자 전원을 사퇴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후보가 각자의 장점과 정체성을 갖고 선출돼야 후보 지지율로 연동되고, 그래야 단일화를 했을 때 (지지율 제고) 효과도 있는 것"이라며 "'어차피 한덕수'로 여론이 잡힌 상황에서 결선 여부가 크게 의미가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그간 침묵을 지켜 온 한 대행은 내달초 공직 사퇴 및 출마 선언을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사표를 제출한 손영택 총리비서실장 등 측근들의 '사퇴 러시'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을 주축으로 한 캠프 구성도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