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중국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 경제계 인사는 최근 한 지방도시 출장 전 해당 도시 측으로부터 외빈 방문시 통상 시 고위공직자들과 함께 하는 환영만찬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다 모든 출장 일정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오려는데 다시 저녁 만찬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만 "술은 마실 수 없고 식사만 가능합니다"라는 전제가 달렸다.
이 인사는 "최근에 중국 공무원들과 접촉할때 통상적으로 함께 하던 식사도 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면서 "상부에서 내려온 비용 절감 지시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근검절약·부패방지 명분 공직사회 기강잡기
연합뉴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도한 공직사회 비용절감 운동으로 공직 사회가 잔뜩 움추려든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옥죄기로 오히려 내수 침체를 불러오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지난 5월 '당정기관의 절약 실천 및 낭비 반대 조례'를 개정해 발표하며 각 지방과 부문에 철저한 이행을 주문했다.
해당 조례는 공무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공무 식사시 고급 요리와 담배·술 제공 금지, 공무 관련 비용 지출시 계좌 이체 또는 공무용 카드 사용 등 각종 비용의 절감과 투명한 처리 지침이 담겼다.
시 주석 취임 이후 만들어진 해당 조례는 공직사회의 비용 절감 노력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마련됐지만 이번에는 세세한 지침까지 담은 개정안이 나온 것. 시 주석은 평소 공직 사회의 근검절약을 강조해왔다.
이어 지난달에는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국가감찰위원회가 '중앙의 명확한 공직자 규정 위반 향응 인정 기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공금을 이용한 연회, 기업이 마련한 식사 초대, 이해 관계자가 마련한 식사 자리, 공무 집행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접대 등 공직자들이 가지 말아야 할 식사 자리 8가지를 명시했다.
그러면서 가족이나 친구와 정상적인 식사 자리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식사 계산에 공금이 쓰였든 아니든 공정한 공무집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식사 초대는 당원과 간부들이 일절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규정했다.
이런 일련의 조치 이후 공직자를 상대로한 로비 술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최고급 전통주 마오타이 소비가 크게 줄어 가격이 폭락했다. 불법적 로비가 근절되는 효과를 보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근검절약과 부패방지를 명분으로 한 공직사회 기강잡기가 본격화되자 중국 공직자들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 근성 역시 발휘되기 시작했다.
공직사회 지출·소비 급감에 내수 침체 역효과
연합뉴스최근 중국 소셜미디어(SNS)에는 산책, 독서, 체육 활동, 가족과 영화 관람 등 퇴근 후 할 일이 명시된 '공무원 저녁 일과표'가 공유되고 있다. 업무관련 식사 등 외부 활동을 일절 끊어버리는 것.
일부 지자체도 나서 3인 이상 식사 금지, 또는 24시간 금주령 등을 내렸다. 매일 음주측정을 실시하거나 공무원이 저녁에 외식하는 것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도입한 지자체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공무원들이 규정 위반 소지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 지출과 소비를 대폭 줄여버리면서 가뜩이나 침체된 내수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징 등에서 활동하는 로비스트 타오징저우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공무원들이 아예 모든 식사 지출을 끊어버리고 있는데 (내수에) 매우 파괴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 경제학자도 "공직자들은 공포에 질려있고, 함께 만나 커피도 마시지 못할 정도"라며 "어떤 식사가 정상적인 외식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하위 정부기관들이 알아서 추가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은 6월 보고서에서 중국 외식업 매출의 약 51.6%가 정부기관과 국영기업, 공공기관 소비에서 나온다며 "이 부문 지출이 10% 감소하면 외식업 전체 매출은 5.2%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부작용이 속출하자 중국 당국은 관영매체를 내세워 책임을 일부 지차체에 떠넘기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24시간 금주령 등 일부 지자체의 조치를 "정책에 대한 오해와 민생에 대한 무관심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긴축정책은 낭비적이고 사치스러운 행태를 정밀히 타격하는 '메스'처럼 사용돼야 한다"며 "일부 지역이 이걸 '망치'처럼 휘두르고 있는데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