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취임 선서를 마치고 나와 잔디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2022년 대선 이후 정치인 이재명을 옥죄던 '사법 리스크'가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이어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 재판도 모두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이 외에도 위증교사 논란 사건,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사건 재판 역시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은 재판 중단의 이유로 헌법 84조를 들었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하여, 소추의 범위에 진행 중인 재판까지 포함되느냐 논란을 낳았던 그 조문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서야 당연히 불소추 특권을 넓게 해석하려 했지만, 법조계 안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명백한 정답이 없는 쟁점을 두고 법원이 대통령 측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 점은 평가할 만하다. 정치적 사안에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사법 자제의 원칙(Judicial Self-Restraint)'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에 대해 특히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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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진행 중인 재판을 중단하며 사법 자제의 원칙을 적용했다면 입법 자제의 원칙(Legislative Self-Restraint)도 떠올릴 법하지만, 아직 민주당은 권한 극대화 카드를 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직 대통령의 경우 무조건 형사재판을 중지하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려는 것은 물론, 이재명 대통령에게 적용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250조 1항) 구성요건에서 '행위'를 삭제하는 법안도 여전히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전자가 헌법 84조 논란에 쐐기를 박겠다는 취지라면, 후자는 아예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면소(免訴)되도록 하겠다는 취지이다. 기소의 근거가 되었던 법을 바꿔 재판의 일시 중단이 아니라 아예 재판 종결을 이루겠다는 뜻이다.
사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다섯 가지 재판의 일시 중단보다 공직선거법 재판 한 건의 종결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미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된 공직선거법 재판이 중단되더라도 임기가 끝나면 이재명 대통령은 속개된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혹여나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이 확정된다면, 민주당은 지난 20대 대선 당시 보전받은 선거비용 434억원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 법원의 잇따른 재판 중단 선언에도 민주당이 안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이런 까닭에 민주당은 위인설법(爲人設法)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직선거법 개정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기재위·정무위 소속 의원들이 지난 5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중 잡혀있는 모든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로 미룰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그러나 실제로 이 대통령의 면소를 위해 공직선거법을 개정한다면 앞으로 공직 후보자들의 거짓말을 단속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진다. 당장 윤석열 전 대통령 역시 면죄부를 받게 된다. 윤 전 대통령은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배우자 김건희 씨를 비호하며 거짓말 했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고 있지만, 선거법 250조 1항에서 '행위' 부분이 빠진다면 그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해관계에 따라 위험 요인 일체를 제거하고 싶겠지만, 그러자니 불의(不義)와 부정(不正)을 키우는 셈이어서 막판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명분과 실리가 맞부딪치는 딜레마 속에서 민주당은 결국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은 이제 막 시작한 정권의 시금석이 되어 향후 5년을 짐작케 할 수 있다. 국민은 이를 지켜볼 것이며, 그 결정을 두고 '민주당답다'는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