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7일 더불어민주당은 'AI 강국 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위원장을 맡은 당시 이재명 대표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이재명 대통령이 'AI 3대 강국'을 얘기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정보통신(IT), 조선, 가전 등 모든 영역에서 후발주자인 중국이 매섭게 따라붙은 상황에서 나름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짐작됐기 때문이다.
마치 1997년 IMF라는 국가부도 사태의 위기 속에서 김 전 대통령이 과감한 벤처 투자로 미래 먹거리를 위한 씨앗을 뿌린 것처럼 말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 경제에 엔진을 달고 방향을 설정하겠다는 구상도 'DJ노믹스'를 내걸었던 김 전 대통령과 닮았다.
이 대통령이 정치 철학 내지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실용주의도 따지고 보면 김 전 대통령이 강조해온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과도 상당 부분 통한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IMF 위기에서 탈출시키고, 지금 잘나가는 IT기업들을 탄생시키며 경제 면에서도 성공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대통령도 AI 분야에서 성과를 내 '제2의 김대중'으로 남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구의 아류가 아닌 본인의 이름 석자를 역사에 새기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AI 3대강국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보며 그것이 가져다줄 우리의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도 강하게 들 수밖에 없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국민은 그만큼 행복해질까 하는 생각에서다.
AI기술의 발달이 야기할 극단적인 경제 양극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AI를 도입할 여력이 많은 대기업, 특히 몇몇의 빅테크 기업이 진공청소기처럼 막대한 부를 빨이들일 가능성이 크다. 덩달아 개인 간의 격차도 얼마나 벌어질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AI의 위험성을 경고해온 유발 하라리는 초부유층들이 기술을 이용해 신처럼 불멸을 꿈꾸는 인간('호모 데우스)이 될 것이라는 전망했는데 단순히 책에만 머문다는 보장도 없다.
지난 10일 서울 종각역 태양의 정원에서 열린 종로구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채용게시대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그 시기를 놓고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리기는 하지만 AI가 상당수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아니 이미 이런 현상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경제지표가 좋은 미국의 빅테크 회사들은 AI를 도입한 후 쉬쉬하면서 '조용한 대량해고'를 진행하고 있다.
식당의 주문받는 종업원을 키오스크가 대체한 지 오래됐고, 최근에는 대형로펌에서 변호사 신규채용을 줄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막연한 장밋빛에 그칠 공산이 크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난제들은 고착화한 경제 불평등에서 시작했다. 인구위기 문제도 '나보다 못한 미래를 물려주기 싫다'는 부모들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저소득층이 오를 수 있는 사다리가 끊기며 빈곤의 악순환 고리가 더 단단해진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과 다른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린 청년들이 일찌감치 세상과 연을 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기술은 비단 경제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대표적인 AI기술인 알고리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고 체계를 지배해 황당한 불법 게엄 선포를 낳았다. 경제는 물론 민주주의까지도 위험에 빠뜨렸다. 그를 지지한 극우 세력은 더 말해 무엇하랴.
AI기술이 무분별하게 일상에 침투하는 것도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챗GPT에 과도하게 의존하다보면 인지능력이 약해진다는 연구보고서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사고력 근육'이 생기기도 전에 무작정 AI를 쓰다보면 당장은 편할 수 있어도 나중에는 인간이 가진 본래의 잠재력을 잃게 된다는 얘기다. 이는 미래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영민한 이 대통령이 이런 일들을 모를 리 없겠지만, 과연 이에 대한 해답까지 고민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고민이 있더라도 우선순위에서 어디쯤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기술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목표에만 매몰되다보면 더 큰 전쟁과 맞닥트릴 수 있다. 급격한 빈부격차의 방아쇠를 당긴 IMF의 후과는 아직도 정산이 끝나지 않았다. (참고로 IMF위기는 김 전 대통령 때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