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공영차고지에 운행을 앞둔 버스가 줄지어 주차돼 있다. 황진환 기자통상임금 문제로 사측과 갈등을 겪어온 서울시버스노동조합(노조)이 28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노조(버스기사)를 한 축으로 하고, 버스운송사업조합(버스회사, 사용자), 서울시(버스 준공영제에 따라 버스회사를 관리 지원하는 주체)를 다른 축으로 하는 양측 사이에 여론전도 가열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 호재 불구 버스노조 파업 궁지…왜?
버스회사와 서울시는 서울 버스 운전기사들의 평균연봉은 약 6200만원(세전)으로 이미 적지 않으며, 임금을 인상 요구를 받아줄 경우 막대한 혈세로 메꿔야하고, 버스요금 인상도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여론에 호소중이다.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봐야한다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버스 노조는 불리한 입장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여론전 사이에 몇 가지 문제들이 간과되고 있다.
먼저 서울 버스 운전기사들의 평균연봉 부분이다. 마을버스 운전기사들에 비하면 분명히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시내버스를 타보면 늘 '버스 기사 상시 구함'이라는 광고를 볼 수 있다. 즉 버스기사는 구인난을 겪고 있는 대표적인 직종이다. 왜 그럴까. 새벽과 심야 시간 같은 취약시간 근무, 휴일 근무, 정시성 준수, 시민들의 안전 책임 부담 등 특수성 때문에 기피하고 있는 직업인 것이다.
국내 봉급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버스기사들의 봉급은 기본급, 상여금, 각종 수당으로 3등분 돼 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에 따르면, 버스기사들의 기본급과 상여금은 전체 임금의 60%를 차지하고, 수당이 4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2개월에 한번씩 똑같은 금액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비현실적인 수당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감을 마비시키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즉, 기본급을 최저로 묶고, 이를 바탕으로 산정되는 수당의 인상 폭을 제한하려는 일종의 속임수인 것이다. 이 때문에 서울의 버스기사들을 대표해 동아운수 노동자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시켜달라는 소송을 2015년 제기했다. 이 소송은 1심에서 노조 패소 이후 현재 2심에 계류중이다.
오케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자…임금체계 개편의 꼼수
황진환 기자동아운수 노조가 소송을 제기한 2015년 전후 다른 업종의 노조들도 비슷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2020년 세아베스틸 노동자들의 경우 2심 재판에서 예상을 깨고 승소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는 2심 판결을 근거로 서울 버스노조는 버스회사들을 상대로 그 동안 마땅히 '더' 받았어야할 각종 수당을 받지 못했다며 별도의 채무(미지급 임금) 이행 소송도 제기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대법원까지 나서 한화생명보험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봐야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대법원은 버스노조가 제기한 것 같은 채무의 소급 이행은 배제했다. 대법원이 사용자 편을 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지점이다. 이를 틈 타 여러 업종의 사용자들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포함시켜 임금체계를 다시 짜고 있다. 즉 대부분 업종의 노조들은 수당의 소급 지급 요구권을 포기한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버스 노조의 임금 협상은 다른 업종의 노조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즉 버스 노조는 미지급 임금 등에 대한 해결 없이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에 근본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 같은 임금체계 개편은 임금포기 유도라는 입장이다.
버스노조의 '임금포기' 거부…임금 착취 구조와의 싸움
황진환 기자이에 대해 버스노조 유재호 사무부처장(공인노무사)은 노동자들이 회사로부터 돌려받아야할 수당이 단순한 채무가 아니라 '노동의 대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누군가 빌린 돈을 안 갚는다고 해서 처벌받지는 않지요. 그러나 누군가 임금을 주지 않으면 처벌을 받습니다. 다른 채권과 달리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법적으로 심각한 범죄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상 근로 시간보다 1.5배의 임금을 줘야하는 야간 근로 수당도 노사가 1배만 주기로 합의해도 근로기준법상 무효가 됩니다. 노동의 대가를 중시하는 사회적 합의에서 비롯된 제도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미지급 임금을 받겠다는 것은 그동안 버스 회사들이 떼어먹은 임금을 돌려달라는 것일 뿐입니다."
그 동안 기본급을 낮추고, 상여금 항목을 만들어 임금 총액을 보전해온 것은 값싼 연장·야간 근로수당에 대한 부담 없이 연장·야간 근로를 마음껏 시키기 위한 사용자측의 꼼수였음이 법원 판결을 통해 지적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버스노조들이 예고한 버스파업은 무비판적으로 우리사회가 수용해 왔던 전근대적 임금 관행과의 일대 전쟁으로 봐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