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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누가 그 우물에 독을 끼얹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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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관동, 2025년의 명동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도대체 인간이란 어떻게 된 존재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자. 연합뉴스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자. 연합뉴스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1910~1998) 감독은 열네살때 목격한 그날을 이렇게 자서전에 회고했다.

"일그러진 표정의 어른들이 '여기다!', '아니, 저기야!' 하고 소리치면서 우왕좌왕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모습을, 나는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동네 우물들 중 한 곳의 물을 퍼먹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이유인즉슨 그 우물 둘레에 쳐진 벽 위에 하얀 분필로 이상한 부호가 적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물에 독을 탔음을 표시하는 한국인 암호일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추론이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사실은 그 부호라는 게 바로 내가 휘갈겨놓은 낙서였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행동이 이러하거늘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도대체 인간이란 어떻게 된 존재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그 해 9월 1일. 각종 뜬소문이 삽시간에 지진보다 빨리 퍼져나갔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부터 "조선인들이 독이 든 만두를 나눠주고 있다", 심지어 "조선인들 모두가 일본 열도를 영차영차 밀어서 지진을 일으켰다"는 만평까지 등장했다.

계엄령을 선포한 내무성은 각 경찰서에 "조선인들이 사회주의자들과 결탁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마을 곳곳 우익 자경단마다 '조선인들이 조직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각개격파'에 나섰다. 

자경단원들은 조선 의복만 눈에 띄면 찌르고 때리고 베어 죽였다. 기름 부어 장작불에 태우기도, 밧줄로 엮어 강물에 던지기도 했다. 애매하면 "주고엔 고짓센(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15엔 50전)을 발음해보라 한 뒤 어색하다 싶으면 또 죽였다. 

사투리를 쓰는 일본인까지 덩달아 죽었다. 그 해 10월이 오기 전 학살된 조선인만 6661명, 많게는 2만 3058명이란 기록까지 있다. 1923년의 관동대학살(關東大虐殺)이다.

102년이 지난 10월의 한반도에서 열도의 그날을 떠올리게 된다. "많이 퍼뜨려야 한다"며 지난 1일 SNS에 올라왔다는 글을 읽으니, 내 마음의 우물에 누군가 드럼통 수십 개 분량의 독극물을 끼얹은 듯한 기분마저 든다.

"얘들아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이상한 사람이 주는 거 받지 말고, 부모님께 어디 가는지 알리고 집에 일찍 들어가라. 이상한 중국 사람이 쫓아오면 신고해라. 누가 태워다 준다 해도 거절해라. 난 너희들이 너무 걱정돼. 중국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졌는데,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성인·아이들 가리지 않고 납치해 장기매매를 한다. 심지어 살아 있는 채로 배를 갈라 장기를 꺼낸다고 한다. 대한민국 큰일났다. 중국 무비자를 막아야 한다".

서울 도심 활보한 '혐중시위'. 연합뉴스서울 도심 활보한 '혐중시위'. 연합뉴스
대한민국 정말 큰일난 건 사실이다. 같은날 제1야당 지도부의 입에서 비슷한 얘기가 흘러나올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런 흔듦의 나날이 여전히 종식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예상했던 위협이 몇일새 서서히 현실로 다가 오고 있다. 타겟(피해자)이 될 가능성이 낮은 정치인에게는 0%에 수렴하는 낮은 확율의 위협일지라도, 피해를 당하는 국민에게는 100%의 확율이 될 수 있다. 중국인의 자유로운 한국 입국보다 국민 안전과 치안이 먼저 아닌가? 국민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혐중(?)이라면 내가 혐중하겠다. 무비자입국을 환영하는 너희는 친중해라"(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

'尹어게인'을 함께 외쳐온 혐중 세력에게 일단 이 말씀을 정중히 드리고 싶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비자입국은 여러분이 혐오해 마지않는 '셰셰(謝謝)정권' 아니라 尹정권에서 결정했노라고, 아래 기사 일독을 권해드린다.

[관련기사 : '극우' 향하던 국힘…이젠 '혐중' 올라타나]

아울러 '혐중' 여러분의 주장에 드리고 싶은 또 한마디는 앞서 소개한 아키라 감독의 말로 오마주하겠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도대체 인간이란 어떻게 된 존재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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