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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자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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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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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의의 가장자리 톡]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여자는 어항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어항은 중력이 없는 대기의 바깥 같다. 깎인 손톱만한 물고기가 그곳을 직선으로, 느리게 가고 있다. 무궁한 창공을 가로지르는 하얀 제트기처럼.

여자는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흔들며 물속을 종횡하는 것이 자신의 욕구를 대신한다고 여기는 건지도 모른다.

"얘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오후 1시 30분이 지났다. 식당 밖 골목길은 그새 한산해졌다. 남아 있는 손님은 나 혼자다. 식당 주인인 여자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익숙한 곳이다.

이 식당에서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정식 두루치기를 판다. 이 세 가지 메뉴가 전부다. 가격이 적당하고 맛이 좋아서 대학생과 대학원생, 연구원 단골손님이 많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식당은 조용하다.

여자의 나이는 50대 후반쯤으로 보인다.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다. 살이 쪄서 얼굴과 몸이 모두 둥글게 보인다. 그게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얼굴에는 40대의 식지 않은 욕망과 열정이 바람을 만난 숯불처럼 언뜻거린다. 성적 자존감을 잃지 않겠다는 듯.

여자는 여전히 어항 앞 의자에 앉아 물고기를 보고 있다. 식탁마다 빈 그릇이 놓여 있는데도 선뜻 치울 생각이 없는가 보다. 여자에게는 설거지보다 어항 속 물고기를 바라보는 일이 더 소중하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요. 그럴 때 어항 속에 있는 얘들을 봐요. 그러다가 밤을 꼬박 새운 날도 있어요."

여자가 식당의 동쪽 창가에 놓인 어항을 바라보며 말한다. 어항은 에덴의 낙원과 같다. 여자는 분명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여자는 식당 문을 닫을 때 이 어항 속 물고기들과 함께 집으로 간다고 했다. 어항을 아기처럼 품에 안아 승용차에 싣는 것이다.

여자는 어항의 물고기가 온몸이 펄펄 끓던 꽃다운 나이, 26살에 낳은 아기 같다고 했다. 철부지처럼 사랑했던 남편의 마법이 풀린 자리에 나타난 요정이라고도 했다.

"다 사라지네요. 믿었었는데…… 참 허망해요. 가족들보다 얘들이 편해요."

여자는 물속의 생명체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 분명해 보인다. 뭍의 공간을 차지한 이기적이고 사악한 우리와는 다르다고 믿는 것 같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비 오는 날이 많아졌다. 식당을 찾는 날도 뜸했다. 한 달쯤 지나 식당을 찾았을 때 문이 닫혀 있었다.

'개인사정으로 당분간 휴업합니다'

출입문 유리창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 달쯤 지나 다시 찾아갔을 때는 철거작업이 한창이었다. 뜯긴 벽지와 갖가지 비품들이 화물트럭에 실려 나갔다.

여자의 식당은 젊은 남자가 주인인 쌀국수집으로 바뀌었다. 여자는 조용히 아니 불현 듯이 사라졌다.

"얘들 있잖아요…… 베인 살을 메워주는 후시딘 같아요. 마음도 살 같이 베이잖아요."
 
손가락으로 물고기를 가리키며 소녀처럼 웃던 여자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여자와 여자의 전부인 어항은 이제 볼 수 없다.

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조중의 포항대학교 초빙교수·전직 언론인 제공
"어항을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져요. 내 가랑이를 벌려 낳았지만 낯선 사람 같아 보이는 두 아이도 그렇고, 소가 닭 보듯이 하는 남편도 아무렇지 않아요."

여자의 어항이 있던 자리에는 쌀국수집 개업을 축하하는 서양란 화분이 놓여 있다. 꽃의 색깔과 모양이 화사하다.

쌀국수집에는 뚱뚱한 여자가 없다. 다만 여자의 온기가 곳곳에 남아 있다. 여자는 녹색 에어 호스 끝에서 올라오는 가느다란 물방울을 보며 미소 짓고는 했다. 수초가 춤을 추듯 너울댄다며 어깨를 흔들기도 했다. 물방울이 만들어내는 파동 때문이라며 설레하기도 했다. 여자의 말이 생각난다.

"얘들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뚝뚝 떨어져요. 그런데 마음은 후련해요. 우리한테는 우리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일로 신경을 가라앉혀요. 우리는 그래요."

그러고 보니 여자가 하마처럼 살찐 몸을 일으켜 식탁을 치울 때면 어항 속 물고기가 식탁 쪽으로 몸을 돌려 여자를 살피고는 했다.

창밖 골목이 어두워지고 있다. 여름 저녁의 습한 공기 때문인지 어둠이 짙고 무거워 보인다.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내밀다가 쌀국수집 주인에게 여자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전 주인은 뭘 한답니까?"

"그냥 쉰다고 하던데요. 쉬고 싶다고…… 그냥…… 쉬고 싶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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