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욱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연합뉴스'비상계엄 옹호'와 '식민사관'으로 논란이 됐던 강준욱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이 22일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지지층 뿐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현 정부에서 공직을 수행하기에 부적절한 인사라는 비판이 비등하자 대통령실이 신속히 논란을 정리한 것이다.
강 비서관은 이날 오전 자진사퇴의 뜻을 밝혔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 국민통합비서관은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까지 폭넓게 포용하겠다는 의미에서 신설된 자리로 그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아무리 보수층을 겨냥한 자리여도 헌정질서나 역사관에 대한 기본 인식은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만큼 상식적이어야 했다.
동국대 교수 출신인 강 비서관은 불과 넉달 전 펴낸 책에서 12.3 비상계엄을 "민주적 폭거에 저항한 비민주적 저항"으로 옹호하고, "계엄선포를 내란으로 몰아가는 행위는 여론 선동"이라고 주장했다.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관련 판결을 비난한 글에서는 "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믿으며 강제징용이란 것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2022년 SNS글에서는 "이죄명 지옥 보내기에 대한 열망"이라는 표현도 썼다.
박노해의 시 <발바닥 사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머리는 너무 빨리 돌아가고
생각은 너무 쉽게 뒤바뀌고
마음은 날씨보다 변덕스럽다
(중략)
현장에 딛고 선 나의 발바닥
대지와 입맞춤하는 나의 발바닥
내 두 발에 찍힌 사랑의 입맞춤
그 영혼의 낙인이 바로 나이니
그리하여 우리 최후의 날
하늘은 단 한 가지만을 요구하리니
어디 너의 발바닥 사랑을 좀 보자꾸나"
말과 글로 남긴 메시지, 그가 걸어온 길이 그의 삶 자체일 것이다. 말이 바뀌었다고 사람이 바뀌었다고 판단하면 착각일 확률이 높다.
강제징용이라는 역사적 비극마저 부인한 식민사관의 소유자, 탄핵심판이 한창이던 넉달 전에도 계엄을 용호했던 극우적 인식의 소유자가 과연 엊그제 내놓은 사과와 다짐처럼 "지금이라도 철저한 성찰을 바탕으로 세대, 계층, 이념으로 쪼개진 국민들을 보듬고 통합하려는 대통령의 의지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을까? 순간의 볼펜 끄적임과 지금까지 걸어온 길 중에서 무엇이 본 모습에 가까울까?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멀리 갈 것도 없이 익히 아는대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좋은 본보기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노영민 전 실장은 "검찰총장 후보면접할 때 윤석열은 가슴 속에 배신의 칼을 숨기고 문재인 대통령을 속였고 국민을 속였다"고 직격했다.
검찰총장 면접 당시 윤 전 대통령이 4명의 후보 중에서 공수처 필요성 등 검찰개혁에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했는데, 검찰총장이 된 뒤 태도가 바뀌었다는 한탄이었다. 누굴 탓하랴.
대통령실은 후임 국민통합비서관과 관련해, "이재명 정부의 정치철학을 이해하고 통합의 가치에 걸맞은 인물로 보수계 인사 중에서 임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수위 없이 출범한 정부라서, 인사검증에 과부하가 걸려서 라는 핑계는 대지 말자. 인사나 개혁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신중하게 철저히 검증해서 국민통합의 가치를 실현할 합리적이고 실력있는 보수 인사를 잘 골라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