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둔화)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국내 완성차 업체의 미국 내 현지 생산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전기차 생산이 중단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선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국내 산업이 쪼그라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현대차, 27~30일 울산공장 휴업…美 관세·현지 생산 증가 영향
2025 코나 일렉트릭 내장. 연합뉴스
2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오는 27일부터 30일까지 울산 1공장 2라인의 휴업을 결정했다. 해당 라인은 전기차인 아이오닉5와 코나EV 생산을 담당하는 곳이다.
현대차는 5월 한 달 간아이오닉5와 코나EV를 대상으로 최대 600만 원을 할인하는 행사까지 진행했지만 판매 부진을 극복하지 못했다. 최근까지 컨베이어벨트를 비워둔 채 라인을 가동하는 '공피치'를 통해 생산 라인을 유지했지만, 이마저도 지속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현대타는 휴업을 단행하게 됐다.
현대차는 노동조합에 보낸 협조문에서 "글로벌 전기차 판매 부진 상황이 호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판촉 활동을 통해 추가 오더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추가적인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전기차 생산을 중단한 것은 올해 벌써 세 번째다. 앞서 지난 2월과 4월에도 일부 전기차 생산을 중단한 바 있다. 지난 1~4월까지 아이오닉5 수출 실적은 9663대로 전년 동기보다 64.9% 줄었다. 코나EV 수출도 같은 기간 42.1% 감소한 3428대에 불과했다.
이는 울산공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1분기 현대차가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는 총 3만 6497대에 그쳤다. 이는 전년 동기(4만51대)와 비교하면 8.9% 감소한 수치다.
이런 전기차 판매 감소세는 캐즘과 화재 사고에 따른 '포비아'의 영향도 있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과 이에 따른 미국 내 현지 생산 증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한국의 최대 자동차 수출 시장에 해당한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라 한국 생산 전기차를 미국으로 수출하면 25%의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관세 파고를 넘기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HMGMA 신공장을 짓고 현지 생산을 끌어올리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앨라배마 공장은 8만 1800대, HMGMA은 2만 5900대 수준으로 국내 생산능력(44만 4900대) 대비 24.2% 수준까지 상승했다.
현지에서 물량을 공급하다 보니, 국내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기차는 급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4월 동안 미국으로의 전기자동차 수출액은 5533만 7천달러(우리돈 약 757억 1208만원)로 전년 동기 대비 88.4%나 감소했다. 이는 3월과 비교해도 9.7%p 하락한 수치다.
국내 산업 공동화 '포비아'…"국내 최소 생산 보장할 필요 있어"
연합뉴스지금은 전기차 생산만 고려한 상황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경우 국내 완성차 생산 기반이 미국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현지 생산을 120만대까지 끌어올려 관세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 내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지난 3월 HMGMA 신공장을 지으면서 "단지 공장을 짓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뿌리를 내리기 위해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생산이 위축될 경우 국내 노동자뿐만 아니라 현대차·기아의 1차, 2차, 3차 협력사도 연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지역 경제 타격도 불가피하다.
한국무역협회 울산지역본부가 발표한 '2025년 4월 울산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울산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3.2% 감소한 72억5000만 달러(약 9조9332억500만원)를 기록했다. 특히 수출 1위 품목인 자동차(-21.2%)의 타격이 컸다. 전기차의 경우 64.7%나 감소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이항구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조심스러운 예측이지만 현대차가 지난해 미국에 170만대를 판매했는데 향후에는 관세 여파 등을 고려해 30만대 정도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 만큼 국내 생산이 감소한다고 가정하면 산술적으로 국내 공장 하나가 문을 닫아야 하는 규모고, 인원으로 따지면 간접 고용까지 몇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국내에서 생산할 최소 물량을 정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 연구위원은 "완성차 업체에서 국내 최소 생산 물량을 정하는 식으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노사 간 갈등도 최소화하고 협상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시장 판매 호조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등을 고려할 때 국내 생산 기반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도원빈 수석연구원은 통화에서 "미국으로의 전기차 수출 비중이 크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로 인해 내연기관에 힘을 싣는 기조로 가고 있다"며 "완성차 업체가 생산 거점을 어느 한 곳에 과하게 힘을 싣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전기차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고 특히 유럽 시장의 전기차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국내 및 유럽 시장 수요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