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희숙 신임 혁신위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국민의힘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실명을 거론하며 발표한 '인적쇄신 1호'를 향한 당내 반발이 거세다.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친윤(윤석열)·친한(한동훈)계까지 불만이다.
'야당의 시간'이라 할 수 있는 이재명 정부 첫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청문회 기간에 왜 폭탄을 던졌냐는 것. 조만간 있을 의원총회를 앞두고 혁신위를 향한 의원들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당이 혁신을 외치는 상황에서, 불법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극우 인사 전한길씨가 입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갈등과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하필 왜 지금, 그 방식이냐"…친한계도 비판 가세
18일 국회는 인사청문회 슈퍼위크 닷새째를 맞아 윤호중 행정안전부장관 후보자와 정은경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청문회를 진행한다.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이재명 정부 첫 내각을 꾸릴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예고했지만, 시끄러운 당내 상황에 청문회 내내 화력이 분산되는 모양새다.
결정적인 순간은 지난 16일. 윤희숙 혁신위원장의 예고에 없던 기자회견이었다. 윤 위원장은 "과거와의 단절에 저항하고 당을 탄핵의 바다에 밀어 넣고 있는 나경원, 윤상현, 장동혁 의원과 송언석 원내대표는 스스로 거취를 밝혀라"라고 말했다. 자신이 정한 인적쇄신 대상의 실명을 언급한 것이다.
윤 위원장은 이들을 향해 "극악한 해당행위를 했다"고도 했다. 장동혁 의원과 윤상현 의원은 최근 극우 인사인 전한길씨를 불러 당 행사를 진행했고, 송언석 원내대표도 참석했다. 나경원 의원은 윤희숙 위원장의 혁신안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 발표는 국민의힘이 인사청문회 공세 수위를 끌어올리던 '야당의 시간'과 정확히 겹쳤다. 후보자들에게 집중돼야 할 시선을 국민의힘 내홍으로 끌고온 셈이 된 것.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더라도 청문 정국에 굳이 해야 했느냐는 지도부의 우려가 있었다"고 전했다. 한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도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 관련 문제 사안을 띄우던 상황에서 뉴스의 흐름을 뒤틀었다"며 "야당의 시간에 핵폭탄을 터뜨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위원장의 사뭇 달라진 입장에 당황하는 당내 분위기도 감지된다. 처음에는 윤 위원장이 "당원들로부터 칼 휘두를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다"고 했는데, 돌연 실명까지 거론하며 인적 청산을 외쳤다는 것이다.
또다른 당 관계자는 "혁신안이 이번주 일요일 의원총회에서 사실상 마무리된다는 기류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이 끝나기 전에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민의힘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뒤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한 친한계 의원도 "정말 쇄신을 원했다기보다는 '자기 정치'를 위한 무리수처럼 느껴졌다"며 "시기적으로 당황스럽고, (인적 쇄신 방식의) 설득력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언석 원내대표가 친윤 행보를 보이고 쇄신에도 소극적이라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현재 당을 대표하는 사람을 '계몽령'과 '윤어게인' 세력의 핵심인 것처럼 낙인찍는 것은 과도하다"며 "정작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주도한 권영세·권성동 의원은 빠졌다. 기준 자체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특히 윤 위원장이 계파 정치를 비판하며 언더73(친한계 청년조직)을 포함한 친한계를 친윤계와 동일 선상에 두고 때린 것에 대해서도 반발이 거세다.
계엄 해제안 표결에 참여했던 한 의원은 "친한계는 계엄·탄핵 국면에서 특별한 과오가 없다. 왜 양비론으로 뭉뚱그려 매도하느냐"고 따졌다. 다른 친한계 의원도 "정치는 원래 세력으로 하는 건데 계파 활동이 무슨 죄인가"라며 "우린 당 혁신을 위해 목소리 냈을 뿐"이라고 했다.
혁신 외치는 상황에서 극우 전한길 입당…당 발칵
지난 14일과 15일 국민의힘 윤상현(사진 왼쪽)·장동혁 의원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전한길씨(오른쪽)가 지난달 9일 입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3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자유연대 국민 대토론회 참석 당시 모습. 윤창원 기자이런 상황에서 극우 인사 전한길씨가 입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위기감은 한층 고조됐다. 국민의힘은 전씨가 온라인으로 신청해 지난달 9일 입당했다고 밝혔다. 활동명이 아닌 본명(전유관)으로 입당했다고 한다.
윤희숙 위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강조한 상황에서 대표적 극우 인사인 전씨가 당으로 들어온 파장이 만만치 않다. 당에 이미 씌워진 '내란당 프레임'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시 비대위원장이었던 제가 알았다면 김계리씨처럼 당원자격심사위원회를 열어 입당을 막았을 것"이라며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계엄을 옹호하는 전씨를 즉각 출당하라"고 촉구했다. 안철수 의원도 "당을 '내란당', '계엄당', '윤어게인당'으로 완전히 침몰시킬 생각인가"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송언석 지도부는 몰랐다는 입장이다. 전씨가 온라인으로 접수했고, 가입시 이름도 활동명과 다른 본명이었다는 것. 당원 자격 심사 여부 또한 중앙당이 아닌 관할 시·도당 소관이었다고 설명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전씨를) 출당하려면 징계해야 하고, 징계권은 서울시당이 갖고 있다"며 "지도부가 특정 당원에 대해 출당 등을 지시하는 건 소위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서울시당 윤리위에서 결정한 문제이지 지도부가 조치를 취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송언석 원내대표 역시 전날 입장문을 통해 "한 개인의 입당에 대해 호들갑 떨 것 없다"며 "어떤 당원이라도 당헌당규에 명시된 당원 의무를 어긴다면 마땅히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자정능력을 믿어달라"고 밝혔다.
이처럼 당이 극도의 혼란에 빠진 가운데 20일 의원총회가 열린다. 윤희숙 혁신안에 대한 원내 첫 공식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지도부의 선택적 수용도, 전면 거부도 쉽지 않은 딜레마"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당내 파열음은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