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동취재단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A씨는 직업이 증권사 임원이라고 한다. 법원의 보석 심문에서 그가 남긴 말은 평범한 시민들을 졸도하게 만든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카투사 훈장을 받았고, 증권계 최연소 임원이 돼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올바르다고 여기는 길을 걸어왔다"며 석방을 호소했다고 한다. 공동체 규율과 질서를 다중이 파괴하는 폭동을 저질러 놓고도 "서울대, 카투사"를 운운하며, 공부 머리로 선처를 바라는 파렴치한 30대의 궤변에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 어이없는 일을 보거나 당할 때 우리는 "맙소사"라고 탄식하게 된다.
'30대의 서울대 출신' 폭동 피고인은 민간인이니 그렇다고 치자.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제 20대 대통령이었다. 비상계엄을 "2시간짜리 경고성 계엄이요. 계몽령"이라고 만화를 그렸다. 그의 정신세계를 감정하고 추론하는 일은 하지 말자. 무용하며 헛되고 헛된 일이다. 정신 건강상 그냥 그런 사람으로 취급하고 말자. 윤은 국민의 최고 공복이었다. 그런 사람이 공화정의 파괴와 붕괴를 자초했다. 그날 밤 어떤 사람은 총을 가진 군인에 맞서려고 여의도로 달려나갔고, 어떤 심약한 마음을 가진 이는 '수거 대상'이 될 것이 두려워 내복과 옷가지를 챙겨 급히 집을 떠났다. 내란 세력에게 한 밤의 꿈이었을지언정, 다수 시민들에게는 공포였다.
대한민국 공화정이 붕괴될 뻔했던 12월 3일 밤, 그날 새벽으로 두려움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해가 바뀐 1월 19일엔 법원 건물에서 석방을 요구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은 자들은 헌법과 법률상 공직자가 준수해야 할 의무들을 이행하지 않았다. 한덕수,최상목은 내란종식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의사를 무시했다. 내란 연장 배후의 주도 세력이 되었다. 또 여기에 사법부까지 가담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는가. 서울중앙지법 부패전담부에서 로열 중의 로열 판사인 지귀연은 내란 핵심우두머리를 과감하게 석방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반년에 걸쳐 진행된 내란 준동들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를 떠올리게 한다. 키케로의 삶은 카이사르가 독재로 로마 공화정을 파괴키시고 그의 암살과 혼란으로 격변하던 내란 시기를 관통했다. 키케로는 공직자라면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키케로는 정의(Justice)를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국가는 국민의 공동체이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협력체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의가 없다면 왕과 폭군이 이끄는 국가와 강도들의 소굴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지난 6개월은 '강도의 소굴'까지 나락으로 떨어진 건 아니다. 허나 각자에게 그의 몫을 주지 못하는 사지마비 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이 될 뻔했던 것은 사실이다.
키케로를 떠올린 이유는 지귀연 때문이다. 지귀연에게 술집 논란은 처신에 관한 것이다. 즉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들 말이다. 그가 "소주·삽겹살 외에 '그런 곳'은 간 적이 없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지귀연에 갖는 본질적인 불신과 의심은 그의 재판진행 행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 최고 권력자로서 공동체의 원리인 헌법을 파괴시킨 내란범죄의 우두머리를 재판장으로서 다루는 부조리한 방식 말이다.
검찰이 구속 기소한 순간, 검찰은 손을 떼고 재판장은 피고인의 신병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갖는다. 형사소송법상 그러하다. 지귀연은 보석은 물론 무죄도 쓸 수 있고 심지어 공소기각도 할 수 있다. 온갖 법 기술을 포함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8일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검찰이 항고를 포기하면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의왕=황진환 기자윤에게 지귀연은 신과 다름없는 존재이다. 법에 명백히 기록돼 있는 구속기간 산정을 시간으로 계산해 낸 법관은 지귀연이 유일하다. 지귀연 이후에도 3206명의 대한민국 법관 가운데 3205명의 법관들은 여전히 '날수'로 계산하지 시간으로 셈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법 75년 역사에서 수만 여명의 법관이 법대를 거쳐갔으나 '시간' 법기술을 차용한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저 내란 수괴 윤석열이 대낮에 극장을 활보하며 <부정선거 음모>를 주장하는 영화를 보게 한 배경이 무엇인가. 재판은 왜 선배 재판관들과 달리 1주일에 한 번만 열어야 하는가. 그 심판 결과는 왜 내년으로 미뤄야 하는가. 또 하필이면 현직도 아닌 전직 정보사령관에게 비공개 재판을 허용하는가. 시민들은 '삽겹살과 소주'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에게 묻는 것은 그런 궁극적 질문들이다.
법원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지귀연은 언변이 좋고 모임에서도 사회를 잘보는 모양이다. 레크레이션 지도자격증까지 있다는 소문이 있으니 그럴싸 하다. 또 또래 친구들이 서울대를 많이 갔고 변호사를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많은 모양이다. 그들과 소주와 삽겹살도 잘 드시는 것 같다. 공부 머리도 좋고 잘 놀고 신이 허용한 타고난 개인적 자질은 다 좋다. 그 정도는 넘어가기로 하자. 을사늑약을 체결할 때 앞장섰던 이완용 역시 머리와 재주가 비상했다. 유력 가문출신이 아니었지만 장원급제를 했다.
필자는 지귀연에게 시민의 뜻이 무조건 옳다며 '포퓰리즘 재판'을 요구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신체형벌권을 쥔 법관 지귀연에게 요구하는 사실은 명확하다. 법기술 말고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려는 양심과 의지를 발견하고 싶다는 사실 뿐이다. 시민들은 윤이 구속된 상태를 원한다. 신속한 처벌은 원한다.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재판을 원할 뿐이다. 누가 봐도 윤의 죄의 태양은 구속하고도 남는다. 이런 일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거나 법지식 범주의 영역이 아니다. 상식적 의문들이다. 그는 이런 본질적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귀연이 뭔가 술 사건으로 약점을 잡혔다느니, 아니면 법원 내 고위 책임자들과 교감 하에 내란 세력을 비호한다" 등의 의혹이 짚단 쌓듯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머리 좋은 이완용의 처신은 결국 외교권과 사법권을 넘겨 나라를 팔아먹은 한일병합으로 연결되었다. 사물의 이치는 비슷한 것이다. 신병을 풀어줬으니 "뭐야! 다음에 나올게 뭐야"라는 의문을 갖는 건 자연스럽다. 혹시 무죄 아니면, 공소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